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1

by June

나는 고요를 동경한다.


내가 졸업한 로스쿨에서는 읽어야 하는 판례와 책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러 명이 모여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분량을 나누어 읽은 뒤 노트를 공유하며 토론을 했다. 일종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성이 부족했던 걸까. 그런 그룹에 들어가고 싶어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혼자 방황하는 사이 계절은 지나갔고, 나는 화려한 꽃들 사이에 어색하게 흔들리며 자라난 작은 야생화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스터디 공간에서도 늘 밀려나던 나는 결국 로스쿨 도서관 꼭대기층, 학생들이 잘 찾지 않던 어두운 구석의 책상을 내 비밀 아지트로 삼았다.


그곳에서 나는 로스쿨 시절 내내 어둠 속에 숨어 지냈다.


가끔씩 도서관 사서나, 밥이라도 먹자며 어깨를 두드려주던 룸메이트 덕분에 잠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밤늦게까지 혼자 법의 세계와 씨름하며 파묻혀 있었다.


그렇게 매일 어둠 속에 살다 보니 내 몰골은 점점 초췌해졌고, 살아 있으나 영혼 없는 시체처럼 로스쿨 복도를 떠돌았다. 이른 아침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으면 교수님이 다가와 “괜찮냐”라고 물어보던 일도 종종 있었다.


로스쿨에는 과제가 없다.


수업은 교수와 학생들이 판례를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만약 판례를 제대로 알지 못해 질문에 버벅거리면 교수님의 날카로운 지적이 학생의 자존심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우리는 그것을 “cold call”이라고 불렀다. 이름 그대로 차갑고, 잔인했다 (참고로 내 자존심은 1학년 첫날, 첫 클래스부터 이미 베어져 로스쿨 내내 회복하지 못했다).


과제가 없다면 성적은 어떻게 정해질까? 판례를 달달 외워 토론의 신이 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성적은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으로만 결정된다. 게다가 상대평가였다.


시험기간이 되면 그 끈끈하던 동맹도 쉽게 무너졌다. 친구였던 이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경쟁자로 서는 모습은, 안쓰럽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우리 학교는 이것도 우리의 인간성을 없애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성적 순위까지 공개했다.


로스쿨에는 각자 자신의 동네에서는 공부를 꽤 잘했다는 자존심이 강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시험에 임하는 모습은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바친 시간과 노력, 집안의 명예, 그리고 막대한 돈을 걸고 싸우는 “gladiator” 같았다. 그 간절함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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