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22

by June

한국에 도착했다. 두 번째 파병이었다.


큰맘 먹고 오랜만에 2주 정도 휴가를 냈다. 그래도 쓰지 못한 휴가가 80일이 넘게 남아 있었고, 이미 소멸된 날들도 많았다.


마침 폭염 뉴스가 쏟아져 걱정했지만, 필리핀에서 막 돌아온 터라 생각만큼 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국이 두 번째라 그런지 어색함도 덜했다. 한국어 간판과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반갑긴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부러 예약했던 서울역 옆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 레지던스로 이동해 체크인했다.


씻고 나서 파워 냉방을 틀어두고 짐을 대충 정리한 뒤 침대에 누웠다. 고층 객실이라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방 안 침대에서 조용히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 내가 새로 부여받은 보직은 주한미군 한미연합사단 군검찰단의 검사장(Chief of Justice)이었다.


지긋지긋했던 직접 재판 업무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대신 내 밑에는 군검사들과 그들을 보조하는 부사관, 병사들, 그리고 한미 양국의 군무원들까지 관리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주어졌다.


예전 군검사 시절에는 내 사건만 잘 챙기면 되었지만, 이제는 한미연합사단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사고가 나에게 보고되었고, 나 또한 이를 꿰뚫고 있어야 했다. 군검사들의 질문에 답하고, 군사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조언을 해주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서울에서 몇 주간 지내며, 야경이 아름다운 방에서 쉬기도 하고, 알던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며, 그리웠던 한식도 마음껏 즐겼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운동도 하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온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 동안 몸과 정신은 지쳐갔고, 인간관계는 끊어졌으며, 가족에게조차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로스쿨 시절처럼, 영혼 없는 몸처럼,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나를 느꼈다.


이제는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조금 더 나를 아끼고 돌보자.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쓰고, 연락도 자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며, 여행도 다니자. 더 이상 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감정을 숨기고 고립된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너무 짧게만 느껴졌던 서울에서의 휴식이 끝나고, 나는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 험프리스 기지로 내려갔다.


— To be continued…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요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