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25

by June


작전통제실 안은 숨소리마저 무겁게 들릴 만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십 개의 화면에는 작전 현황과 전장 상황이 실시간으로 떠 있었고, 한국군과 미군 장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넘어 협력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맡은 역할은 단순히 법률 자문을 넘어서 ”가교“ 가 되는 것이었다. 한국군과 미군이 법적 문제를 두고 부딪힐 때, 언어의 차이로 미묘하게 어긋나는 뉘앙스를 조율하고 서로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었다. 법은 언제나 글자와 단어에 담긴 세부적인 의미에 좌우되기에, 나는 한 마디, 한 문장을 옮길 때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긴장 속에서 나는 오히려 깊은 고요를 느꼈다.


“내가 지금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구나.”


검사 시절 법정에서 증거와 증언 하나하나에 몰입하던 순간들과, 하와이와 동남아 정글에서 땀에 절어가며 버티던 훈련의 날들이 모두 이 자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한국군 법무관들과 함께 군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평범한 된장찌개와 반찬이었지만, 오랜만에 한국말로 웃고 떠드는 자리라 그런지 마음이 편안했다. 그들은 나를 “다리(bridge)”라고 불렀다. 한국군과 미군 사이, 제도와 문화 사이, 그리고 법의 언어 사이에 서 있는 다리라고. 그 말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았다.


하루의 임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창밖에는 여름 끝자락의 바람이 불어왔다. 차창을 열어두니 훈련장의 긴장된 공기와는 달리 한결 고요한 바람 소리가 흘러들었다. 그 순간, 내가 겪어온 수많은 혼란과 훈련, 그리고 떠남과 돌아옴 속에서도 결국 나를 지탱해 온 힘은 이 고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을지 자유의 방패는 단순한 군사훈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길을 다시 비추어주는 거울이었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위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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