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까르띠에 재단 - 5 (1)

무라카미 다카시

by Diana H

“슈퍼플랫 세계를 글로벌 문화로 확장시킨 시각언어의 창조자”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는 현대미술·대중문화·럭셔리 브랜드의 경계를 완전히 새롭게 만든 동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미지 생산자다. 그의 세계가 유럽 미술계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조명된 순간은 2002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의 전시 《Kaikai Kiki》였다. 이 전시는 일본 전후 미술·오타쿠 문화·애니메이션·불교 상징·글로벌 소비주의 이미지를 하나의 평면적 우주로 구축한 그의 미학을 서구에 소개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당시 서구 미술계는 대중문화 기반의 예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까르띠에 재단은 무라카미의 시각 언어가 “동시대 감수성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는 이미지 체계”라고 판단했다.

무라카미 takashi-murakami-serpentine-gallery-2002.jpg 까르띠에 재단 전시 일부 (출처: 까르띠에 재단)
무라카미1155_1@2x.jpg 까르띠에 재단 전시 일부 (출처: Perrotin)


무라카미의 ‘슈퍼플랫(Superflat)’은 우키요에의 평면성에서 출발해, 애니메이션·만화·피규어·캐릭터·상품 이미지까지 모두 동일한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시각 이론이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전후 일본 사회가 가진 현실–기억–정체성을 하나의 시각적 원리로 압축한 문화적 메커니즘이다. 그래서 그는 종종 “이미지의 철학자”, “동아시아 시각문화의 번역자”로 불린다.


murakame.png 무라카미의 Superflat 이론을 보여주는 작품 (출처: Factorytwofour)
takashi-murakami-japanese-artwork-wooarts-16.jpg (출처: Wooarts.com)


무라카미는 예술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꾼 인물이다. 미술–패션–대중문화–디지털 커뮤니티가 서로 분리되어 있던 시대에 그는 이 모든 영역을 하나의 연속적인 이미지 생태계로 통합했다. 그 결과 미술 시장에서도 회화·조각·에디션 전 분야에서 강력한 블루칩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에서는 전후 시각문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재해석한 “국가적 대표 작가”, 글로벌 미술계에서는 “21세기 시각언어의 설계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본의 정통 화단 교육 기관인 **도쿄예술대학(Tokyo University of the Arts, 東京藝術大学)**에서 일본화(Nihonga) 전공으로 학사–석사–박사까지 모두 마친, 매우 고전적이고 제도적인 미술 배경을 가진 작가였다. 일본에서 일본화 전공은 ‘동양화의 마지막 보루’라는 인식이 있을 만큼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영역이었다. 무라카미는 그 시스템 안에서 한계를 강하게 느꼈고, “세계 미술계에서 경쟁하려면 일본이 아니라 뉴욕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내용이다.


Takashi-Murakami-1024x576.jpg Takashi Murakami (출처: Deodato Arte)


그는 1990년대 초 스스로 뉴욕행을 선택했는데, 그 결정은 무라카미의 미학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뉴욕의 시장주의·브랜드 문화·디지털 이미지·동시대 예술 언어를 접하면서,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미국의 소비자본주의 이미지를 융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슈퍼플랫(Superflat)’ 철학이다. 즉, 슈퍼플랫은 단순한 시각 스타일이 아니라 “일본화의 전통적 평면성 + 대중 이미지의 폭발적 확산 + 글로벌 소비문화의 구조”를 결합한 그의 세계관이자, 일본의 보수적 화단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선택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099.jpg Takashi Murakami (출처: The Broad)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현대미술 전시가 연달아 취소되던 시기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이를 확장의 계기로 삼았다. NFT·메타버스·가상 전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이미지가 어떻게 생성·복제·유통·소비되는지를 실험했고, 그 결과 Murakami.Flowers 시리즈는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시각언어로 받아들여졌다. 무라카미가 이를 단순한 수익 모델이 아니라 ‘이미지 확산 구조’를 탐구하는 예술적 실험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그는 더 이상 팝 아티스트를 넘어, 21세기 이미지 생태계를 설계하는 시스템 구축자로 자리 잡았다.


s9fp5FTJY7hb3QiQBTzyZY.jpg (출처: Wallpaper)


무라카미 2020_HGK_16896_0520_000(takashi_murakami_a_panda_family_against_the_blue_sky041529).jpg (출처: Gagosian)

무라카미는 예술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꾼 인물이다. 미술–패션–대중문화–디지털 커뮤니티가 서로 분리되어 있던 시대에 그는 이 모든 영역을 하나의 연속적 이미지 생태계로 통합했고, 그 중심에 그의 스튜디오이자 제작·큐레이션·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조직인 Kaikai Kiki가 있다. 이 조직은 단순히 그의 작업을 대형 시스템으로 제작하는 역할을 넘어, Mr.(미스터), Aya Takano(아야 타카노) 같은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문화 생산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무라카미는 더 이상 “혼자 작업하는 작가”라기보다,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팀을 통해 구현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확장하는 프로듀서이자 비즈니스 맨, 그리고 AI·디지털 이미지 시대에 가장 앞서 나가는 동시대형 아티스트의 모델이 되었다. 이 점은 그가 단지 하나의 스타일을 만든 작가가 아니라, 이미지·산업·기술·시장을 연결해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구축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2020_HGK_17454_0072_000(takashi_murakami_kaikaiand_kiki_lots_of_fun_and_kaikaikiki_and_me105349).jpg (출처: Christie's)
75625-TakashiMurakami,KaikaiKiki,2005,detail,vuedinstallation,FondationLouisVuitton,Paris..jpg (출처: 루이비통 재단)

무라카미의 커리어를 결정적으로 바꾼 순간은 단연 2003년 루이비통(Louis Vuitton)과의 협업이었다. 2000년대 초반 럭셔리 산업은 Y2K 세대의 등장과 함께 빠르게 젊어지고 있었지만, 루이비통은 여전히 전통·클래식·유산(heritage)의 이미지가 강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역사 깊은 하우스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 루이비통은 조금 ‘지루해진’ 브랜드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을 무라카미가 재해석한 ‘멀티컬러(Multicolor)’ 컬렉션은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흰 바탕의 모노그램 위에 알록달록한 색을 더한 이 디자인은 단지 가방이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가 동시대 예술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협업의 중심에는 당연히 무라카미가 있었고, 패션계만 보던 고객들도 ‘현대 미술 작가 무라카미’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Louis-Vuitton-x-Murakami-Campaign-images-Photo-by-Inez-Vinoodh-1-scaled-e1735329641703.jpeg Louis Vuitton x Murakami Spring 2025 Ad Campaign (출처: Schön! Magazine)
Louis-Vuitton-x-Murakami-Summer-Ad-cAMPAIGN-2025-The-Impression-004-scaled.jpg Louis Vuitton x Murakami Spring 2025 Ad Campaign (출처: The Impression)
takashi-murakami-louis-vuitton-artycapucines-vii-release-date.jpg (출처: Modern Notoriety)

나는 개인적으로 이 순간이 “예술의 대중화가 럭셔리를 통해 이루어진 첫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통해 예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무라카미는 그 문을 대담하게 연 인물이었다. 무라카미와 루이비통의 협업은 2003년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어졌다. 2008년 ‘The Monogramouflage’ 컬렉션과 2009년 ‘Cosmic Blossom’ 컬렉션에 이어 다양한 협업들은 2020년대에도 재조명될 만큼 강력한 문화적 충격을 남겼고, 실제로 일부 제품들은 루이비통의 VIP 고객에게 먼저 선구매 기회가 주어졌을 정도로 높은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즉, 무라카미는 단순히 ‘브랜드와 협업한 작가’를 넘어서, 럭셔리 브랜드의 세계관을 재창조한 첫 현대미술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협업은 루이비통에만 그치지 않았다. 스트릿 패션의 아이콘인 Supreme, Z세대 중심의 글로벌 테크 액세서리 브랜드인 Casetify, 차세대 팝 아이콘인 Billie Eilish, 그리고 2020년대 가장 강력한 케이팝 스타이자 국민 여동생들인 뉴진스와의 협업까지. 무라카미는 단순한 미술계 스타를 넘어, 대중문화·패션·음악·디지털 커뮤니티의 공통 시각 언어를 만드는 작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디자인정글.jpeg (출처: 디자인정글)


201be823-dd17-449e-8c29-a8da0c61335f_rw_1920.jpg (출처: https://leeyyohan.com/casetify-x-murakami)


특히 Casetify와의 협업은 수많은 셀럽이 그의 플라워 캐릭터 케이스를 들고 나오며 “현대미술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소비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확장했다. 누군가는 그를 너무 상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일상의 감각 안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최초의 현대미술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와 루이비통의 협업은 단순히 예쁘고 화려한 컬렉션이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가 현대미술을 어떻게 세계관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이 전환점은 지금도 유효하다. 2025년 현재까지도 무라카미는 “동시대 비주얼 시스템의 중심”이라는 위치를 잃지 않았고, 그의 이미지 세계는 여전히 글로벌 브랜드와 문화계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무라카미의 태도는 까르띠에 재단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동시대 감수성(contemporaneity and sensibility)’과 정확하게 교차한다. 재단은 2002년, 그의 유럽 첫 대규모 전시를 준비하면서 무라카미의 세계가 단순한 일본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넘어 새로운 글로벌 시각언어의 출현이라는 사실을 먼저 간파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결정은 이후 그가 NFT·메타버스·애니메이션·브랜드 협업으로 확장해나갈 잠재력을 정확히 읽어낸, 재단의 선구적 큐레이션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louis-vuitton-takashi-murakami-grand-palais_dezeen_2364_col_11-scaled.jpg (출처: Dezeen)


오늘날, 1962년생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 럭셔리 브랜드가 가장 섭외하고 싶어하는 인물, 그리고 **대중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힙스터 현대미술 작가’**를 꼽으라면 무라카미 다카시는 거의 독보적이다. 미디어에 비추어지는 모습으로 보기엔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기반은 대단히 정통적이고 단단하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며 철저한 아카데믹 트레이닝을 받은 그는, 일찌감치 일본 미술계의 한계를 인지하고 미국에서 활동해야 세계적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 내부에서는 그의 작업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무라카미는 오히려 이 ‘상업성’을 동시대 이미지 구조의 핵심으로 분석하며, 일본의 덕후 문화·전통 회화·미국 소비사회를 결합한 ‘슈퍼플랫(Superflat)’이라는 독자적 이론을 구축했다.


12_1143@2x.jpg (출처: Perrotin)


그의 작업은 결국 미술, 패션, 스트리트 컬처, 디지털 커뮤니티를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 생태계로 묶어낸다. 무라카미는 그렇게, 미술계 내부를 넘어서 대중문화 전체를 흔드는 이미지 생산자이자 비즈니스 프로듀서, 그리고 21세기 시각문화를 재설계하는 시스템 구축자의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의 힘은 단지 스타 작가로서의 위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이끄는 ‘Kaikai Kiki’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하나의 생태계이자, 무라카미가 가진 시각언어가 어떻게 세대 간·문화 간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실이다. 작가로서의 역량과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구조적 사고를 동시에 갖춘, 매우 드문 형태의 현대미술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무라카미의 존재가 “현대미술은 어렵지 않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숨 쉬고 있다.” 라는 메시지를 실제로 증명해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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