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까르띠에 재단 - 4

까르띠에의 6개의 키워드로 읽는 현대미술

by Diana H


까르띠에 재단이 구축한 ‘예술 생태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은 1984년 설립 이후 단순한 기업의 문화 후원을 넘어, 예술이 태어나고 움직이고 살아 숨 쉬는 ‘생태계’를 구축한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예술가와 철학자, 과학자, 건축가, 인류학자가 끊임없이 만나고 충돌하며 새로운 감각과 지식이 생성되는 하나의 실험실이다. 지난 40년간 재단은 지금의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많은 “거장들”을 세계 무대에 처음 소개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우리가 지금 럭셔리 브랜드의 캠페인과 협업 제품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현대미술의 이미지들—그 이미지들의 상당수가 사실상 까르띠에 재단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Louis Vuitton·Casetify·Supreme·Adidas 등과 협업하며 대중적 영향력을 확장한 무라카미 다카시 (Takashi Murakami)

Dior Lady Art 프로젝트에 두번이나 참여한 이불 (Lee Bul)

Dior 플래그십 전시를 장식한 장 미셸 오토니엘 (Jean-Michel Othoniel)

louis-vuitton-ストア-jp-ルイ・ヴィトン-×-村上隆-ポップアップストア-StFI_Louis_Vuitton_Murakami_PopUp_Tokyo_01_DI3.jpg Louis Vuitton x Takashi Murakami (출처: top10.com)


이 모든 흐름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그 중심에는 바로 까르띠에 재단이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들이 예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식— 즉, 예술을 통해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는 방식—은 까르띠에 재단이 가장 먼저 실험하고, 실천했고, 성공적으로 증명한 모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소개할 이야기는 단순한 ‘예술계 내부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백화점·SNS·캠페인·광고 이미지에서 매일 마주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세계관 뒤편에 숨어 있는 “예술적 언어와 작가들의 세계관”을 해석하는 일이다.



1. 까르띠에 재단의 핵심 철학 — 6개의 키워드


1) 현대성과 감수성 (Contemporaneity & Sensibility)

까르띠에 재단은 동시대 감각을 선명하게 포착하는 작가들을 초청해왔다. Louis Vuitton 협업으로 세계적 아이콘이 된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는 2002년 Kaikai Kiki 전시를 통해 하이·로우 문화를 결합한 시각 세계를 선보였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초대형 해골 조각으로 화제가 된 론 뮤익 (Ron Mueck) 역시 재단과 오랜 기간(2005, 2013, 2023) 협업해 인간 신체의 감정성을 조각 언어로 확장했다. 현대인의 일상적 풍경을 최소한의 선(line)과 색면(flat color)으로 정제해낸 작가 줄리언 오피 (Julian Opie),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프랑스 조각가 중 한 명이자 유리와 빛으로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조형적으로 번역해낸 장 미셸 오토니엘 (Jean-Michel Othoniel), 죽음·종교·소비문화·욕망·인체·철학적 질문을 극단적인 조각·회화·설치 작업으로 시각화하며 동시대 예술의 개념적 범위를 확장한 YBA의 대표자인 데이미언 허스트 (Damien Hirst)도 재단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미학’을 보여준 대표 사례들이다.


image.jpg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한 다카시 무라카미 전시 일부 (출처: timeout)
33_1@2x.jpg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한 장미셸 오또니엘의 Vue de l'exposition "Crystal Palace", 2003 (출처: Perrotin)
FhTAVMsgPMRZP2kaJi38jX.jpg Damien Hirst on his 'almost tacky' Cherry Blossoms (출처: Wallpaper*)


2) 개방성과 투명성 (Openness & Transparency)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재단의 유리 커튼월 건축은 ‘투명한 기관’이라는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장 미셸 알베롤라 (Jean-Michel Alberola),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 (Diller Scofidio + Renfro)는 이 건축을 감각 실험의 무대로 활용하며 도시와 예술의 경계를 새롭게 해석했다.


leffondrement-des-enseignes-lumineuses-jean-michel-alberola-1995-c1a.jpg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한 장 미셸 알베롤라 전시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3) 생태적 인식 (Ecological Consciousness)

클라우디아 안두하르(Claudia Andujar)의 40년 야노마미 프로젝트는 예술·인류학·환경윤리를 결합한 가장 중요한 전시 중 하나이다. 섬유·직조·금박이라는 전통매체를 현대 조형 언어로 확장해 자연의 질서와 감각을 직조해낸 작가 올가 데 아마랄 (Olga de Amaral), 건축·자연·공간의 경계를 흐리며 ‘건축이 어떻게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시각적으로 제시한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 (Junya Ishigami) 역시 재단을 통해 인간-자연 관계를 조형적으로 재해석하며 생태 철학을 더욱 풍부하게 확장해왔다.


olga-de-amaral-2024-vue-dexposition.jpg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한 올가 데 아마랄 전시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4) 장르 간 융합 (Interdisciplinarity)

재단은 다양한 감각 실험을 장려했다. 이미지·조각·영상·빛이 뒤섞인 시공간적 환경을 구축하며 ‘감각의 아틀라스’를 만들어내는 설치 작가 사라 시 (Sarah Sze), 의복과 신체, 움직임을 결합해 패션을 하나의 퍼포먼스적 조각 언어로 확장한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 (Jean-Paul Gaultier), 화약·폭발·우주적 상상력을 통해 전통 회화의 경계를 해체한 장면 생성형 설치 작가 차이궈창 (Cai Guo-Qiang)의 작업 역시 장르를 초월한 실험들로, 까르띠에 재단이 추구해온 ‘융합적 창작’의 대표적 예시라 할 수 있다.


nouvelwindows03-2.jpg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한 장 폴 고티에 전시 일부 (출처: ArchDaily)


5) 문화 다양성 (Cultural Diversity)

브라질의 장식적 추상 회화를 현대적 색채 감각과 리듬으로 재해석하며 남미 시각문화의 정체성을 세계적 언어로 확장해온 작가 베아트리스 밀하제스 (Beatriz Milhazes), 콩고의 도시성과 이상향을 수공적 모형 건축으로 구현하며 아프리카 현대성의 고유한 상상력을 제시한 조각가 보디스 이세크 킹겔레즈 (Bodys Isek Kingelez), 중국의 전통 미학과 우주적 세계관을 화약·퍼포먼스·설치로 결합해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확장한 작가 차이궈창 (Cai Guo-Qiang) 역시 재단을 통해 ‘지역적 뿌리에서 출발해 세계적 감각으로 확장되는 예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beatriz-milhazes-2009.jpg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한 베아트리스 밀하제스 전시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6) 장인정신과 기술의 결합 (Craft, Innovation & Utility)

브라질의 장식적 추상 회화를 현대적 색채 감각과 리듬으로 재해석하며 남미 시각문화의 정체성을 세계적 언어로 확장해온 작가 베아트리스 밀하제스 (Beatriz Milhazes), 콩고의 도시성과 이상향을 수공적 모형 건축으로 구현하며 아프리카 현대성의 고유한 상상력을 제시한 조각가 보디스 이세크 킹겔레즈 (Bodys Isek Kingelez), 그리고 재단과 두번이나 협업한 차이궈창 (Cai Guo-Qiang) 역시 재단을 통해 ‘지역적 뿌리에서 출발해 세계적 감각으로 확장되는 예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bodys-isek-kingelez-exposition-generale-2025.jpg 보디스 이세크 킹겔레즈의 A multidisciplinary program in dialogue with its time (출처: 까르띠에 재단)

2. 까르띠에 재단 생태계의 구조


1) 공동 제작(Co-Production)

재단은 작가와 ‘새 작품’을 함께 제작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2) 장기 관계(Long-term Relationship)

작가 중에서는 론 뮤익(Ron Mueck), 클라우디아 안두하르(Claudia Andujar), 사라 시(Sarah Sze) 등이 재단과 10년에서 40년에 이르는 장기 협업 관계를 유지해 왔다.

3) 학제적 네트워크

철학자 폴 비릴리오 (Paul Virilio), 인류학자 인류학자 브루스 앨버트 (Bruce Albert), 사상가 브루노 라투르 (Bruno Latour)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4) Nomadic Nights

패티 스미스(Patti Smith), 올리비에 사야르(Olivier Saillard), 존 케일(John Cale),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같은 예술가들이 참여해 ‘하룻밤의 실험’을 만들어 왔으며, 2024년에는 더 센터 포 더 레스 굿 아이디어(The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가 전면 참여해 재단의 공간을 하나의 실험 무대로 확장했다.

5) 건축과 도시

장 누벨의 이전 건물과 2025년 팔레 루아얄 이전은 재단의 철학을 물리적으로 확장하는 전략적 행보였다.


2000_primeval_0027_001h.jpg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한 차이궈창 전시 일부 (출처: Cai Guo-Qiang 작가 홈페이지)


3. 까르띠에 재단은 어떤 생태계를 만들었나?


까르띠에 재단은 예술가가 두려움 없이 실험할 수 있는 보호된 구조, 단기 프로젝트를 넘어 20~40년 단위로 이어지는 장기적 커리어 성장 환경, 그리고 예술·철학·과학·인류학을 잇는 학제적 지식의 교차점을 스스로 구축해왔다. 동시에 장 누벨(Jean Nouvel)의 투명한 건축 구조와 2025년 팔레 루아얄(Palais Royal)로의 이동이 보여주듯, 건축·도시·관객을 하나의 열린 네트워크로 엮어내며 예술 경험의 공간적 경계를 확장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재단은 지역성과 보편성을 아우르는 가치 체계, 전통과 실험, 자연과 기술, 지역성과 세계성의 교차점을 일관되게 탐구하며 동시대 예술 생태계 그 자체를 만들어냈다.


바로 이 점이 까르띠에 재단을 단순한 ‘브랜드 부속 재단’이 아니라, 현대미술과 럭셔리 브랜드가 만나는 세계관—즉 예술이 브랜드의 철학을, 브랜드가 예술의 확장성을 서로 증폭시키는 관계 구조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이유이다. 까르띠에 재단은 브랜드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위한 브랜드의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실험한 기관이었고, 그 실험은 지난 40년간 수많은 작가들의 세계를 전 세계로 확장시키는 실제적 기반이 되어왔다.


그리고 이제, 다음 장에서는 까르띠에 재단과 함께하며 동시대 예술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 현대 미술 작가 10인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려 한다.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부터 론 뮤익(Ron Mueck), 사라 시(Sarah Sze), 올리비에 사야르(Olivier Saillard), 그리고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에 이르기까지— 브랜드와 미술, 동시대성과 실험, 지역성과 세계성의 접점을 만든 작가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의 작품 세계, 재단과의 협업 방식, 그리고 왜 그들이 현대 럭셔리 하우스의 언어와 연결되었는지까지, 다음 장에서 차근차근 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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