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까르띠에 재단 - 2

1-2 신진 작가 발굴: 까르띠에 재단이 만든 새로운 예술 생태계

by Diana H

1. 감정–지식–경험을 결합한 교육 프로그램의 혁신


까르띠에 재단이 가장 선구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전시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느끼고, 탐구하는 경험의 장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재단의 교육·문화확장 프로그램은 “감정이 이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즉,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과해 세계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 자체를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즉흥적 대화, 작품 앞에서 이루어지는 토론, 가족 단위 체험 활동, 작가와의 비공식 만남, 전시 맥락에 맞춘 도구와 해설 등은 기존 미술관의 교육 형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특히 ‘경험을 통한 이해’를 강조하는 교육 방식은, 오늘날 많은 기관이 도입하는 ‘참여형 전시’의 선구적 모델이었다.


download.jpeg 출처: afar.com

브랜드가 왜 이런 교육적 프로젝트에 투자를 했는가? 까르띠에는 명확했다. 아름다움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이며, 감각은 훈련될 수 있다. 즉, 이 프로그램들은 럭셔리 브랜드가 지향하는 ‘미적 세계관’을 대중과 공유하는 가장 깊은 방식이었다.


2. 신진 작가 발굴 — 세계적 작가의 탄생을 돕는 플랫폼


까르띠에 재단이 가장 강력하게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 분야는 신진 작가의 발굴과 세계 진출 지원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힘 있는 조합인가. 신진 작가가 국제 미술계로 진입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은 내향적 성향을 지니고 있어, 작업실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 작업과 몰입이 우선이기 때문에, 컬렉터나 재단, 기관과 직접 접촉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내가 만나온 수많은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로 갤러리에서도 마음이 맞는 담당자 한두 명과만 소통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가능한 한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물론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는 작가들도 있다. 재단이나 컬렉터, 미술관, 브랜드와 활발하게 소통하며 스스로의 작업 가치를 키우는 데 능숙한 작가들이다. 그들은 대중과 기관을 향해 자신과 작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자신의 세계를 ‘외부와의 연결’을 통해 확장한다. 브랜드 협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가는 이를 예술적 확장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작가는 예술적 자율성을 이유로 거리를 둔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브랜드—특히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럭셔리 하우스—와의 협업은, 작가에게 자신의 작업을 더 넓고 다양한 공동체에 소개할 수 있는 유효한 발화점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잘 맞는 협업일 경우, 이는 단순한 프로젝트를 넘어 작가의 커리어에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까르띠에 재단은 바로 그런 전환점을 만들어 온 기관이다. 설립 초기부터 아직 시장에서 이름이 확고히 자리 잡지 않은 젊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초청해 프랑스 또는 유럽 최초의 개인전을 열어주었고, 이 선택은 많은 작가들에게 결정적이며 생애적인 순간이 되었다.


지금은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작가들이지만, 당시에는 아직 영향력이 초기 단계에 있던 Huang Yong Ping, Matthew Barney, Sarah Sze, Takashi Murakami, Lee Bul 역시 그러했다. 이들은 모두 까르띠에 재단의 과감한 발굴과 지원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확장할 수 있었고, 이후 각자 고유의 조형 언어와 세계관을 기반으로 글로벌 현대미술을 이끄는 작가로 성장했다.


즉, 까르띠에 재단은 단순히 ‘전시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예술가의 가능성을 세계 앞에 처음으로 내보이는 무대를 꾸준히 만들어온 셈이다. 이 무대에서 시작된 초기의 발화 지점이, 훗날 작가들의 커리어가 글로벌 범위로 확장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Huang Yong Ping (1990) — 중국 실험미술의 중심 작가가 되기 전 유럽 무대에 소개

monumenta.jpg Huang Yong Ping 전시 일부 이미지 컷 (출처: usinenouvelle)

Matthew Barney (1995) — Cremaster Cycle의 신화를 쓰기 이전 첫 국제적 주목

3-Matthew-Barney-Fondation-Cartier-11.jpeg Matthew Barney, “SECONDARY,” 2023, © Matthew Barney, production still byJulieta Cervantes, courtesy

Sarah Sze (1999) — 글로벌 조형예술의 핵심 작가로 성장하기 직전

Centrifuge-2017-Haus-Der-Kunst-2017-HR-MB-002.jpg Cartier Foundation 에서의 Sarah Sze 전시 일부 (출처: World Art Foundations)

Takashi Murakami (2002) — 슈퍼플랫 이론이 확산되기 전 서구 첫 대규모 전시 제공

1156_1@2x.jpg Cartier Foundation 에서의 Takshi Murakami 전시 일부 (출처: Perrotin)

Lee Bul —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 서구 미술계에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 전시

8fc7e83f8dc5893eb1054fdd882d2ab0.jpg Cartier Foundation 에서의 Lee Bul 전시 일부 (출처: whitehotmagazine)

이들은 모두 재단의 큐레이션을 통해 세계적 예술 생태계로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raymond-depardon-triennale-milano-2021.jpg Raymond DepardonLa vita moderna (출처: 까르띠에 재단)

까르띠에 재단은 사진가이자 영화감독 Raymond Depardon과도 긴밀히 협업했는데, 그는 재단이 기획한 야노마미 관련 전시를 위해 단편 영화·다큐멘터리 요소를 제작했다. 야노마미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인류학 전시를 넘어 예술·인류학·철학·환경윤리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재단의 대표적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야노마미라는 특정 공동체를 다루면서도, 그들의 언어·신화·삶의 방식·자연과의 관계를 깊이 존중하는 접근을 취했다는 점에서, 동시대 문화기관이 원주민 공동체를 다루는 방식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오늘날 미술계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예술과 생태 담론’ 흐름의 초기 모델로도 평가된다. 인간과 자연, 생존과 생태, 문화와 환경이라는 복합적 주제를 예술의 언어로 다룬 가장 선구적인 시도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의 문화재단이 현대 인류의 문제를 예술로 사유한 매우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정 국가나 시장 중심의 홍보가 아니라, 인류적·환경적·존재론적 질문을 다루는 장기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야노마미 프로젝트는 까르띠에 재단이 지닌 철학—“예술은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상징적 사례로 남는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 후원이나 작품 구매가 아니라, 예술가의 사고과정 전체를 브랜드가 지지하는 ‘장기적 생태계 구축’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 이불(Lee Bul)이다.


까르띠에 재단은 2007년, 이불 작가에게 유럽 주요 기관 중 가장 초기에 해당하는 단독 전시(프로젝트 규모 라인업)를 마련하며 그녀의 작업 세계를 서구 관객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국제 무대에서 급부상하던 그녀의 명성을 프랑스·유럽 문화권에서 확실히 자리 잡게 한 결정적 기회였다. 전시는 이불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들을 모두 담고 있었다.

여성성, 신체성, 젠더와 정치적 내러티브

유토피아적 건축 구조에 대한 탐닉

사이보그와 몬스터의 정체성 실험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된 조형 언어

lee-bul-on-every-new-shadow-2007.jpg 이불 작가 전시 일부 (출처: Lehmmann Maupin)

특히 이불의 사이보그 조각과 유기적 구조물은 당시 프랑스 관객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녀가 헤이워드 갤러리(2018), 그로피우스 바우(2018) 등 세계적 기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갖게 되는 흐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까르띠에 재단의 선택은 ‘동시대 아시아 여성 작가의 세계관을 서구 미술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순수한 지원의 형태’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즉, 재단은 이불을 “전 세계적 작가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예술가로 판단했고, 실제로 그녀의 커리어는 그 예측을 증명하듯 국제적 규모로 엄청난 영향력과 함께 확장되었다.


3. 비서구 문화에 대한 진정성 — 글로벌 문화지리학의 확장


까르띠에 재단이 진정으로 혁신적이었던 또 다른 지점은, 서구 중심의 미술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예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기관 중 하나라는 점이다. Seydou Keïta(1994년 전시), Malick Sidibé(1995년과 2017년 전시), J.D. ’Okhai Ojeikere(2000년 전시) - 이들은 모두 서구 미술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들로, 재단의 전시 이후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3000_1800px_seydou_keita.jpg Seydou Keïta 작품 일부 (출처: Foam)


또한 콩고의 Bodys Isek Kingelez, Chéri Samba 등의 작가에게 대규모 단독전을 제공하고, 2015년에는 Beauté Congo 1926–2015라는 대형 전시를 통해 한 국가의 문화적 역사를 예술을 통해 조명했다.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의 Guillermo Kuitca, 브라질의 Adriana Varejão, 멕시코의 Graciela Iturbide, 콜롬비아의 Olga de Amaral 등 이들은 모두 재단을 통해 유럽의 미술계에 정식으로 소개되었다. 이 같은 큐레이션은 단순한 지역 소개가 아니라, 예술의 지리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문화적 개입이자, 오늘날 DEI(다양성·포용성) 논의보다 앞선 실천적 모델이었다.

olga-de-amaral-miami-credit-a-completer.jpg Cartier Foundation 에서의 Olga de Amaral 전시 일부


4. 인간–자연–세계에 대한 사유 — 학제적 전시의 중심


1990년대 이후 까르띠에 재단은 주제 중심의 대규모 전시를 통해 철학·과학·인류학·예술을 넘나드는 융합적 전시 모델을 구축했다. 재단은 철학자 Paul Virilio, 인류학자 Bruce Albert, 과학자와 환경 사상가 Bruno Latour와 같은 지성인들과 협업해, 예술을 새로운 지식의 언어로 확장시켰다.


“우리는 지금,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예술이 지식과 만나는 방식, 혹은 지식이 예술이 되는 방식을 꾸준히 실험해 온 것이다.


특히 자연과 생태에 관한 전시는 까르띠에 재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분야이다. 대표적으로 The Great Animal Orchestra (2016)과 Trees (2019) 가 있다.

bernie-krause-et-united-visual-artists-le-grand-orchestre-des-animaux-2016.jpg The Great Animal Orchestra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재단을 대표하는 전시 중 하나인 The Great Animal Orchestra는 ‘자연의 소리’를 통해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미국의 생태 음향학자 버니 크라우스가 50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 채집한 동물들의 소리를, 런던의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UVA가 웅장한 시각적 설치로 재해석했다. 관객은 마치 거대한 숲 깊은 곳에 들어간 것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리듬을 온몸으로 듣게 된다.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다. 소리는 사라지고 있고, 그 사라짐은 어떤 생명체의 멸종과 바로 연결된다. 까르띠에 재단은 “우리가 잃어가는 세계의 목소리”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식물학자, 철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구성한 '숲의 인식학 (Trees)' 전시는 전 세계 주요 기관에서 순회하며 환경·생태 담론을 미술관의 중심 주제로 끌어올렸다. 예술가, 식물학자, 철학자가 함께 만든 ‘숲의 인식학’이다. 여기서 나무는 배경이 아니다. 우리와 소통하고 기억하며, 자연 생태계를 이끄는 ‘주체’로 등장한다. 전시는 나무를 보는 방식 자체를 뒤집어 놓았다. 나무의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과학 시각화,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해석된 숲의 형상, 인간–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한 철학적 텍스트들이 연속적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이 전시는 파리를 시작으로 상하이·밀라노 등으로 확장되며, 숲·생태·공존이라는 주제를 세계 미술계가 본격적으로 다루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까르띠에 재단의 생태 전시는 ‘환경 캠페인’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든 작업이다.

eve-arb-10734.jpg Trees 전시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5. 퍼포밍 아트의 실험장


1990년 Velvet Underground의 재결합 공연을 시작으로, 까르띠에 재단은 전시 공간을 무대로 확장하는 파격적 실험을 이어갔다. 1994년 시작된 Nomadic Nights는 미술관의 공간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 아티스트들이 재단의 공간을 점령해 단 하루만 존재하는 퍼포먼스를 만들어냈다. 미술관은 보통 조용하다. 조각과 회화가 놓여 있고, 관객은 걸으며 바라본다. 하지만 까르띠에 재단의 Nomadic Nights는 이 규칙을 완전히 깨버렸다. 이 프로그램은 1990년 전설적 밴드 Velvet Underground의 재결합 공연에서 시작됐다. 그날 밤, 전시 공간이 공연장이 되었고, 음악과 예술이 섞이는 현장을 보고 재단은 이렇게 결심한다.

vue-exposition-generale-2025.jpg Nomadic Nights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전시장은 장르를 끌어안는 열린 무대가 될 수 있다.”

valentin-noujaim-space-afrika-2025.jpg Nomadic Nights의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완성된 완벽한 공연'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실험’을 추구했기에,

패티 스미스 Patti Smith가 시·음악·퍼포먼스를 섞어 전시실을 채우고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 Trisha Brown이 유리 건물 외벽을 무대로 삼고

아티스트 마리 로시에 Marie Losier가 ‘멕시코식 퀴어 레슬링’을 전시실 한가운데에서 펼치고

신진 아티스트들이 단 하루만 이 곳에 존재하는 극장을 만들었다.

olivier-saillard-moda-povera-vi-les-vetements-des-autres-soiree-nomade-2024.jpg Olivier Saillard (출처: 까르띠에 재단)

이 실험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바로 Olivier Saillard(올리비에 사야르)의 참여였다. 그는 패션 큐레이터이자 퍼포머로, 옷이라는 매우 일상적인 오브제를 통해 ‘기억·시간·신체·정체성’을 탐구하는 독보적 예술가이다. 과거 패션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명성을 쌓았지만, 그의 퍼포먼스는 패션의 아카이브를 “보이는 형태”에서 “살아 움직이는 서사”로 바꿔 버린다는 점에서 미술관·패션계 모두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Nomadic Nights에서 사야르는 ‘의복(performance with clothes)’이라는 장르를 사실상 새롭게 정의했다. 옷을 단순한 패션 아이템으로 보지 않고, 누군가의 기억, 감정, 시간의 축적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기억이 담긴 옷”을 무대 위에서 다시 펼쳐 보이며, 옷→신체→기억→관객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사슬을 만들어 관객에서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Nomadic Nights가 추구해온 “공간의 민주화”와 완벽하게 맞물리는 지점이다. 이 퍼포먼스는 옷장 속 사적인 물건들이 예술적 ‘사건’으로 되살아나는 장면을 만들어냈고, 그 순간 미술관은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장소가 되었다. 이는 까르띠에 재단이 말하는 ‘감정이 지식의 매개가 된다’는 철학과 정확히 맞닿는다. 이러한 방식은 Nomadic Nights 전체가 추구해 온 ‘열린 구조’의 실천이기도 했다. 그래서 재단은 사야르 이후 더욱 대담한 형식의 예술 실험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러한 실험은 결국 까르띠에 재단이 추구해온 ‘새로운 생태계의 구축’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재단은 전통적인 미술관의 규범—화이트 큐브, 사일런스, 일방향적 감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미술관을 실험이 ‘발생하는 현장’, 예술이 실제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으로 만들었다.


그 결정적 장면이 바로 202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실험적 예술기관 The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를 초청해, 재단 공간 전체를 일주일간 통째로 위임한 사건이다. 까르띠에 재단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 초청은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레지던시·공연·워크숍·음악·퍼포먼스 등 전 프로그램을 외부 기관에게 ‘전권’으로 맡기는 파격적 시도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j2-fdc-lgi-vf-0129.jpg © Vassili Feodoroff (출처: 까르띠에 재단)

이는 현대 미술관의 역사에서도 매우 드문 방식이다. 대부분의 문화 기관은 자신의 브랜드 가치, 공간의 규칙, 전시 운영 방식 등을 철저히 통제한다. 하지만 까르띠에 재단은 오히려 그 통제를 내려놓음으로써, 예술가들이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전시장을 무대를 넘나드는 복합적 실험의 장으로 변환하도록 허용했다. 이 선택은 재단의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 예술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 공간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되는 감각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은 재단의 전 프로그램에 일관되게 흐른다. 신진 작가에게 첫 무대를 열어주는 것, 아직 시장에서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를 유럽에 처음 소개하는 것, 철학자·과학자·인류학자와 함께 전시를 만드는 것, 그리고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퍼포먼스를 실험하는 것까지. 모두 예술 생태계를 넓히고, 새로운 참여자를 초대하며, 문화적 무대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결국 까르띠에 재단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기관이 아니라, **예술적 관계·지식·경험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동시대 경험의 실험실’**이라는 정체성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재단이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세계로 진출시키는 방식 역시 이 ‘실험실적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여기서 핵심은 ‘재단이 예술가를 선택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재단이 스스로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생태계 안에서 작가가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생명력 있는 환경을 만든 주체였다는 점이다.


즉, 까르띠에 재단이 제공한 무대는 단순한 지원의 장이 아니라, 예술가의 세계가 다시 한 번 확장되고, 관객의 감각이 재구성되며, 예술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재단은 그 목적을 단순히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일관된 큐레이션과 실험을 통해 실현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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