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3

by June

로스쿨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Bar Exam 준비에 들어갔다.


25가지나 되는 법 과목을 짧은 시간 안에 머릿속에 욱여넣어야 했다. 부담은 컸지만, 이 시험에 떨어지면 그동안의 고생이 단순한 종이쪼가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라톤에서 마지막 남은 기운을 쥐어짜 내듯, 매일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책상에 붙어 씨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봐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내가 머리가 나쁜 건가 싶어서, 결국 책을 한 글자씩 베껴 쓰기 시작했다.


암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법 이론들이 낯설게만 느껴졌고, 나는 점점 무너져 갔다.


‘도대체 왜 로스쿨에 간 걸까.’

‘왜 내 능력 밖의 일을 무모하게 도전한 걸까.’

‘그냥 편하게 다니던 직장을 계속할걸.’


하루 종일 머릿속은 후회와 자책으로 시끄러웠다.


하루는 책상 앞 창문 너머로 날아가는 나비를 봤다. 차라리 이걸 하느니 그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비가 되기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그리고 책상 앞 창문에는 내가 될 수 있는 다른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해도 안 되는 법 이론을 베끼고 외우고, 또 베끼고 외우며,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던 명량의 이순신 장군처럼, 물러설 곳 없는 마음가짐으로 그해 여름을 버텼다.


시험 당일.


시험장 근처 호텔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이른 아침 시험장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토하는 수험생들이 눈에 띄었다. 화장실 안에서도 다들 토하고 있었다.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


오히려 나는 담담해졌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자리에 앉았다.


시험이 시작됐다.


이틀에 걸쳐 하루 종일 보는 시험이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버티기 힘든 싸움이었다.


중간중간 울면서 나가는 수험생들,


기절했는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수험생들,


옆자리에 앉았던 밝은 인상의 수험생은 점심시간 이후 돌아오지 않았다.


시험 이틀째에는 더 많은 수험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장면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해변처럼 겹쳐 보였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해파리라 상상했다. 그저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 그러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둥둥 떠다니며 시험을 끝까지 마쳤다.


마지막 문제를 답하고 연필을 내려놓을 때, 쏟아지는 감정이 밀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진짜 해파리가 되어버린 듯, 무감각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왔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주 고등법원 판사 밑에서 로클럭으로 일하며 일부러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과 발표 날.


Email로 ‘합격자 발표’ 메시지를 받았지만, 쉽게 열지 못했다.


’이 걸 열어봐야 하나.‘

’ 불합격이면 어떻게 하지.‘

’ 내 인생은 오늘이 마지막일까.‘


그 순간 나는 다시 해파리가 되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둥둥 떠서 내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결과는 ‘합격’.


그것도 미국 전국 상위 1%의 점수로 합격이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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