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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남편이 돌아왔다 2

제인도

by Dianosaur
재우 이야기 #50 두 번째 설계

그날 이후로 우리는 5년 뒤에 재회할, 그녀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은 우리의 분노를 잠재워줄 것이다. 하지만 복수심은 더 불타오르겠지. 우리가 쳐놓은 덫으로 그녀가 어서 빨리 들어오기를 고대했다.


#54 보고 있다

난희 누나가 또 짜증을 냈다. 일이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마다 찾아오는 조급증이 도진 탓이다.


#55 미끼

예고 없는 친절은 상대를 감동시킨다. 이는 내 머릿속에 각인된 말이다.


#56 아직은 아니야

"아침 일찍 여기 나와서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김 선생님도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아니요. 음악은 잘 몰라서..."

"여기서 근무하시면 곧 좋아지게 될 겁니다. 국내에서 제일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놨거든요. 좋은 소리는 머리를 맑게 만들죠. 전 틈이 날 때마다 이곳에서 음악을 들어요. 주로 클래식에 국한되어 있지만요."


#58 틈

비밀을 공유한 사람이 헤어지면 가장 최악의 적이 된다.


공격할 때는 상대가 뭉쳐 있는 것보다 흩어져 있는 게 더 유리하다.


#61 그곳 어딘가에

"완전범죄는 제일 잘 알고, 자신 있는 것을 활용하잖아. 그럼 답 나온 거 아니야?"


#62 도청

밤새 뒤척였다. 내 방식이 아닌 다른 이의 방식을 강요받는다는 게 심히 껄끄럽고 긴장이 됐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이 일을, 굳이 짝을 지워 일하게 한 회사의 의도가 뻔하지 않은가.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한 사람에게만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


#63 포식자의 시선

우리의 삶은 생태계의 먹이사슬과 똑같다. 세상에는 우리를 노리는 더 높은 포식자가 어딘가에 늘 있다.


카페인 중독은 현대인에게 가장 흔한 증상 아니겠어? 그 여자 평소에도 커피 많이 마시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익숙지 않은 일을 하는 날은 늘 긴장이 된다.


이 실장이 의뭉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 바람에 나도 어이가 없어 따라 웃었다.

*의뭉하다: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면서 속으로는 엉큼하다


하늘은 별이 보일 만큼 청명했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멀리 보이는 우리 집은 아늑했다.


#64 국면 전환

나는 자꾸 선을 넘는 그가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 그의 작은 행동이 폭풍을 몰아올까 봐 걱정됐다.


다정하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피부와 피부 사이에, 여자의 가는 떨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예상컨대, 그녀는 이 상태가 좋은 거다.


범이의 한탄 섞인 엄살에,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가 아메리카노 투 샷을 시켜줬다.


내가 범이의 말에 대꾸할 답을 못 찾고 있을 때,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65 주홍 글씨

아니면 육체적 욕망에 지나치게 솔직한 그녀가 그새를 못 참고 쌓아놓은 욕정을 풀고 있거나.


그녀의 대범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이게 문제다. 이러다가는 일을 그르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순간의 쾌락은 달콤할지 몰라도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66 참을 수 없는 존재

녀석을 기다리기 무료해서 여자에게 늦는다고 문자도 넣는다. 몇 분 후에 답 문자가 왔다.

'알았어.'

성의도, 특별한 내용도 없는 답변이었다. 마음이 설레면서도 덤덤하게 문자를 보냈을 그녀의 모습이 짐작됐다. 여자의 포장된 시크함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난 또 위스키를 마셨다. 범이는 종대와 달리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예스와 노, 고와 스톱이 뚜렷한 녀석이라 내가 갈등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 여자의 감정 변화는 나까지 변화시킨다. 가끔 흔들릴 때도 있다. 그래서 전면에 나서기가 점차 꺼려지는 거다.


이불을 가져와 그녀에게 덮어줬다. 여자를 2층으로 데려다줘도 괜찮았겠지만 과한 친절은 베풀지 않기로 했다. 그녀와 선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선은, 내가 아닌 그녀가 먼저 넘게끔 유도해야 했다.


내가 다정하게 나오자 그녀는 바로 녹아내렸다. 이 여자, 사랑 못 받고 산 티가 절절하게 난다. 경계심이 강하지만 조금만 다정하고, 조금만 잘해줘도 그 벽이 쉽게 무너진다.


여자의 얼굴에는 갈등하는 기색이 비쳤다. 내 일이 궁금한 동시에 상당히 귀찮은 모양이다.


그녀가 솔직히 말했다. 종대와 나의 차이는 그녀에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괴리감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난 다른 무기를 쓰기로 했다. 여자가 나에게 호감을 가진 이상, 무기는 많았다.


#68 여자의 마음

내 칭찬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보통 여자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얘기를, 이 여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69 터닝

항상 이 목걸이를 하고 있어 줘. 이건 당신의 악행을 자랑하는 주홍 글씨니까. 이 말이, 내 진심이었다.


#71 다시 원점

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복잡하게 얘기해 봤자 상대방은 어차피 들을 얘기만 들을 거였다.


그제야 그녀가 나를 본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긴 것 같았다.


#72 깊어지는 골

그래, 연인 사이는 이렇게 멀어지는 거지. 누구 하나 마음이 바뀌면 삐걱대기 시작하는 거거든.


그녀는 왜 갑자기 돌변한 걸까? 나에게 왜 냉랭해진 걸까? 시험 볼 때 아는 답이 떠오르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73 복병

실수는 만회하기 힘들다. 그리고 만회하려 할수록 오해는 깊어진다. 이번이 그랬다.


박정주는 많이 취한 나머지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지 못했다. 더 높고, 더 큰 목소리로 계속해서 떠들 뿐이다.


커피를 내려 마시며 어제 그녀를 찾아갔던 것을 후회했다. 기분을 풀어주려 했는데 괜한 오해만 쌓았다.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 집에 계속 있다가는 안 좋은 상념에 불안만 쌓일 것 같아 서둘러 출근을 했다.


#74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다

"당신, 앞으로 나 몰래 이런 행동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뭐, 말한다고 당신이 지키지는 않겠지만."

여자는 여전히 삐딱했다. 빈정거리는 말투가 내가 먼저 싸움을 걸어오길 바라는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피자 한 판을 다 비우도록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여자는 아까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고, 난 그녀에게 한상호와의 약속을 어떻게 상기시킬까 생각 중이었다.


#75 주말 약속

"그럼 된 거야? 당신, 자존심도 없어? 진짜 나쁜 사람들이네."

그녀가 예상외로 발끈했다. 내 문제로 같이 화를 내주는 게 왠지 고맙다.


#76 눈앞의 문제

머리끝이 쭈뼛 섰다. 아는 사실을, 타인의 입을 빌려 객관적으로 듣게 되면 그 충격은 배로 커진다.


범이가 사 온 맥주를 다 마시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술을 많이 마셨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78 돌이킬 수 없는

범이의 말에 내 상념이 깨졌다. 그녀와의 협업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내 몽상을 재빨리 접었다.


#79 아무도 모르게

범이가 내게 궐련형 전자 담배를 건넨다. 난 스틱을 입에 물었다. 입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내뿜은 연기만큼 머릿속도 개운해졌다.


범이가 구덩이를 파고 시가 라이터 소켓으로 비닐 뭉치에 불을 붙였다. 난 거기에 이 실장 몸을 묶었던 내 신발 끈을 던져 넣는다. 비닐 뭉치가 녹아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죄가 은닉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효신 이야기 #82 변심

상황을 보고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운 후 그에게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황한 그가 오버해서 오히려 문제를 크게 만들 것이다.


#83 변명

머리가 빙빙 돌았다. 하는 일도 벅찬데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머리가 아프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취한 언니는 쏟아낸 말을 주워 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변명을 늘어놓을수록 내 화를 부추겼다.


사랑한다는 언니의 말에도 내 마음은 싸늘해졌다. 둘이 만나 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걸까? 그의 정체를 알 리 없는 언니는 나에 대한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털어놨겠지. 그 얘기가, 얼마나 나에게 위협이 될지 모르면서 말이다. 속이 상했다. 언니한테 속을 내보일 수 없는 난, 내 처지가 처량 맞아 더 화가 난다.


남자가 언니를 부축했고 난 그들을 외면한 채 주점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달아오른 얼굴이 바람에 차갑게 식는다. 내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


#85 다 알고 있다

"그제... 내가 미안했어. 술도 많이 마셨고 재우 씨 몰래 만난 것도 미안해."

"괜찮아요."

나중에 사과해야 할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나를 위한다는 핑계를 댄 언니가 미웠다. 하지만 난 대충 둘러대고 그녀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나... 너한테 변명하고 싶은데 들어줄 수 있어?"

애원하는 언니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쌍해 보이는 언니의 표정에 화가 조금 누그러진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강압 같은데요?"

"내 말이? 아, 아니야, 얘. 진짜 미안해서 그래. 부탁이야, 내 말도 좀 들어줘. 응?"

정주 언니는 내 기분이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지,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린다.


계약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계약 한 건만으로도 기분이 삽시간에 변한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괘씸했는데 언니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 너그러워진다.


그리고 그 작은 단서를 시작으로 결국 박종대의 시체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물론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말했을 테지만. 정주 언니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지 아니면 순진함에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니의 그 가벼운 언행 덕분에, 난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경로를 짐작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87 배신

따지듯 묻는 필주 씨의 말에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88 숨겨온 것들

기가 막혔다. 그 멍청한 필주 씨 때문에 오 팀장이 의심하고 있을 줄이야.

"그때 제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복잡한 일에 끼기 싫었습니다. 제가 억측한 것일 수도 있고 괜히 오지랖 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분을 삭이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을 진정시킬 겸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들이켰다.

이 원통함을 어떻게 갚아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온 것이다. 기분이 안 좋아진 나는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다.

"이 시간까지 어디에서 뭐 하다 온 거야?"


#89 나를 노린다

한번 떠나간 마음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는 건 힘들다. 필주 씨에게서 내 마음이 떠나서인지 말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90 사기의 현장

시어머니와 친구가 한껏 한 사장의 비위를 맞춘다. 난 그들의 알랑거림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상호 사장은 엉망이 된 테이블에 앉아 물을 따라 마시며 말한다. 그는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얼굴은 아까보다 시름이 깊어 보였다. 얼굴의 깊은 주름이 더 두드러졌다. 재산을 지켰지만, 좋아했던 여자를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무척 쓰라렸을 것이다.


#91 증거

계획한 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증 상태가 지속됐다.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도, 그다음 날이 되면 몸과 마음이 붕 뜬 상태로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다. 내 머릿속은 결정적 증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92 드러난 비밀

난 필주 씨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었다. 일단 안심하자. 당황하거나 겁을 먹으면 누군가 나의 꼬리를 잡을 것이다. 틈을 보이면 안 된다. 난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 주변의 의심을 받지 않고 다시 업무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안정이 필요했다. 간신히 호흡을 골랐을 즈음, 아르바이트생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경찰은 아니라고는 하는데, 혹시 저를 의심하는 건 아니겠죠?"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그에게 솔직히 내 속을 드러내 보였다. 보험조사원의 목소리에서 의아한 기색이 묻어난다.


#93 심문

"그러지 않을까요? 일망타진하려면 우리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일망타진: '한번 그물을 쳐서 고기를 다 잡는다'는 뜻으로, 어떤 무리를 한꺼번에 모조리 다 잡음을 이르는 말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기만하고 내 목숨을 노린 자들을 잡아 한꺼번에 벌을 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94 아무도 믿지 말라

결국,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커피잔을 테이블에 떨어트린다. 잔에서 흘러나온 커피가 테이블 위로 넓게 퍼졌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그의 뻔뻔스러움에 한 방 먹이고 싶어 한 말인데, 그 여파는 컸다. 나를 둘러싼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지금... 뭐라고 했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얼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내 경솔함을 후회했지만 어차피 흘러나온 말이었다.


악연은 반복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난 웃음을 터트린다.


에필로그 #95 보험조사원 이야기

난 그녀와 손을 잡았다. 그녀는 사기꾼의 의도를 안 이상, 당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머리를 쓸 줄 알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말에도 능숙했다. 나는 그녀를 충분히 이용했다. 그녀 또한 나를 잘 써먹었다.


늦든 빠르든 악인은 결국 그 죗값을 치르게 된다. 죄의 무게는 피해자가 당한 고통의 결과인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권선징악, 내가 추구해 온 이 결과는 이번에도 해피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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