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후.
프놈펜 본부행 차량.
이번엔 나 혼자. 총괄은 단독으로 이동한다.
무장 경비 2명, 운전기사 1명.
4시간의 여정.
본부 빌딩 10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대리석 복도. 양쪽에 정장 입은 중국인 경비들.
회의실 문이 열렸다.
타원형 테이블. 20명의 중국인 간부들.
그리고 상석에 앉은 한 사람.
60대 후반의 중국인 남자. 하얀 머리, 날카로운 눈빛.
총책이었다.
"앉아."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김민재. 16개월 만에 총괄. 인상적이야."
"감사합니다."
"서현웅한테 많이 들었어. 네가 똑똑하다고. 그리고 충성스럽다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넌 왜 여기 있어?"
"...예?"
총책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빚 2천만원. 그거 갚으려고 왔다며. 근데 지금 넌 한 달에 3천씩 받고 있어. 이미 빚은 갚았지. 그런데 왜 안 나가?"
"나갈 수 없으니까요."
"거짓말. 총괄은 나갈 수 있어. 내가 허락하면."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럼...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총책이 웃었다.
"네가 원하면. 근데 대신 조건이 있어."
"무엇입니까?"
"웬치에 있는 200명. 전부 네가 데려온 애들이야. 네가 나가면 걔네는 어떻게 돼?"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네가 책임져야지. 넌 이제 총괄이야. 부하들 버리고 도망가는 상관이 어딨어?"
"..."
"그래서 제안할게. 1년만 더 있어. 그동안 실적 잘 관리하고, 후임 키워. 그러면 1년 후에 내가 깨끗하게 보내줄게. 여권도 돌려주고, 보너스도 1억 줄게."
총책이 서류를 내밀었다.
"서명해. 1년 계약."
나는 서류를 봤다.
"거절하면요?"
"음... 네 부모님 주소 알지? 대구?"
손이 떨렸다.
"서명하겠습니다."
총책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현명한 선택이야. 1년 후에 보자."
회의가 끝나고 복도로 나왔다.
현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어?"
"...최악이었어요."
"그렇지? 총책님은 그래. 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실제론 선택권이 없게 만들어."
"형은 어떻게 견뎌요?"
현웅이 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옥상으로 데려갔다.
프놈펜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민재야, 사실은 말이야."
"네."
"나도 못 나가."
"...예?"
"총책이 날 못 나가게 해. 이유는 간단해. 내가 너무 많이 알거든. 조직 구조, 돈 흐름, 뇌물 받는 경찰 명단. 전부."
현웅이 난간에 기댔다.
"3년 전에 총책한테 물었어. 언제 나갈 수 있냐고. 그때 총책이 말했지. '네가 여기서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야. 죽거나, 나를 죽이거나.'"
"그럼 형은..."
"평생 여기야.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침묵.
"그래서 만들었어. 이 계획."
현웅이 나를 봤다.
"민재야, 너 아직도 탈출 준비하고 있지? USB, 조직도, NGO 제보."
"어떻게..."
"내가 다 봤어. 일부러 안 막았어. 왜냐면 나도 같은 생각이었거든."
"형이요?"
"응. 나도 나가고 싶어. 이 지옥에서."
현웅이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이거, 총책 비리 증거 전부 들어있어. 뇌물 받은 캄보디아 장관 명단, 중국 본부 계좌 번호, 인신매매 루트. 전부."
"이걸 어떻게..."
"3년 동안 모았어. 총책 옆에 있으니까 가능했지."
현웅이 USB를 내 손에 쥐어줬다.
"이걸 밖으로 빼내. 그리고 언론에 터뜨려. 그럼 총책은 끝이야. 조직도 무너져."
"그럼 우리도 끝나는 거 아니에요? 우린 공범이잖아요."
"그래. 우린 감옥 가겠지. 근데 그게 낫지 않아? 여기서 평생 사는 것보다."
나는 USB를 봤다.
"왜 형이 직접 안 하고 저한테 줘요?"
"나는 못 나가. 총책이 24시간 감시해. 근데 넌 달라. 넌 신입이야. 아직 총책이 널 완전히 믿진 않아. 역설적으로 그게 기회야."
"무슨 뜻이에요?"
"다음 달, 네가 한국 출장 가잖아. 신입 모집하러. 그때 이거 빼돌려. 그리고 한국 검찰에 넘겨."
"그럼 형은요?"
현웅이 웃었다.
"나? 나는 여기 남아서 시간 끌어줄게. 총책 눈치 못 채게."
"그럼 형은 죽는 거잖아요."
"괜찮아. 어차피 여기서 평생 사는 것도 죽는 거나 마찬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