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인내의 창'을 넓히는 방법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불편한 상황을 늘 마주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그것을 견디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이유를 심리학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내의 창 window of tolerance'의 크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마음 안에 있는 인내의 창이 넓고 크면 웬만한 자극들을 잘 견디고 포용할 수 있지만, 창문이 좁으면 사소한 불편함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걱정하는 말은 현실이 된다
불안이란 실제 상황에서가 아닌,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떠올릴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 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다.
두려움(공포)이 적응적 반응이듯, 불안 또한 적응적 반응이다. 건강에 대한 불안, 주거에 대한 불안, 실직에 대한 불안, 실패에 대한 불안 등 불확실한 미래에 다양한 불안을 느끼기에,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단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에게 말함으로써 마음속이 두려움, 불안으로 가득 차 두려워하는 나, 불안한 나가 되어 그 눈으로 스스로를, 주변 상황을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그럴 때 '선택적 주의'가 발동된다. 선택적 주의란,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주의를 두면 유독 눈에 더 잘 띄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평소와 같은 조건의 상황이나 환경이더라도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자꾸만 그 물건이 눈에 띄는 것처럼, 불안에 가득 찬 눈에는 그와 관련된 주변 단서들이 더 자주 눈에 띄고 그로 인해 불안이 증폭된다. 게다가 '기분 일치성 효과'로 인해 기분과 일치되는 기억이 잘 떠오르게 된다. 불안해지면 불안과 관련된 기억이 더 잘 떠오르게 되고 이로 인해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마음의 법칙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일은 결국 현실이 된다. 그렇기에 두려울 때는 자신에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자신에게 일어나길 바라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선택적 주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써야 한다. 그런 다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할 때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 Paul Samuelson이 행복 공식을 만들었다. 이 공식은 다음과 같다.
'행복이란, 소유를 욕구로 나눈 값이다.' 즉, 내가 가진 게 아무리 많더라도 가진 것보다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더 크면 만족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
붓다
'문제'라는 단어를 '도전'으로 바꾸라
떨림을 설렘으로, 긴장을 흥분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심리학 용어로 '인지적 재해석' 또는 '인지적 재평가'라고 한다. 어떤 음악이 차에서 흘러나오느냐에 따라 차창 밖의 풍경이 다르게 보이듯, 같은 상황이지만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해서 문제라는 말도 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면 두려워지고 피하고 싶어 진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일을 한다면 주로 '회피동기'로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회피동기는 '어떤 상태가 안 되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야단맞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이는 회피동기에 의한 행동이다. 문제가 되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피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두고 행동하는 것이다.
반면 주어진 조건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면 원하는 목표와 가까워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는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이 목표인 '접근동기'의 태도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 이유가 부모님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거나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접근동기에 의한 행동이다. 자신이 '바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행동하는 경우다.
모든 사람에게는 '미끼 말'이 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미끼 말'이 있는가? 그리고 그 말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의외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미끼 말'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러나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미끼 말'은 누구에게나 있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음료수가 나오는 자동판매기처럼 '미끼 말'의 버튼이 눌리는 순간 자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특정 감정이 표출된다.
말 패턴이 관계 패턴을 만든다
우리에게는 역할에 따라 다양한 '나'들이 존재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성격이 제각각이듯,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다양한 모습과 성격을 지닌 '나'들이 있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책 <마음 챙김 긍정심리 훈련 MPPT 워크북>에서 '마음사회이론'으로 설명한다. 마음은 여러 '나'들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것이다. 여러 '나'는 역할뿐만 아니라 상태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음 안에 있는 '유능한 나'도 살지만 '자신감 없는 나'도 살고, '활발한 나'도 살지만 '소심한 나'도 살고, '불안한 나'도 살지만 '편안한 나'도 산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의 행동을 탓하고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어떤 나'가 상대방의 '특정 나'를 불러내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어떤 나'가 나의 '특정 나'를 불러내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상대의 반응에 자동으로 동조해서 자신도 같은 반응을 하면 똑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마치 탁구 경기처럼 말이다. 상대방에게서 공이 날라 오면 무조건 그걸 받아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다. 왜 받아쳐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칠 것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화가 날아오면 화로 맞받아칠 뿐이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처럼 상대방의 말과 태도에 습관적으로 똑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그 관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것은 모순이다. 상대방과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면 원래대로 반응하지 말고 새로운 나로 반응하여 상대의 새로운 나를 불러내야 한다.
말 잘하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이다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동질성'이라면, 그 관계가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새로움'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자. 상대방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별거 아닌 이야기도 재밌게 느껴지고 바라보는 내내 흐뭇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점점 서로를 당연시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하게 여겨질 존재가 아니다. 늘 변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태어나서 현재까지 살면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사람이 있을까?
몸이라는 하드웨어가 변하듯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도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고정되어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에 업로드된 상대방에 대한 정보로 지금의 상대방을 판단하고 대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른데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폴 틸리히
공감이란 서로의 욕구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마음도 그렇다. 마음이 복잡하고 시끄러우면 자신의 마음도 상대방의 마음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한다.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야 내 마음도 보이고 상대방의 마음도 제대로 보인다.
내 마음이 고요한지를 자신에게 묻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진다. 내면의 상태를 살피도록 도와주는 이 물음은 거친 파도를 일으키는 부정적인 생각의 반추를 멈추게 하고 원하는 목표에 주의를 집중시켜 준다.
갈등은 결국 사소한 말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아주 사소한 사건들은 그 정체가 모호하여 자각하기 힘들고, 딱히 그 사건들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장대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거나 잠시 몸을 피하는 행위가 정당하고 적절한 반응이지만, 이슬비가 내릴 땐 우산을 쓰거나 비를 피하는 것이 애매하고 부적절하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이는 '하인리히 법칙 Heinrich's law'과도 연결된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주로 사업 현장에서 쓰는 용어로, 큰 사건의 발생은 단 한 번의 실수나 사고 때문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발생한 사소한 실수와 그 사고들이 쌓이고 쌓여 임계점에 다다를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결혼 생활은 서로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관계를 더 우선시하는 데서 온다. 관계에 갈등이 생길 때 내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서로가 행복하고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다면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인생도 나를 사랑한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얻게 되는 행복은 건강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비교는 비교의 기준점이 '타인'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 있을 때 가능하다. 어제보다 더 성장했는지, 더 발전했는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비교를 통한 발전이 당장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발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짜증 내는 말이 짜증 나는 사람을 만든다
짜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으로,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나쁜 감정도 좋은 감정도 아니다.
하지만 '짜증이 나는 것'과 '짜증을 내는 것'은 다르다. 짜증이 나는 것은 불편한 상태에 대한 '내적 신호'인 반면, 짜증을 내는 것은 자신의 불편한 마음 상태를 말과 표정 그리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외적 신호'다.
바이러스 퍼지듯 상대방의 기분이 나에게도 전염되는 현상을 '정서전염 emotional contagion'이라고 한다. 정서전염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거울뉴런 때문이다. 거울뉴런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신경세포다. 상대방의 표정을 따라 함으로써 상대방의 정서를 대리경험하는 것이다. 구역질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구역질이 나듯이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싶어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가장 빠른 특효약이 있다. 짜증이 날 때 그냥 웃어보는 거다. 황당한 답변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효과가 있다. 웃는 표정과 관련된 얼굴 근육이 자극되면 정서가 바뀐다.
'체화인지 embodied cognition'라는 심리 법칙 때문이다. 체화인지란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하는 현상으로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자주 하면 좋지 않다
오로지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욕구를 '자율성 autonomy'이라고 부른다.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해내고자 하는 욕구이다. 자율성이 침해될 때 우리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자율성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명령'이다. 명령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상대방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는 폭력이다. 명령을 통해 강요받을 때 우리는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분노로 폭발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 우울로 침잠할 수도 있다. 분노와 우울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둘 다 동일한 표현이다. 명령에 대한 반발심이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말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따라와야 한다는 자신의 통제 욕구를 채우기 위한 마음이 있었다. 겉으로는 걱정이라는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명령과 강요다. 상대의 마음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운전대를 빼앗지 마라
유독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멀미가 나는 이유는 눈은 정지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귓속의 전정기관은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의 정보가 서로 어긋난 채로 뇌에 전달된 혼선의 결과가 멀미인 것이다.
재미있는 건 차만 타면 멀미를 하던 사람도, 자신이 직접 운전할 땐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직접 운전을 함으로써 차의 흔들림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대라는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는지 상대방에 있는지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