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11

by June

그러던 어느 날,


미군의 고위급 간부가 한국인 대학 여학생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터졌다. 지휘관들도, 부대도 긴장했고, 외교적, 정치적 의미까지 얽힌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건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피의자는 미군 고위 장교였고, 나 역시 평가와 진로가 중요해지는 시기였다. 내가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주변에서는 조용히 덮고 지나가길 바라는 시선도 느껴졌다.


사건 수사 중, 피해자인 한국인 여학생을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사무실에 들어온 그녀는 다른 미군들 사이에서 눈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서 있었다. 나는 곧바로 내 사무실로 데려왔다.


내가 성조기 패치를 단 군복을 입고 있는 걸 보고

그녀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생김새는 한국 사람 같고, 성은 Kim인데, 미군이라는 이질적인 조합.

그녀는 내 정체를 가늠하지 못한 듯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동행했던 피해자 지원 담당 직원이 나를 사건 담당 군검사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서투른 영어로 조심스럽게 인사하며 “영어를 잘 못해서 걱정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한국어로 말했다.


“저도 한국사람입니다. 편하게 한국말로 하셔도 돼요.”


그녀는 순간 얼어붙은 표정을 풀고 조금 전과는 다른, 두려움이 아닌 반가움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 땅에서 우연히 가족을 만난 것처럼.


구세주를 보는 듯한 시선에 나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묵직한 연민이 올라왔다.


나는 바로 사건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대신 대학교 생활, 전공 이야기, 영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들로 서툴게나마 대화를 시작했다. 나 역시 말주변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고 싶었다.


때때로 웃음이 섞였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족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부디 알리지 말아 달라고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겁게 다짐했다. 이 여학생만큼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무조건 지켜주고 싶다고.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나는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선택의 경계에 나를 세우게 될지.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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