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200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 몽수리 공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은 ‘동시대 감수성(contemporaneity and sensibility)’이라는 재단의 철학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줄 작가를 찾고 있었다. 기술, 신체, 도시, 기억, 욕망—현대 사회의 전환점을 이루는 핵심 개념들이 하나의 조형 언어로 응축되어 있으며, 동시에 미래적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모두 포착할 수 있는 작가. 그리고 2007–2008년, 재단은 그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한 이름을 선택했다. 한국 작가 이불(Lee Bul)이었다.이불의 까르띠에 재단 개인전 《Lee Bul: On Every New Shadow》(2007–08) 는 재단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전시로 평가된다. 이는 재단이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최초로 이불에게 대규모 개인전을 허용한 전시이자, 동시대 조각·설치의 미래적 지평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건이었다. 당시 재단은 “이불은 기술·신체·건축적 상상력을 넘나들며 현대 문명이 구축한 질서를 가장 정교하게 시각화하는 작가”라고 밝히며 그녀를 초대했다.
이불은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로 진출하던 시기에,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작가였다. 1990년대 초 행위미술 퍼포먼스—특히 고통, 신체, 여성의 존재 조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실험—을 통해 주목받은 그는, 이후 사이보그(Cyborg) 시리즈로 미술사를 흔들었다. 이 사이보그 조각들은 육체적 완성, 테크노-바디, 욕망의 기계화라는 개념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최초의 동아시아 여성 작가의 작업이었고, 이는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문』과 같은 이론적 논의와도 맞닿아 있었다.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1985)은 인간/기계·남성/여성·자연/문화 같은 모든 전통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정체성 모델을 제시한 페미니즘·포스트휴먼 연구의 핵심 텍스트다. 이불의 사이보그 조각은 바로 이 이론을 가장 정교하게 시각화한 사례로, 팔다리가 결손된 몸, 성별과 기능이 모호한 신체, 인간과 기술이 결합된 구조를 통해 ‘완전함’에 대한 사회적 강박을 비판하고 탈-젠더적 존재론을 구축한다. 이 점에서 이불은 아시아 작가 중 해러웨이의 논의를 조형적으로 구현한 유일한 현대미술가로 평가된다.
이불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눈앞의 조형물이 ‘조각’인지 ‘건축’인지, 혹은 인간의 미래를 예고하는 상징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매끈하게 봉합된 인공 피부, 잘려 나간 신체의 파편, 기계적 관절, 유토피아 건축 모델을 연상시키는 구조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몸처럼 연결되며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이불은 1990년대 한국에서 시작해 단숨에 국제 미술계의 중심으로 뛰어오른 작가다. 그러나 그녀가 오늘날 ‘아시아를 대표하는 포스트휴먼 조각가’로 불리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이불이 처음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실험적 퍼포먼스였다. 실제 생선에 꽃을 꽂아 장신구처럼 꾸민 〈Majestic Splendor〉 같은 작품은 당대 미술계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아름다움과 부패, 여성성과 혐오, 장식과 죽음이 한 몸처럼 겹쳐 있는 이 작업은 뉴욕 MoMA PS1 전시에서 화학 반응 문제로 전시가 중단되는 해프닝까지 낳았다. 이 사건은 동시에 이불의 초기 세계를 정의했다. 즉, “신체는 어떻게 규범에 의해 구성되는가?”, “아름다움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1997년 이후, 이불의 세계는 급격히 확장된다. 신체의 파편과 기계적 구조가 결합한 〈Cyborg〉(사이보그) 시리즈,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공포를 기묘하게 뒤틀어 놓은 〈Monster〉 시리즈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들은 단순히 ‘미래적’이거나 ‘기계적’인 조형물이 아니었다. 고대 조각의 ‘완전한 신체’ 이상을 해체하면서, 인간·기계·욕망이 얽힌 21세기적 정체성을 새롭게 제안하는 조각이었다. 그래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은 이불의 작품을 두고 이렇게 쓴다.
“고전 조각의 신체 미학을 가장 급진적으로 뒤집은 동시대 조각의 전환점.”
이불에게 결정적인 전환이 찾아온 시점은 2007–2008년, 파리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개인전 《On Every New Shadow》였다. 까르띠에 재단은 1980년대 설립 이래 동시대 감수성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하는 기관으로 유명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 여성 작가를 단독으로 초대하는 일은 매우 드문 사례였다. 재단은 왜 이불을 선택했을까? 까르띠에 재단의 기록은 비교적 명확하다. “기술·유토피아·감각·신체·건축적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조각 언어.” 이불의 작품이 가진 학제적 구조, 건축적 스케일, 포스트휴먼적 시각은 재단이 추구하는 미래적 감수성과 정확히 겹쳤다. 그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선구적이었다. 이후 이불은 런던 하이워드 갤러리와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대형 회고전을 열며 명실상부한 국제 작가로 자리 잡았다.
최근 이불의 세계를 가장 입체적으로 보여준 전시는 2023–2024년 리움미술관 회고전이다. 1990년대 생선 퍼포먼스부터 사이보그 조각, 유토피아 건축 모델까지 30여 년의 작업이 한 공간에 모였다. 특히 사이보그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매끄럽고 차가운 표면, 인간의 신체를 모방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벗어난 형태는 관객에게 강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기술은 우리를 확장시키는가, 아니면 분해하는가?”
리움 전시는 이불이 30년 동안 구축해온 조형 세계가 단순히 매체의 확장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였음을 가장 입체적으로 증명한 전시였다. 생선과 꽃으로 만든 초기 퍼포먼스에서 드러난 ‘몸의 불안정성’, 사이보그 조각이 보여주는 ‘혼종적 신체’, 그리고 유토피아적 건축 구조물 속에 숨겨진 ‘기술적 미래’까지—이불은 언제나 신체·기술·정체성·미래라는 동시대의 근본 질문을 다층적으로 탐구해온 작가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불이 한국 출신이지만 그녀의 예술 언어가 세계에서 가장 ‘국적을 초월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작품 속엔 전통적 한국 미학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보편성과 급진성 때문에 세계 미술기관들이 한국보다 먼저 이불을 발견하고 주목했다. 예컨대 MoMA 전시에서 화제가 되었던 생선 바느질 작업은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바느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한국 여성 노동의 은유이기도 했다. 이런 감각적·사회적 층위들을 가장 먼저 읽어낸 곳이 바로 까르띠에 재단이었다. 재단은 이불을 세계에 소개한 첫 기관으로, 이후 글로벌 미술계가 그 선택을 뒤따랐다. 한 여성 작가가 신체와 기계의 경계를 해체하며 미래의 인간을 상상하는 일—이불의 작업은 그 자체로 시대를 비추는 하나의 미래적 신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앞에 서면 늘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미래의 인간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답을, 이불은 지금도 그녀의 세계관을 구축한 채 써 내려가고 있다.
까르띠에 재단이 이불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기술과 신체의 경계를 과감히 허무는 동시에, 유토피아적 미래 속에 숨어 있는 빛과 그림자, 욕망과 실패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작가— 이는 재단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동시대 감수성과 미래적 상상력”의 핵심이었다. 이불의 작품 세계는 복잡한 개념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강렬하게 번역하며, 현대미술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조각에는 아름다움과 불편함, 욕망과 균열, 미래와 불안이 한데 겹쳐 있으며, 바로 그 이중성이 까르띠에 재단이 이불에게서 읽어낸 가장 현대적인 태도였다. 재단은 2007–08년 전시를 통해 “이불의 작업은 감각적이면서도 철학적이며, 하나의 건축적 세계를 구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 전시는 지금도 까르띠에 재단이 아시아 작가에게 보낸 가장 깊은 신뢰와 찬사로 남아 있으며, 세계 미술사 속에서 한국 여성 작가에게 열린 가장 중요한 문 중 하나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