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허스트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는 19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방향을 가장 극적으로 바꾼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죽음·쾌락·자본·믿음”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사회 구조를 예술의 중심축으로 올려놓았고, 그 과정에서 미술계·시장·대중문화가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국가별로 선호하는 작가의 색깔이 다르듯, 현대미술의 거대한 물줄기에서도 허스트는 언제나 극단과 논쟁의 지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논쟁은 그의 예술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시대를 읽는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시각언어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으며, 그 질문은 2021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의 대형 회화 전시 《Cherry Blossoms》에서 다시 한 번 다른 얼굴로 피어올랐다.
까르띠에 재단이 허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재단은 1980년대 설립 초기부터 “동시대 감수성(contemporaneity and sensibility)”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는 작가들을 발굴해 왔다. 그 철학 아래에서 허스트는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름이었다. 1990년대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상징으로 등장한 그는, 죽음과 신앙·약품·생명체·해부학적 이미지로 현대인의 무의식을 시각화하며 ‘스펙터클의 미학’을 창조했다. 포름알데하이드 용액 속의 상어, 절단된 소와 송아지, 나비 날개로 가득한 회화, 수백 개의 알약으로 채운 유리 캐비닛은 단 한 번 보는 순간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을 남기며, 현대미술이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 자체를 재정의했다. 까르띠에 재단의 관점에서 허스트는 현대인의 욕망, 죽음, 소비, 믿음이 어떻게 이미지로 변환되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가였다. 《Cherry Blossoms》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사하고 낭만적인 회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명과 소멸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극단적으로 확대해내는 허스트의 방식 그대로였다. 벚꽃의 아름다움은 그의 작업에서 늘 존재해온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놓여 있었고, 그 이중성이 바로 까르띠에 재단이 허스트에게서 읽어낸 동시대의 미학이었다.
허스트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충격적인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개념미술의 감각화”라는 새로운 공식을 탄생시켰다. 이전까지 개념미술은 종종 난해하거나 철학적 텍스트 중심이라고 여겨졌지만, 허스트는 철학적 질문을 대중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감각적 오브제로 번역했다. 상어, 해골, 나비, 약품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어떤 문맥에 놓느냐에 따라 인간의 죽음, 고통, 쾌락, 믿음, 소비를 읽어낼 수 있는 강력한 상징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허스트는 비평가들에게 “현대의 신화 생산자”라고 불렸다.
그는 또한 시장 구조를 뒤흔든 작가로도 유명하다. 2008년, 허스트는 역사상 최초로 대형 갤러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만으로 경매를 직접 열었다. 허스트의 본고장인 런던 Sotheby’s에서 진행된 이 경매는 단 하루 만에 약 2억 달러(당시 약 2,5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생존 작가 개인 경매로는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갤러리–작가–기관–수집가로 이어지던 기존의 미술 시장 구조를 무너뜨리며, 작가가 스스로 시장을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허스트는 예술을 제작하는 작가이자, 시장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전략가였고, 그의 이러한 태도는 이후 수많은 작가·딜러·컬렉터에게 영향을 미쳤다.
2008년 1,030만 파운드 (£10.3M → 약 175억 1,000만 원)에 낙찰된 데이미언 허스트의 《The Golden Calf》가 175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가격을 가진 이유는 18K 금을 이용한 "비싼 재료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이 작품이 현대 사회 전체를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 ‘황금 송아지’는 인간이 부와 권력을 숭배하는 욕망을 의미하는데, 허스트는 이 신화를 포르말린 속에 떠 있는 실제 황소와 18캐럿 황금 뿔·발굽으로 재해석하며, 현대 자본주의가 무엇을 ‘신처럼 숭배하는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 작품은 허스트가 개발한 “죽음을 보존한 조각” 언어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인데, 살아 있던 생명을 멈춰 세워 시간 속에 고정함으로써 우리가 불편하게 외면해 온 유한성과 두려움을 강제로 마주하게 만든다. 여기에 2008년, 허스트가 전통적 갤러리를 우회하고 직접 소더비 경매에 신작을 올렸던 역사적 사건—현대미술 시장의 규칙을 뒤집어버린 하루—의 중심이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하나의 ‘시장 역사’를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이런 규모와 상징성을 갖춘 포르말린 조각은 사실상 유일해 희소성이 극도로 높으며, 허스트의 핵심 테마(죽음, 욕망, 소비, 종교)를 가장 완벽하게 한데 묶은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미술관과 주요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뮤지엄 레벨 작품’이라는 점도 가치를 높이는 요소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죽음과 욕망, 자본과 신화, 소비문화와 미술시장의 구조가 한 번에 겹쳐지는 지점에 서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175억 원이라는 가격은 단순히 비싼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시장, 욕망을 설명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허스트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매출 규모가 큰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가고시안은 허스트를 단순한 스타 작가로 다루지 않았다. 그를 “현대미술의 구조를 움직이는 플랫폼”으로 이해했다. 2012년, 가고시안은 전 세계 15개 지점에서 동시에 허스트의 Spot Painting 전시를 진행했다. 이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허스트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글로벌 브랜드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증명한 프로젝트였다. 가고시안은 허스트의 세계가 단일한 스타일이나 특정 시리즈로 읽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시각문화의 지도”에 가깝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가고시안은 허스트의 전성기를 함께 만들었고, 허스트 또한 가고시안과의 협업을 통해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장했다.
허스트의 시장 기록 또한 현대미술의 경제 구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인 <For the Love of God> (2007) 은 백금 두개골 위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작품으로, 제작비만 2천만 파운드를 넘었다. 이 작품은 약 5천만 파운드(약 900억 원)에 판매되며 생존 작가 작품 중 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나비 회화, 스팟 페인팅, 약품 캐비닛 등도 여전히 고가 경매에서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며, 허스트는 시장에서 가장 확고한 블루칩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의 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2007–08년 Levi’s와 진행한 프로젝트는 미술–패션–소비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이 어떻게 대중문화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실험한 대표적 사례다. 허스트는 상업성을 숨기지 않는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그 이유는 그가 상업과 소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구조 자체를 예술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는 “돈은 현대의 종교”라고 말하며, 자신은 그 종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각화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브랜드 협업은 흔히 말하는 ‘상업화’라기보다, 현대 소비사회의 심리를 해부하는 연장선에 가깝다.
영국에서 허스트의 위상은 여전히 특별하다. 그는 테이트 모던, 구겐하임, 퐁피두 등 세계적 기관에서 회고전을 연 작가이지만, 고향인 영국에서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1990년대 그는 침체되어 있던 영국 미술계를 일깨우고, 현대미술을 대중적 논쟁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YBA 시대에 허스트는 “영국 현대미술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이 변화는 오늘날 영국이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그의 존재는 영국 현대미술사에서 단순히 한 명의 스타 작가가 아니라, 미술계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킨 상징적 사건 그 자체로 남아 있다.
최근 허스트는 회화·조각·설치뿐 아니라 AI·디지털 이미지·NFT와 같은 기술 기반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그의 NFT 프로젝트 《The Currency》(2021)는 현실의 스팟 페인팅을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한 작업으로, 예술과 화폐·기술·시장 구조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그는 기술이 바뀌어도 예술의 본질—즉 인간이 욕망하고 두려워하고 신화적 상징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는 듯 보인다. 허스트는 앞으로도 이러한 실험을 지속하며 현대미술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허스트의 예술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를 드러내는 시각적 장치다. 까르띠에 재단이 《Cherry Blossoms》를 통해 그를 다시 조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벚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 뒤에 숨은 생명과 죽음의 순환, 욕망의 구조, 감각의 폭발은 허스트가 평생 탐구해온 주제이자, 동시대 미술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 그는 여전히 논쟁적이고, 여전히 자극적이며, 여전히 시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비춘다. 그래서 허스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현대의 신화를 만들고 있는 작가”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