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에서 썼던 영화의 줄거리는 이랬다. 오래전 작품이라 대충 말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시라.
형사가 있다. 그는 마초 냄새 물씬 풍기고 행동도 입도 모두 거칠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또라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세관으로 넘어온 불법마약을 발견하고 몰래 빼돌린다. 그리고 뒷골목에 심어놓은 양아치 정보원들을 쑤셔서 공급책을 알아낸다. 물론 공급책은 어둠의 세계 조직. 그는 겁 없이, 공직자의 사명 따윈 없이 그들과 뒷거래를 시도한다. 한 밑천 크게 잡기 위해.
사실 그에겐 그럴 만한, 눈물을 지을 수도 있을 만한 사연이 있다.
아들이 있다. 일찌감치 이혼하고 혼자 키우고 있다. 그런데 아들이 아프다. 병원에서는 난치병이라 하고 일말의 희망으로 수술이라도 하려면 거액이 드는 상황. 철없는 아빠와 사느라 아들은 이미 철이 들어도 너무 들어 애 늙은이 같은 놈이다. 그는 아들 앞에서 철없이 굴지만 그 녀석 때문에 늘 마음 한편이 시리다. 그래서 그는 조직과 뒷거래로 한밑천 잡아 아들을 데리고 이 바닥을 뜰 궁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잘 될 리가 있는가! (주인공의 계획대로 잘되어 가장 심심한 이야기를 만들 순 없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그는 점점 궁리에 몰리고 그의 모든 계획은 어그러진다. 그 와중에 아들은 병이 깊어지고 아빠는 위험천만한 일생일대의 도박에 몸은 던져 비장한 총격신을 벌이다가 처절한 최후를 맞는다.
창피하다. 그리고 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클리셰 범벅의 작품이라고 비웃고 있는 것을. 쪽팔리지만 그건 사실이다. 창작의 현장에 있던 자로서 자신 있게 증언하는 바다.
우리 팀의 작가는 총 4명이었다. 여자가 세 명이었고 남자가 한 명이었다. 적당한 중산층 가정에서 물질적(정신적인 사정까지는 알 수 없으므로)으로 큰 결핍 없이 자라 문화적 혜택을 누린 자들이란 점이 우리들의 공통점이었다. 우리 사이에 크고 작은 능력차는 있었을 것이고 나 아닌 다른 작가들은 꽤나 스펙이 좋은 엘리트출신이기도 했다.
영화도 좀 알고 글도 좀 쓴다고 자부하는 이들이었지만,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아온 인생들이 어두운 뒷골목에서 일생일대의 도박을 거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그려낸다는 것은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째 좀 구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우가(송강호, 설경구가 어떤 배우들인가?), 감독의 연출(결국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 이 작품은 곧 환골탈태할 것이다)이 기막히게 커버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이 정도의 클리셰는 대중영화에 불가피하다고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재미가 떨어진다 싶으면 우리는 대사에 습관적으로 욕을 집어넣기도 했다. 그러면 재미있어지고 캐릭터도 살아날 수 있을 거라 단단히 착각했다. 욕을 맛깔나게 쓰고 싶어서 <<품행제로>>와 <<두사부일체>>란 영화에 등장하는 욕들을 열심히 받아쓰기도 했다. 다른 영화들에서 발견한 흥행과 재미의 요소들을 잘 뒤섞고 적당히 이야기를 짜면 그럭저럭 한 상업영화가 만들어진다고 안일한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때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이자 기획영화들의 전성기이기도 했으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충무로 영화사에 소속된 작가라는 것에 엄청난 심리적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불안하고 서툰 시기에 그런 안정감은 당시로선 든든한 울타리 같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직면해야 할 어떤 순간들과 생각을 키워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글을 쓰기는 했지만 '진심 어린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치열함은 부족했던 것도 같다. 그저 이번 영화가 좀 아쉽더라도 이렇게 계속 수련을 거듭하며 작품에 이름을 올리다 보면 나는 꽤나 능숙한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있을 거라 마음대로 희망의 지도를 그렸다.
열악한 근무조건과 집필과정을 견딜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뒷골목의 세계를 상상으로만 그려야 하는 한계 속에서 나는 사춘기 시절 내가 열광했던 갱스터누아르 영화들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시나리오를 쓰게 된 내가 영화를 가장 순수하게 좋아했던 시간과 작품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영화편력의 시작은 바로 주윤발이 등장하는 홍콩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