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by 천상우
캄보디아 웬치 가상 이미지.png


2년 후 나는 NGO '해외범죄피해자구조센터'를 설립했다.

200명의 생존자 중 50명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동남아 범죄조직 피해자들을 구조했다.

2년 동안 350명을 구했다.

이 중 80명이 웬치 출신이었다.

어느 날,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해외범죄피해자구조센터입니다."

"...민재 형님이세요?"

낯익은 목소리.

"네, 누구시죠?"

"저... 이민수예요. 웬치에서 형님한테 맞았던..."

심장이 빨리 뛰었다.

"민수야. 어떻게..."

"형님,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었어요. 저 때문에 형님이 고생하셨잖아요."

"아니야. 내가 미안해. 너를 때렸잖아."

"아니에요. 형님은 살아남으려고 하신 거예요. 이해해요."

침묵.

"민수야, 지금 뭐 해?"

"대학 다니고 있어요. 심리학과요. 나중에 트라우마 상담사 되고 싶어요."

"잘 됐다."

"형님은요?"

"나는... 속죄하고 있어."

"형님은 이미 다 갚으셨어요. 우리 모두 살아있잖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 창밖을 봤다.

서울 하늘.

자유로운 하늘.


3년 후 나는 다시 캄보디아 프놈펜에 왔다.

이번엔 자발적으로.

UN 인권위원회와 함께.

우리는 동료들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피켓을 들고 가두 시위를 하며 압박을 넣었다

"아직도 50개 이상의 범죄단지가 운영 중입니다."

"추정 한국인 피해자 2,000명. 인접국가를 합하면 수만명 피해자 감금 추정"

시위가 끝나고 우리는 범죄단지가 모여있는 캄보디아 외곽 시아누크빌로 향했다.

웬치가 있던 곳.

지금은 폐건물이었다.

철조망은 여전했다.

나는 정문 앞에 섰다.

3년 전, 여기서 현웅 형이 죽었다.

꽃다발을 놓았다.

"형, 잘 지내고 있어요."

"다 잘 살고 있어요. 형이 준 기회, 낭비하지 않았어요."

바람이 불었다.

철조망이 흔들렸다.

그 소리가 형의 목소리 같았다.

'잘했어, 민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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