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평소처럼 사건 파일에 파묻혀 있던 어느 날, 예전에 내 인턴이었던 학생이 오랜만에 내 오피스를 찾아왔다. 전에도 가끔 들러주곤 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나를 기억해 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점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처음 내 인턴으로 왔을 때는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이제는 명문 로스쿨 3학년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녀는 졸업도 하기 전에 이미 빅 로펌에서 오퍼를 받았다고 했다. 졸업 후 변호사 시험만 통과하면, 연봉이 한국 원화로 3억이 넘는 대기업 전문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로펌 생활을 좋아하지 않아, 인턴 시절에는 정부 변호사 쪽을 추천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로펌에서 인턴을 해본 뒤, 그 혜택과 환경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느껴 로펌을 선택했다고 했다. 파트너 변호사가 되겠다는 큰 꿈도 품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참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로펌 생활이 처음엔 힘들겠지만, 그녀라면 곧 잘 적응할 것이라 믿는다.
법조인으로 살다 보면 늘 다른 사람들과 사회의 문제 속에 파묻혀 산다. 정작 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은 거의 없다. 평일은 ‘일-운동-집’의 반복이고, 주말이면 침대에 쓰러져 잠으로 시간을 메우기 바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프리다이빙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물속에서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호흡이 무너지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나를 깊이 성찰하지는 못해도, 다른 모든 생각의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단 하나의 줄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 순간이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든다.
다이빙풀이나 바다에서 다이빙을 마치고 나오면,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고요하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 싫어질 때도 있다.
한국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실망과 마음 아픈 일들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 두 번째 고향인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시간은 소중했다.
어느새 한국에서의 임무가 끝나고, 새로운 명령을 받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처음에는 알래스카로 간다고 했지만, 마지막 순간 근무지가 하와이로 바뀌었다. 겨울옷을 사 모으던 손은 어느새 여름옷을 챙기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는 건 아쉬웠지만, ‘하와이에 가면 서핑과 다이빙을 마음껏 해야지’ 하는 설렘이 가득했다.
다가올 고생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