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24

by June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다. Inprocessing 절차와 군검찰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던 그날, 내 멘토께서 나를 오피스로 부르셨다.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부탁이 하나 있다며 말을 꺼내셨다.


다가오는 한‒미 연합훈련에 미 육군 법무관 대표로 용인에 있는 한국군 지상작전사령부에 참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난번 훈련 때 언어소통의 어려움이 있어, 한국군 측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법무관을 요청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멘토께서는 특히 미안해하셨다. 하와이 시절 잦은 정글 훈련으로 고생했던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고, 사실 그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한국에 불러주신 건데 다시 훈련에 참여시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 것이다. 그 마음이 전해져 나도 한동안 숙연해졌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미 동맹에 도움이 된다면 훈련 하나쯤 더 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동남아 정글 한가운데서 텐트를 치고, 샤워도 못 하고, 전투식량만 먹던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밀려 있던 업무와 개인적인 일들을 정리한 뒤, 훈련 준비를 시작했다. 하와이 시절에 비하면 짐도 훨씬 간단했고 마음 또한 한결 가벼웠다.


주말이 되자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차를 몰아 용인으로 향했다. 저녁 무렵 지상작전사령부에 도착해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10명 남짓이 함께 쓰는 이층 침대 생활이었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텔에 온 듯 감사했다. 무엇보다 차를 가져왔기에 언제든지 영외로 나가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도 있었다. 한국군 법무관들과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점도 큰 위안이었다. 하와이의 지옥 같은 훈련들에 비하면 여기는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


다음 날 이른 새벽,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음껏 하고 군복을 차려입은 뒤 차를 몰고 사령부로 향했다. 이미 나와 있던 한국군 법무관 중령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한국계 미군 법무관을 처음 본 데다 한국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하니 놀란 눈치였다.


통행증과 명찰을 받고 작전통제실에 들어섰다. 영화에서 본 듯한 세련된 공간, 수많은 한국군 장교들로 가득 찬 그곳에서 나는 드디어 실감했다.


한‒미 연합훈련의 정점, 을지 자유의 방패(Ulchi Freedom Shield)가 막 시작되고 있음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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