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타고 굴러다녀서 ‘구르님’. 올해로 고3인 된 뇌성마비 장애인 크리에이터다. 화장품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구르님은 화려한 스티커로 휠체어까지 ‘힙하게’ 꾸몄다. TV 드라마, 예능, 영화 어디에서도 장애인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직접 장애인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2년 전 유튜브에 첫 영상을 업로드했다. 영상 속 구르님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장애인의 불편한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그저 똑같이 친구들 좋아하고 공부하기는 싫어하는 여고생일 뿐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미묘한 낯섦’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묘한 낯섦’은 미디어와 언론에서 비롯된다. 미디어에서 장애는 주로 동정의 대상이나 개그코드로 소비된다. 다큐멘터리가 장애인의 모습에 따뜻한 배경 음악과 자막을 입혀 안쓰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코미디언들은 하얀 콧물로 ‘바보 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조소를 자아낸다. 언론에는 눈물겨운 감동스토리도 넘쳐난다. 장애를 ‘극복’하고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다거나, 스티븐 호킹 박사나 스티비 원더처럼 ‘장애를 가졌음에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장애는 정말 불쌍하거나 우습거나, 혹은 극복해야 하는 걸까. 장애를 극복한다는 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걸까. 구르님이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은 “넌 언제 나아?”라고 한다. 심지어 구르님의 영상에는 ‘장애인같이 안 생겼다’, ‘장애인치고 예쁘네’와 같은 칭찬을 가장한 폭력적인 댓글도 많이 달렸다. 장애는 나아야 할 질병이자 이겨내야 할 시련이며, 장애인은 아름답지 않다는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장애는 키가 크고 작거나 나이가 많고 적은 것처럼 한 사람이 가진 특성, 정체성일 뿐이며, 그 누구도 개인의 정체성을 비하하거나 부정할 권리는 없다.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장애를 이해하는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일단 그 환경에 자주 노출되어야 하고, 언어를 알게 되면 특정 문화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영국 BBC방송은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등에 대한 세세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작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사회적 소수자들이 일정 비율 방송에 출연해야 하고 장애인을 동정적 시각으로 그려서도 안 된다.
최근 댄싱 경연 프로그램인 <Strictly Come Dancing>에서는 휠체어를 탄 댄서가 비장애인 댄서들과 함께 댄싱 퍼포먼스를 보여 화제가 되었다. BBC의 미취학 어린이 전용 채널인 CBeebies의 장수 프로그램 <발라모리(Calamity)>와 <뭔가 특별한(Something Special)>에서는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출연하거나 인기 진행자가 반복적으로 수화를 가르치기도 하며, 한쪽 팔이 없는 장애인 진행자도 등장한다.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장애인 전문 방송’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프로그램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로 타자화하고 계속해서 소수자로만 남게 만드는 일이다.
인식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를 만든다. 영국에서는 장애인에게 '당신은 무슨 장애를 가졌습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이 필요한 장애입니까?’라고 물어본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이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올바른 인식을 만들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도 한층 세심하고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갖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