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ar Exam에 합격하고, 법원에서 법조인 선서까지 마친 후 모든 일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치 그동안 꽉 막혀 있던 터널이 갑자기 뚫려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판사실 마지막날, 내가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우리 판사님께서 점심을 사주시며 축하해 주셨다.
The Honorable Leo E. Green 판사님. 그분은 30년 가까이 된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며, 재판이 있는 날이면 새벽마다 성당에 들러 올바른 판결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출근하시는 분이다. 나는 그분을 늘 ‘간달프 같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겸손하시면서도 지혜로우시고, 무엇보다 내게 언제나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참 고마운 분이다. 지금은 판사직에서 명예롭게 은퇴하시고,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며 여전히 법조인의 길을 걷고 계신다.
그동안 정들었던 판사님과 판사실 직원분들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짐을 싸서 법원을 나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감정이 무뎌서 웬만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나였기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것 같다. 안도의 숨, 미련, 감사, 두려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울컥함 같은 것들이.
사실 마음 같아서는 며칠이고 그냥 누워 있고 싶었지만, 바로 그다음 날부터 주 검찰청에 출근해야 했다. 예전에 인턴으로 일했던 곳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위치가 달랐다. 검색대를 지나갈 때, 예전 같으면 꼼꼼하게 몸수색을 하던 보안관들이 이번에는 옆으로 비켜주며 “Good morning, Mr. State!” 하고 인사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법정 안에 들어서니, 예전에 판사실에서 일할 때 알던 변호사들과 인턴 시절 인연이 있었던 분들이 하나 둘 내게 다가와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이전까지는 내가 단지 ‘결정자를 보좌하는 통로’ 같은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직접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리로 올라왔다는 것을 그 순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태도는 그렇게 명확하게 변했다.
나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 내 직업과는 치명적으로 안 맞는 성격이다. 매일 아침 법정에 나설 때마다, 긴장된 마음을 추스를 겸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법정이라는 곳은 나의 약점을 드러내면, 마치 시체에 달려드는 독수리들처럼 뼈까지 씹어 먹히는 야생의 세계다. 그래서 내 연약한 모습을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열이 많은 체질인 내가 긴장까지 더해지니, 땀이 흐르는 건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온몸의 땀구멍을 다 막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나는 마음도 생각보다 약하다. 요즘 말로 하면 “에토 남”이다. 이것도 내 직업 하고는 참 안 맞는다. 사람들은 내 차가운 인상과 굳은 표정만 보고,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힘들어하는 날들이 많다. 어쩌면 직업병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이민 생활에서 겪었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세상을 알기에 너무 어리지도, 그렇다고 충분히 크지도 않았던 나이에 미국 North Carolina의 작은 마을, Concord라는 아시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골 깡촌으로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