나는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었다

by Ben Frost

"어휴, GV80은 안 돼, 부딪치려면 GV..."


주민센터 앞 작은 사거리에 차 서너 대가 엉겨 있는 모습을 두고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한 무리의 사람들 중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이 사고 직전 가까스로 멈춘 차를 보며 하는 말이 귓가에 들렸다. 마치 자신이 그 사고를 피한 당사자인 것마냥, 한편으로는 그러한 불행이 누군가에게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와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나의 시선이 이동해 어느 길가에 닿는다. 이따금 퇴근길에 나를 픽업해 집으로 데려다주시던 선생님의 차가 멈췄던 곳, 그리고 이미 흘러간 과거의 나의 모습이 순간 비친다. "선생님~" 하며 인사를 건네고 미리 사둔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잔을 건네던 모습이.


<소울>이라는 애니메이션의 개봉 당시 남편과 영화관에서 보고 나오면서 내가 깊게 남은 여운을 그러모으며 연신 감탄했던 것 중 하나는 K-장녀의 삶에 대한 묘사였다. 그 영화의 설명 어디에도 그러한 것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딸'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에 대한 조금 다른 모습이 보였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왔던 K-장녀의 삶 같이 느껴졌었다.


물론 개인차는 존재한다. 어떤 부모님을 두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기존 성향이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세대보다 조금 더 엄하게 키웠던 부모님인 데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을 걸핏하면 나에게 맡기시던 바쁜 부모님이셨기 때문일까. 집안을 건사할 책임만 제외하고 나머지의 책임감은 나의 어깨 위에 늘 올려진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던 나이기에 애교란 존재하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없었을까는 알 수 없고, 적어도 자라오면서 부모님 앞에서 애교를 부리진 않았다. 그런 내가 후천적으로 길러질 수 있었다면 아마 대학생 때 가능했을 것이다. 친구, 사촌, 엄친아·엄친딸 등 그때까지 내가 만났던 모임에서 나는 자발적으로 앞장서는 편이었는데, 도저히 내가 앞장설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한 언니, 오빠들과 대학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인 데다 겨우 한두 살 차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나의 포지션은 평생 해본 적 없는 막내였다. 그 결과 나는 막내로서 부릴 수 있는 애교를 약간은 체득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체득했다고 해서 늘 쓰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런 내게 유일하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날 때부터 애교 섞인 목소리가 나왔던 사람이 선생님이셨다. 나와의 나이 차이는 스무 살이 조금 안 되게 났었고, 스무 살에 만났으니 학생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만났던 분이셨다. 선생님 아래에서 배웠던 것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시간의 밀도가 남달랐고, 부러 신경 써주셨던 것이 많으셔서 결과도 좋았던 말 그대로 은사님이셨다.


하지만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선생님이 나를 그저 제자로만 대하지 않고 한 인격체이자 성인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면서 어쩌면 친구스러운 하지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어른이기도 한 존재가 되었다.


임신을 하고 근무하는 동안에는 멀리 떨어져 사는 친정엄마도 챙기지 못한 챙김을 선생님에게 받았다. 직장이 선생님 댁 근처여서 한 번씩 점심을 사주러 오시기도 하시고, 앞서 말한 대로 퇴근길에 데려다주신 적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애교 섞인 인사를 건넸던 유일한 사람이었구나, 애교를 부릴 만큼 나를 호의 가능한 눈으로 봐주셨던 분이시구나 하고.


든 자리는 표가 나지 않아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은 대비를 아무리 해도 난 자리를 메울 수 없기 때문인 걸까. 난 자리가 생기니 그녀가 내게 어떤 역할이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그제야 알게 된다. 너무 많은 역할을 한 사람에게 주었음을.


나에게 있어 꽤 중요하고 가치 있다 여겨지는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면서도 유일한 역할까지 있었던 한 사람을 잃는다는 건 무게감이 상당했다. 아직 부모님을 여의지 않은 나로선 거의 부모님 다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 왔는데, 문제는 그 역할을 이젠 다른 사람에게 주기 무서워진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 때문에라도 나이 먹은 다음에 친구를 사귀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건가 싶다. 가벼운 역할을 나눠 맡는 친구는 가능하지만, 그리고 나에게 역할을 주는 친구는 괜찮지만 내가 누군가에게는 잘 주게 되지 않는다. 상실이라는 것을 경험하다 보면 상실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상실을 오히려 대비하게 되는 것 마냥.


하지만 이미 맡은 역할들은 성실히 감당할 일이다. 딸, 며느리, 동생, 언니, 친구, 엄마, 아내 등 이미 내가 맡은 여러 역할들에 대해 내 역할을 잘할 필요가 있다 싶다. 누군가에게 깊은 상실감으로 기억에 남길 원해서가 아닌, 역할을 맡게 해 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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