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움켜쥐는 중
'잠시 되찾은' 평화로움에 대하여
약 한 달만에 쓰는 글.
나는 지금 파란 하늘과 딱 그만큼 푸른 바다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달맞이고개 언덕 위 카페에 있다.
눈부시다. 눈이 부시다.
배경음악처럼 얕게 깔리는 잔잔한 웃음소리.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미소.
한 달 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지금 내게 매일 펼쳐지고 있는 이 모든 것들.
집채 만 한 파도를 퍼붓던 폭풍우는 지나가고 잔잔해진 일상.
모든 것은 지나가는구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모든 것들은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알고 있지만 실은 몰랐던 새삼스러운 사실들.
지금 내 앞에 떨어지고 있는 이 햇살처럼 너무나 눈이 부신 것들은 제대로 직시하기 힘들다.
눈을 가늘게 뜨고 기분 좋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약간은 흐린 시야로 보게 된다.
반면 어둠 속에서는 아주 작은 불빛, 움직임도 아주 또렷하다.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 않아도, 무시하려 해도 그 존재만으로 집중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도 그러하다.
좋은 일, 행복한 것들은 약간은 붕 뜬 기분으로, 온전히 다 소화해내지는 못한 채로
차창 밖의 풍경처럼 그저 도취되어 흘려보내게 되지만,
슬픔과 절망은 그 크기나 깊이와는 상관 없이 순식간에 온몸을 잠식한다.
나는 슬픔과 절망의 시기를 힘겹게, 그러나 어쩐지 조금은 유연하게 감내하고 난 후
기대하지 않은 선물 같은 시간의 한 가운데에 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나를 덮치고 무너뜨렸던 그 파도처럼,
언제 또 다시 이 잔잔한 물결이 나를 삼켜 심해로 끌어내릴 지 알 수 없다.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면, 그때는 내가 좀더 어른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몰랐던 지난 날처럼, 똑같이 알면서도 모르는 듯이 아파할 수밖에 없을까.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진 일직선 상의 삶을,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듯 넓은 시야로 한 번에 관조하지 못하고,
단지 좁고 길다란 파이프의 작은 구멍 속으로 들여다보듯 그저 지나가는 순간 순간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주어진 이 시간을, 평화로운 행복감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허망하게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은 꽉 움켜쥐려고 한다.
그럼에도 종국에는 내 손아귀를 벗어나 곧 바람에 흩날릴 것이 자명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손바닥에 느껴지는 모래알의 감촉을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