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바니
매튜 바니(Matthew Barney, 1967-)는 미국 동시대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지만, 한국 대중에게는 상대적으로 낯선 작가다. 그는 영화·퍼포먼스·조각·설치를 뒤섞어, 신체와 젠더, 스포츠, 종교·신화를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로 엮어내는 작가로 평가된다. 미국과 유럽의 미술계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가장 야심찬 작가 중 한 명”으로 불리며, 구겐하임 미술관, 휫니 미술관, 루브르와 같은 기관이 그의 작업을 반복적으로 초청해왔다.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아이다호에서 성장한 바니는, 젊은 시절까지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예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이미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제약과 훈련”에 관심을 갖고 〈Drawing Restraint〉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연작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줄·벨트·장치로 묶어 움직임을 제한한 채 드로잉을 시도한다. 몸에 가해진 구속(constraint)이 오히려 새로운 선과 흔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이후 그의 영화·조각·설치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 된다.
바니의 이름을 미술사에 확실히 각인시킨 것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8년에 걸쳐 제작된 〈Cremaster Cycle〉이다. 이 연작은 다섯 편의 장편 영화(1,2,3,4,5)와 그것을 둘러싼 조각·사진·드로잉 설치로 이루어진 방대한 프로젝트로, 생물학(고환을 들어올리는 근육 ‘cremaster’), 스포츠, 프리메이슨 의식, 오페라, 미국 대중문화가 뒤섞인 복합적 세계를 구축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2003년 전체 시리즈를 통째로 상영하고 설치로 구성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고, 이 전시는 “영화·조각·퍼포먼스를 하나의 신화 생산 기계로 만든 전례 없는 작업”으로 평가받았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초기에, 프랑스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4~95년경 제작된 〈Cremaster 4〉는 파리의 까르띠에 재단, 런던의 아트앤젤(Artangel), 뉴욕의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공동 제작·발표한 작품으로, 영국 맨섬(Isle of Man)의 오벌 레이싱 트랙과 기괴한 생명체, 의식적 퍼포먼스를 결합해 “탄생 이전의 상태와 정체성의 형성”을 은유적으로 다룬다. 소더비 경매 자료와 도록 기록에 따르면, 파리 까르띠에 재단은 이때 이미 단독 상영·설치 전시를 통해 이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즉, 까르띠에 재단은 아직 “메이저 스타가 되기 전”의 젊은 미국 작가에게, 위험 부담이 큰 실험적 영화 프로젝트를 맡기고 함께 제작에 뛰어든 셈이다. 상업적 수익이나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길고 난해하고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단이 바니에게 걸었던 신뢰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매튜 바니는, “까르띠에 재단이 어떻게 동시대 예술의 가장 극단적인 지점을 선제적으로 후원했는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약 30년이 지난 뒤, 두 주체의 인연은 다시 한 번 크게 확장된다. 2024년, 까르띠에 재단은 파리 신관에서 바니의 신작 영상 설치 〈SECONDARY〉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작품은 1978년 미식축구 경기 중 상대 선수에게 중상을 입혀 평생 하반신 마비를 남긴 ‘폭력적 태클 사건’을 모티프로 삼는다. 작가는 자신의 고등학교 체육관을 세트로 만들어 6채널 대형 영상과 조각 설치를 구성하며, 미국 스포츠 문화에 내재한 공격성, 남성성, 인종·계급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룬다. 까르띠에 재단 공식 소개에 따르면, 이 작품은 “스포츠의 몸짓과 폭력이 개인의 기억과 국가적 신화에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재단·뮤지엄 팀이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재단의 1990년대 〈Cremaster 4〉 지원과 2024년 〈SECONDARY〉 전시는, 매튜 바니를 둘러싸고 있는 까르띠에 재단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한 명의 작가를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급진적인 실험에서부터 중년 이후 미국 사회 전체를 돌아보는 사유까지, 수십 년에 걸친 장기적인 관계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까르띠에 재단의 역사와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 매튜 바니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된다. 그가 재단과 함께 구축해온 작업들이 바로 “학제성과 실험성, 동시대성”이라는 재단 철학의 가장 극단적인 구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매튜 바니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그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유로파 2000’ 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 했고, 1996년에는 구겐하임이 제정한 ‘휴고 보스 프라이즈’ 첫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구겐하임, 휫니, 현대미술관(MoMA), 루브르,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 등에서 주요 전시를 이어가며 “미술과 영화, 설치를 가장 야심차게 결합한 작가”라는 평가를 얻었다. 미국 미술사에서 바니는, 20세기 후반의 브루스 나오만·비디오 아트 세대 이후, 움직이는 이미지와 조각, 신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반면, 한국에서 매튜 바니의 이름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유는 상당 부분 “접점의 부족” 때문이다. 2005년 리움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 개인전이 그의 첫 국내 소개였고, 이후 17년 동안 큰 규모의 전시는 열리지 않았다. 2022년에야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Drawing Restraint 25〉를 중심으로 한 개인전이 다시 열리며, 일부 관객과 컬렉터에게만 제한적으로 소개되었다. 매튜 바니의 작품이 한국에서 생소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세계가 지나치게 난해하고, 때로는 노골적일 만큼 육체적이며, 신화·종교·성적 상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바니는 초기부터 신체를 이미지의 핵심 매체로 사용해왔고, 그 신체는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젊음·근육·성적 긴장·의식적 제의가 결합된 하나의 상징적 조각이었다. 그의 대표작 Cremaster Cycle과 Drawing Restraint 시리즈에는 성적 은유, 출산·발달 구조, 생물학적 기관, 신체의 경계, 그리고 의례적 행위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많은 관람자에게 ‘난해함·부담스러움·과도한 육체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바니에게 신체는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니라, 정체성과 신화,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지는 원초적 구조를 이해하는 통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때로 잔혹하고, 때로 에로틱하며, 때로는 종교적 의례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의 기원을 탐구한다.
그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받아들여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작가 본인의 외모·신체성 또한 작품의 일부처럼 기능해왔다는 점이다. 1967년생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운동선수 출신의 단단한 체격과 조각 같은 외모로 주목받았고, 이는 그의 퍼포먼스 영상에서 중요한 시각적 요소가 되었다. 미술계에서는 그의 개인적 관계—특히 1990년대 중후반부터 오랜 기간 파트너였던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Björk)—도 자주 언급된다. 비요크는 그의 작품 세계와 음악·퍼포먼스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인정했으며, 두 사람은 실제로 Drawing Restraint 9(2005)에 함께 출연했다. 이 작업에서 두 사람은 일본의 의례적 상징을 기반으로 사랑·성·신체 변형을 다루는 매우 특수한 내러티브를 펼쳤고, 이는 “현대미술과 대중음악의 가장 과감한 협업”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물론, 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나 주변부 이야기지만, 바니의 세계에서 신체(Body)와 관계(Relation)는 작품의 주제적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간의 몸을 단순한 형태나 운동의 도구가 아니라, 욕망·정체성·권력·신화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매체로 보았고, 이를 극단까지 확장해온 작가다. 매튜 바니의 작업을 이해할 때 그의 난해함, 원초성, 육체적 이미지의 반복은 우연한 요소가 아니다. 이는 그가 일관되게 탐구해온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의 필연적 결과이며, 까르띠에 재단이 그를 30년 가까이 반복적으로 선택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재단의 관점에서 바니는 동시대 신체 이미지, 의식의 구조, 인간의 본능을 가장 치열하게 시각화하는 작가—다시 말해, 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가장 실험적 파트너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르띠에 재단을 이야기하는 장에서 매튜 바니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그는 재단이 추구하는 ‘신체·과학·신화·사회 구조를 연결하는 학제성’을 가장 급진적으로 구현한 작가다. 〈Cremaster 4〉에서 보여준 생물학·스포츠·신화의 결합, 〈SECONDARY〉에서 다룬 스포츠 폭력과 미국 사회의 기억 구조는 재단이 철학자·과학자·인류학자와 함께 고민해온 질문들과 정확히 맞물린다. 둘째, 그는 “작가와 재단이 함께 성장해온 30년의 사례”다. 젊은 실험작가였던 1990년대부터, 미국 사회 전체를 성찰하는 중견 작가가 된 지금까지, 같은 기관이 계속해서 그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르띠에 재단의 큐레이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다. 셋째, 매튜 바니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럭셔리 브랜드와 현대미술 협업”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화려한 컬러, 귀여운 캐릭터, 즉각적인 소비를 자극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긴 시간과 집중, 해석을 요구하는 난해한 작업을 브랜드 재단이 기꺼이 감수하고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까르띠에 재단의 “용인 가능한 난해함의 최대치”를 상징하는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까르띠에 재단이 어떻게 “위험해 보이는 예술”에 투자하고, 그것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과 동시대 예술의 경계를 동시에 확장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증거이자, 동시대 미술이 얼마나 복잡하고 깊은 층위에서 럭셔리와 얽혀 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