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로스쿨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잠시 바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바다에서 자라신, 그야말로 ‘바닷사람’이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너무 배가 고파 백사장에 파도에 떠밀려 올라온 죽은 오징어나 해초를 주워 드시며 허기를 달래셨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공부는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하셔서 늘 장학금을 받으셨지만, 그 장학금도 본인의 학비가 아닌 어려운 집안 동생들을 먹여 살리는 데 쓰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정작 본인의 등록금은 마련하지 못해,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 있을 때 혼자 해변가에 앉아 책을 읽고, 시인이 되기를 꿈꾸며 글을 쓰셨다고 한다.
그렇게 아픈 시절을 함께한 바다였기에, 아버지에게 그 바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애증의 존재였을 것이다. 감정 표현이 서투신 조용한 경상도 남자이지만, 어릴 적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종종 나를 바다로 데려가 걷고, 멍하니 함께 앉아있고, 내게 바다 수영을 가르쳐주신 기억이 난다. 아무 말 없이도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졌던 순간들이었다.
그 바다, 아버지의 마음을 품어주었던 그 바다는, 나에게도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바다에 들어가 있을 때, 아픈 몸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고, 상처 입은 마음도 울음을 멈춘다. 푸른 고요 속에서 나는 의지 없는 해파리가 되어, 대양의 파도를 길잡이 삼아 하루 종일 떠다닌다.
돌아보면, 로스쿨이란 곳은 나에게 어두운 밤바다 같았다. 의지 없이 둥둥 떠다니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첫 수업부터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사실 매일 그만두고 싶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해파리처럼 맡기고 둥둥 흘러갔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졸업반, 마지막 학기에 닿아 있었다.
도서관 꼭대기층 어두운 내 아지트에서, 머리가 마비될 정도로 도를 닦은 그 시간들. 그 보람 때문인지, 내 부르짖음을 하늘이 들으신 건지, 아니면 그냥 ‘존버’의 기적인지 나는 Dean’s List에 오르고 성적도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교수님의 노비나 다름없던 조교일, 마음이 검은 숯덩이가 되어버릴 정도로 열정을 불살랐던 인턴십들, 여전히 죽도록 하고 있었지만 졸업 후에는 이미 일자리 오퍼까지 들어온 상태였다. 몸은 피곤에 절어 무거웠지만, 마음은 처음으로 가벼웠다.
화려한 꽃들 속에서 움츠러들어 있던 내 야생화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제2차 세계대전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했던 말처럼,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나는 그 말대로, 정말 포기하지 않았다. ”존나게“ 버텼더니, 어느새 햇빛이 나에게도 닿는 것 같았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