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23

by June


전 부대인 하와이에 위치한 악명 높은 제25 신속전투보병사단에서 원래는 국가안보법 법무관으로 1년 더 근무해야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러 군데 알아보고 아는 분들께 어렵게 부탁을 드린 끝에 한국으로 다시 올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동시에 걱정이 많은 나는 앞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다.


평택에 위치한 USAG Humphreys에서 Inprocessing을 시작했다. 부대를 옮길 때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인데, 1주일 이상 걸릴 정도로 길고 복잡해 늘 쉽지 않다. 전 부대에서 받아온 각종 서류들과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들로 인해, 내가 메고 온 가방 안은 온갖 서류들로 어수선했다.


Inprocessing 첫날부터 연합사단 법무관실에서 나를 부른다는 연락이 왔다. 사실 휴가가 하루 더 남아 있었지만, 휴가 중에도 Inprocessing을 서두르라는 말을 듣고 정신없이 절차를 진행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오피스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으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절차를 잠시 멈추고 법무관실로 향했다. 아직 출입증도 나오지 않아 보안 검문소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잠시 후 내 법무관 임관 이후 첫 직속상관이셨던 분이 반가운 얼굴로 걸어 나오셨다. (이분을 내 Mentor라 칭하겠다.) 한국에서 다시 직속상관으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특별한 날마다 연락을 이어온 덕분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었고, 내가 법무관 생활을 하며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나타나 나를 붙잡아주신, 내게는 은인 같은 분이다.


이번에 내가 한국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Mentor가 힘을 써주신 덕분이었다. 기존 발령장을 억지로 수정하면서까지 지옥 같던 하와이에서 나를 끌어내 주셨고, 심지어 법무관의 꽃이라 불리는 군검찰단의 검사장(Chief of Justice) 보직까지 아무것도 아닌 나를 믿고 맡겨주셨다.


아이언맨의 Robert Downey Jr. 를 닮으신 유쾌한 성격의 내 Mentor는 긴장을 풀어주려 갖가지 농담을 건네며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그렇게 함께 법무관실로 올라갔다. 들어서자마자 내 오피스를 정리하고 있던 카투사 후임들과 부사관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대충 둘러본 오피스는 하와이에서 군용 텐트와 침낭 속에서 훈련하며 지냈던 생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원래는 법무관 두 명이 함께 쓰던 공간을 이번에는 나에게 단독으로 주신다고 내 Mentor가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늘 내 오피스를 꾸미는 걸 좋아했기에, 이번에는 어떤 테마로 꾸며볼지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내 Mentor와 함께 법무관실을 돌며 한국, 미국 군무원들과 다른 법무관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전 한국 파병 때 뵀던 한국 군무원분들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인사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Mentor와 함께 식사하러 나가던 길에 법무실장 대령님을 만나, 셋이 함께 나가 햄버거를 먹었다.


그렇게 평택 USAG Humphreys에서의 첫날, 새로운 동료들, 법무관실, 그리고 새로운 삶과의 첫 만남이 지나갔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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