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문화적 유산과 시장의 기록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던 시절, 나는 자연스럽게 경제학을 부전공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경매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술사를 선택했던 이유는 예술 작품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정치·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술이 시장에서 어떤 가치로 환원되는지, 작품의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고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려면 경제를 알아야 했다. 결국 예술과 시장, 아름다움과 가치의 구조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하나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하나를 이해해야 했다.
나는 이 복합적인 구조를 가장 빠르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경매 회사라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는 갤러리나 미술관으로 가면 ‘작품’ 그 자체만 깊게 알게 될 것 같았고, 경매 현장에 있어야만 미술사적 의미가 실제로 사회에서 어떤 monetary value(화폐 가치)로 치환되는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어떻게 거래되고 평가되는지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경매 회사는 단순히 예술품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미술사·사회·경제가 동시에 작동하며 가치가 실시간으로 변환되는 가장 생생한 현장이기 때문이었다.
예술은 인간의 의식주가 어느 정도 충족된 이후에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여유이자 사치다. 그중에서도 보석과 미술품은 ‘럭셔리의 최상위에 있는 사치’다. 보석은 몸에 지닐 수 있고, 대대로 물려줄 수 있으며, 개인의 역사와 감정을 기록한다. 미술품은 소유보다 감상과 사유가 더 중요한 내적 사치이며, 시대의 미학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문화적 지표다. 그래서 나는 미술사와 경제학을 함께 공부했고, 경매장에서 일하며 이 두 영역이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강화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경매장은 단순히 비싼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한 시대의 욕망과 가치관이 집약된 문화적 무대였다. 그리고 경매에 나온 작품이나 보석은 이미 누군가에게 선택받아, 어떤 이유와 서사를 가지고 소유되었던 것들이기에, 마치 애호가의 “What’s in my collection”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짜릿함을 주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까르띠에(Cartier)다. 까르띠에의 보석이 경매장에 등장하는 순간, 가격은 단순한 숫자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것은 하나의 시대가 “이 아름다움은 시간을 견딜 가치가 있다”고 합의하는 감정의 총량에 가깝다. 경매 기록은 브랜드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가장 냉정하면서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까르띠에가 ‘전설’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브랜드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디자인이 시대의 기호·권력·사랑·제국의 역사를 함께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까르띠에의 이야기는 보석에서 끝나지 않는다. 브랜드의 예술적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확장된 순간은 1984년, 까르띠에 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이 재단은 까르띠에 그룹의 CEO였던 알랭-도미니크 페렝(Alain-Dominique Perrin)에 의해 창립되었고, 이는 럭셔리 브랜드가 동시대 예술을 체계적으로 후원하는 첫 시도 중 하나였다. 단순한 자선이나 기부가 아니라, “브랜드가 현대문화의 생산과 기록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까르띠에 재단이 출범하던 1980년대는 전 세계 럭셔리 산업이 대중소비사회로 진입하던 시기였다. 브랜드는 더 이상 ‘물건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문화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되었다. 이때 까르띠에가 선택한 전략은 매우 독보적이었다. 보석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대신,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원천—예술과 사유의 세계—를 직접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단은 프랑스 문화예술계에서 중요한 공공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까르띠에는 전통적인 주얼리 하우스를 넘어 ‘동시대 문화의 후원자’로 자리 잡았다.
재단의 방향성은 분명했다.
상업성과 거리두기
동시대 작가들의 실험적 시도에 대한 열린 태도
예술을 통해 사회적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 중심 운영
까르띠에 재단에는 브랜드 로고도, 까르띠에 제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곳은 하나의 독립된 문화 공간이다. 까르띠에가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 답은 곧 브랜드 철학의 확장이다. 보석은 물질의 아름다움이라면, 현대미술은 사유의 아름다움이다. 까르띠에는 이 둘을 각각이 아닌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축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재단이 선택한 작가들은 단순히 유명한 이름이 아니라, 동시대 미학의 경계에서 실험하며 사회적 의미를 창조하는 인물들이다. 예를 들어 론 뮤닉(Ron Mueck)의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의 일본 대중문화 해석, 이불(Lee Bul)의 권력·신체·정치 철학 등은 까르띠에라는 브랜드의 심미적 세계관을 보다 넓고 깊게 확장시켰다.
결국 까르띠에 재단과 경매 기록, 주얼리 디자인, 컬렉터의 역사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재단이 후원한 작가들은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형성하고, 까르띠에의 보석은 시대의 미학과 권력을 상징하며, 그 보석을 소유한 인물들은 각각의 시대에서 중요한 장면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흔적들은 경매 기록이라는 형태로 객관적인 아카이브가 된다. 그래서 나는 <까르띠에>라는 장에서 먼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었다.
까르띠에 재단의 의의와 역사
재단이 선택했고,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현대미술 작가 5인
그리고 이제 다음 두 가지 이야기를 이어서 들려주고자 한다.
경매 기록으로 읽는 아이코닉한 주얼리의 역사 — 시간이 증명한 아름다움의 객관적 기록
그 주얼리를 소유한 전설적인 컬렉터들 — 한 시대의 취향과 권력의 문화사
이 네 가지 축은 서로 고립된 장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생태계를 구성한다. 까르띠에 재단은 새로운 미학을 만들고, 경매는 그 미학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며, 컬렉터들은 그 역사적 순간을 개인의 서사로 흡수한다. 까르띠에는 그 중심에서 ‘아름다움의 생산자’이자 ‘아름다움의 아카이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까르띠에를 단순히 아름다운 보석을 만드는 브랜드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까르띠에는 예술을 후원하고, 시대의 미학을 기록하며, 소유의 개념 너머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선사하는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경매 기록, 현대미술, 브랜드 철학, 컬렉터의 취향이라는 복합적인 층위를 통해 더욱 깊어진다.
아름다움은 만들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누구에게 선택되고, 어떤 시대의 기준이 되었는지까지 포함될 때 비로소 ‘전설’이자 ‘문화적 예술작품’이 된다. 까르띠에의 역사는 바로 그 전설이 완성되는 과정이며, 그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아름다움을 사랑해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