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하와이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하면 대부분 부러워하지만, 나에게는 지옥도 같았다.
처음엔 나름 바다도 가고, 다이빙도 하며 하와이의 삶을 즐기려 했다. 하와이의 해변이란 해변은 거의 다 가봤고, 다이빙도 거칠게 해서 웻슈트는 하와이의 칼날 같은 바위와 바닷속 산호초에 찢겨 헐렁해져 버렸다.
나는 미 육군 안에서도 힘들기로 악명 높은 제25 신속전투보병사단의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Law) 법무관으로 임명됐다.
국가안보법 법무관은 전방으로 나가는 전투병과 및 보병 부대, 그리고 지휘관들과 함께 전장을 동행하며 Operational Law, Intel Law, International Treaties, Law of Armed Conflict, Rules of Engagement, Targeting 등 직접 전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률 자문을 한다. 또, 전장에서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구르고 생활해야 하기에, ‘고귀한 ‘ 법조인들인 법무관들 사이에서도 기피하는 힘든 보직이다.
특히 내가 속한 사단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청난 훈련량으로 악명 높아 대부분의 미군들이 오기를 꺼리는 부대였다.
나는 하와이에서의 2년여간의 시간 대부분을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사무실이 아니라, 하와이의 그늘 없는 뜨거운 벌판과,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동남아의 숨 막히는 더위와 습기가 가득한 정글 속에서 훈련하며 보냈다.
특히 필리핀 정글의 더위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으로 샤워를 한 듯 군복이 흠뻑 젖었고, 그 끈적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렵다. 원숭이와 온갖 벌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친구’가 되었고, 2차 대전 당시 이런 정글에서 싸운 미군과 일본군이 어떤 고생을 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며칠씩 침대에 붙어 지내며 녹초가 됐다. 그래도 마냥 쉴 수 없었기에 개인 운동도 꾸준히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투병과 부대원들의 괴물 같은 체력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몸과 마음을 혹사하며 지쳐가던 중, 한국에 잠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돌아오면 또 필리핀 정글 훈련이 예정돼 있었기에, 나에겐 사막의, 아니, 정글의 오아시스 같은 기회였다.
그 시기 한국은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늘 여름인 하와이에서 두꺼운 겨울옷을 꺼내 짐을 싸고,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한국은 매서운 추위가 반겨주었고, 겨울을 좋아하는 나는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마치 처음 한국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가장 추운 겨울 속에서 보낸 2주 남짓한 시간은 나에게 특별하면서도 아픈 추억이 되었다.
사람들은 하와이를 지상낙원이라 부르지만, 나는 한국이 더 좋았다. 돌아가기 싫었다.
조용히, 천천히, 눈이 아름답게 내리는 한국의 거리를 바라보며, 나는 하와이를 탈출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