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웅의 편지

by 천상우
캄보디아 웬치 가상 이미지.png

6개월 후

서울구치소.

나는 수감 중이었다.

혐의: 인신매매 방조, 사기 방조, 폭행.

징역 5년 구형.

하지만 이상하게 편했다.

여기는 웬치보다 자유로웠다.

"김민재, 면회."

면회실로 나갔다.

유리창 너머에 앉은 사람.

김지훈이었다.

"형님."

"지훈아. 잘 지냈어?"

"네. 한국 돌아와서 치료 받고 있어요. 트라우마 상담도 받고."

"다행이다."

"형님, 이거."

지훈이 봉투를 내밀었다.

"뭔데?"

"생존자들이 모은 거예요. 탄원서. 200명 전부 서명했어요. '김민재는 우릴 구했다. 감형해달라'고."

"...바보들."

"그리고 이것도."

또 다른 봉투.

"편지예요. 서현웅 형님이 남긴 거."

"형이?"

"네. 폭발 전에 저한테 맡겼대요. '민재가 살아서 나가면 이거 전해달라'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았다.


독방으로 돌아와서 편지를 열었다.

민재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너는 살아서 나갔다는 거겠지.

축하해.

너한테 거짓말했던 게 있어.

나는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어.

8개월 동안 실적 못 찍은 게 일부러였다는 것도 거짓말.

진짜로 못했어. 목소리가 떨려서.

재고 될 때 선택권을 준 것도 사실.

나는 살기 위해 조직에 들어갔어.

너처럼.

3년 동안 나는 괴물이 됐어.

때리고, 협박하고, 사람들을 속여서 웬치로 끌고 왔지.

너도 봤잖아. 내가 얼마나 능숙하게 하는지.

그런데 말이야, 민재야.

너를 보면서 생각했어.

'아, 나도 처음엔 저랬구나.'

처음 웬치에 왔을 때.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던 나.

동료를 도우려고 했던 나.

탈출을 꿈꾸던 나.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냥 여기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너를 만난 게 8개월 전이었지.

멍 투성이였던 나를 기억해?

그때 나는 진짜로 재고 직전이었어.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근데 너를 봤어.

내 옆자리에 누운 신입.

떨고 있는 너.

그리고 생각했어.

'한 명만이라도 살려보자.'

그래서 알려줬지.

살아남는 법.

실적 내는 법.

조직 시스템.

근데 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

더 올라갔어.

선임, 팀장, 총괄까지.

처음엔 실망했어.

'아, 얘도 결국 괴물이 되는구나.'

근데 집회 때 네 말을 듣고 알았어.

너는 안 변했어.

아니, 변했지만 본질은 안 변했어.

너는 올라간 이유가 있었어.

탈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

그때 결심했어.

내가 네 발판이 되어주자고.

USB 준 것도 계획이었어.

총책 비리 증거.

사실 나는 그걸 3년 동안 모았으면서도

사용할 용기가 없었어.

왜냐면 나는 겁쟁이거든.

살고 싶었어.

조직 무너지면 나도 감옥 가잖아.

근데 너는 달랐어.

네 인생을 걸었어.

200명을 위해서.

그래서 나도 걸기로 했어.

내 목숨을.

마지막 날 밤, 너를 탈출시키고

나는 총책에게 갔어.

"제가 민재를 도왔습니다. 저를 죽이세요."

총책이 물었어.

"왜 그랬어?"

나는 대답했지.

"제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총책이 웃더라.

"너는 이미 괴물인데."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하는 겁니다."

마지막 순간은 아프지 않았어.

오히려 편했어.

민재야, 너는 나보다 훨씬 강해.

너는 괴물이 되고도 인간으로 돌아왔어.

나는 괴물이 된 채로 죽었지만.

부탁이 있어.

이 편지를 읽고 나면 나를 미워하지 마.

나는 네가 증오할 만한 일을 많이 했어.

나 때문에 웬치에 온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마지막만큼은 제대로 했어.

너와 200명을 구했어.

그걸로 됐어.

살아줘서 고마워, 민재야.

너 덕분에 나도 마지막엔 사람으로 죽었어.

서현웅

나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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