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재단의 새로운 집: 도심 한복판에서의 예술적 실험
2025년, 까르띠에 재단은 파리 14구 블루바르 라스파이(Boulevard Raspail)를 떠나 팔레 루아얄(Place du Palais-Royal)의 역사적 건물로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이사나 주소 변경이 아니라, 재단의 문화적 위치와 미래 전략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화적 선언에 가깝다. 까르띠에 재단은 언제나 공간을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브랜드 철학과 예술적 태도가 시각화되는 장치로 활용해왔다. 따라서 공간의 이동은 곧 정체성의 진화이며, 재단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말하는 큰 사건이다.
까르띠에 재단이 1994년부터 2025년까지 자리 잡았던 장소는 파리 14구 블루바르 라스파이 261번지였다.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이 건물은 유리와 철강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구조를 통해, 예술 공간의 가장 근본적인 규칙—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과감하게 뒤흔든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다. 유리 박스 형태의 구조는 관객에게 전시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흐름 속에서 전시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내부 정원과 유리 벽, 투명한 외벽을 통해 재단은 “예술은 하나의 방에 갇혀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건축적으로 실험했다. 이 실험적 구조는 재단이 추구해온 프로그램—학제적 전시, 퍼포먼스, 동시대적 실험—과 완벽히 맞물렸고, 재단의 상징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 위치가 갖고 있던 특성은 분명했다.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난 몽파르나스 인근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재단이 초기부터 ‘중심부의 권력 질서’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둔 실험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재단은 이곳에서 Nomadic Nights, 신진 작가 최초 소개, 학제적 전시 등 기존 미술 제도에서 보기 어려웠던 "실험적" 프로그램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라스파이 건물은 30년 동안 까르띠에 재단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장소였다.
개방성, 투명성, 경계 해체. 이는 재단이 협업했던 현대 작가들의 작업 세계와도 자연스럽게 호응했다.
2025년, 재단은 파리 1구 팔레 루아얄 광장(Place du Palais-Royal) 2번지로 이전했다. 이 건물은 1855년 오스만(Haussmann) 시대에 지어진 역사적 건축물로, 한때 ‘Grands Magasins du Louvre’ 백화점과 ‘Louvre des Antiquaires’로 기능했던 화려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재단이 이 건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공간이 넓어서도, 위치가 좋아서도 아니다. 이 건물은 파리 중심의 역사적·문화적 무게를 지닌 장소이며, 바로 이 점이 재단의 다음 단계 철학과 맞닿아 있다.
재단이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술적 실험이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이다. 과거 라스파이 시절이 ‘본질적 실험’의 단계였다면, 이번 이전은 실험을 더 많은 관객과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적 이동이다. 장소의 중심성은 예술적 주장과 문화적 영향력이 더욱 넓고 강하게 퍼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오스만 시대의 아케이드형 건물은 파리의 도시 정체성을 대표한다. 재단은 이 역사적 층위 위에 새로운 현대 예술을 덧입혀, 시간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미술 제도의 중심과 브랜드 문화 전략의 조우로 완벽한 이 지역은, 루브르 박물관, 팔레 루아얄, 리볼리 거리를 잇는 세계 미술사와 문화권력의 중심이자 파리의 대표적인 문화 밀집 지역이다. 재단이 이곳으로 들어간 것은, 이제 ‘변방의 실험실’이었던 재단이 세계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동시대 예술 담론을 주도하겠다는 신호처럼 읽힌다.
팔레 루아얄 건물 내부는 다시 한 번 장 누벨이 전면 재설계했다. 그는 기존의 역사적 외관을 존중하면서도 내부는 완전히 새로운 예술 실험의 도구로 바꾸었다.
5개의 가변형 이동 플랫폼
높이 조정 가능한 전시·퍼포먼스 공간
대형 유리 천장
빛의 굴절을 이용한 확장형 갤러리
무대·워크숍·강연·퍼포먼스까지 가능한 다목적 구조
이 모든 요소는 재단의 철학, 즉 예술은 형태보다 ‘경험’이며, 공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그대로 시각화한 것이다. 이 새로운 건물은 단지 더 크거나 더 현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재단의 장기 전략—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성, 관객 참여, 확장 가능한 예술적 에코시스템—을 구현하기에 최적화된 구조였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까르띠에 재단의 사례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준다. 그렇다. 물리적 위치는 문화적 존재감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다. 라스파이 시절에는 ‘조용한 실험실’이었다면, 팔레 루아얄 시대는 ‘도시 중심에서 열리는 공개 실험 플랫폼’이다. 이전은 단순한 공간 확장이 아니라, 재단이 구축해온 예술 생태계를 더 큰 규모로 국제적 담론의 중심에 올려놓는 전략적 이동이었다.
까르띠에 재단의 2025년 이전은 예술적·건축적·사회적 차원을 모두 포괄하는 거대한 선언이다. 이전 공간이 경계를 흐리며 실험의 가능성을 탐색한 무대였다면, 새 공간은 그 실험을 세계 중심에서 다시 쓰는 장소이다.
건축은 재단의 철학을 담는 그릇이며, 장소는 재단이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하겠다는 신호이다. 팔레 루아얄의 새로운 까르띠에 재단은 이제 “동시대 예술의 실험”을 넘어서 “도시와 역사, 관객과 세계가 함께 호흡하는 열린 플랫폼”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