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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15. 2022

바흐 첼로 솔로 2번 D단조

[엽편소설] 비극을 내버려 두게, 오래된 동무 대하듯이.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첼로 솔로 2번 D단조, 바흐 작품번호(BWK) 1008, 프렐류드.


이 곡을 첼로 독주 대신 비올라 독주로 듣는 것은 그날의 귀를 상당히 호사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외로울 때는 비올라를 켰다던 젊은 비올리스트가 눈을 감고 자신의 비올라를 쓰다듬듯 활을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 낸다. 바이올린의 소리는 쾌활하지만 실제로는 발톱을 숨기고 있어 높은음으로 올라 갈수록 어딘지 신경질 어린 느낌이 든다.


반대로 첼로는 사람의 음성과 가장 닮은 현악기다. 통 깊은 떡갈나무에 얼굴을 대고 '아아-' 했을 때 반사되어 되돌아 올 그런 소리. 다리를 벌리고 앉아 악기의 몸통을 놓고 그리고 시작된다. 애무가. 부드러운 쓰다 듦의 전희를 거쳐 시위를 빠르게 혹은 격정적으로 놀리고서 다시 퉁기듯 만져주며 후희의 과정도 건너뛰지 않는, 이를테면 사랑을 나누는 애인을 소중히 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첼로의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낮고 깊지만 점점 높은 음계로 올라갈수록 사랑을 받고 있는 여자가 뒷목을 젖히고 까르르 웃는 것 같은 애교 섞인 명랑함이 느껴진다.


비올라는, 그렇다면 비올라는 그 중간쯤 될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현악기.

소리는 바이올린의 그것보다 훨씬 진중하다.


바이올린을 10대 중반의 말괄량이 사춘기 소녀에, 첼로를 세상을 어느 정도 아는 진지함을 가진 마흔 중후반의 혹은 그보다 더 나이 들었을 독신의 남성에 비유하자면 비올라는 아직 채 여러 번 있어 본 일이 없어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사랑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떠남으로 우수에 젖는 것이 무엇인가를 조금씩 터득해 가는 청년 같다. 그래서 외로운 청년 비올리스트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해 외로웠을 비올라를 택해 자기 외로움을 함께 현의 선율에 녹여내듯 뽑아내었던 것이 아닐까. 그에게 비올라는 '지음(知音)' 일 것이다. 소리를 알아주는 벗. 그리고 소리를 내어주는 벗. 소리로 희로애락을 다 감싸 안는 벗. 자기를 제일 잘 알아주는 벗. 가장 가까이에 있어주는 벗.





이 곡은 이렇게 구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입부의 조심스럽게 세 음계를 차례로 밟다가 그리고 수줍은 듯 머뭇거리다 우울을 작심한 듯 곡을 전개해 나간다. 마음을 휘감은 현의 아우라가 그대로 마음을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마구 잡아당겼다가 다시 제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절제된 가운데 자기 울분을 충분히 울어내는 어른스러움 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비올라의 소리는 한 여름밤 쏟아지는 장대비 같았던 젊음의 순간순간들에서 체득한 멜랑콜리아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또 절대 과하지 않게 아무에게도 그 화의 화살을 돌려 탓하지 않고 점잖게 그것을 해소하며 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이런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서툰 그 청년이 얼마 동안 동네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비극이 한 바탕 휘몰아 간 얼굴로 지나갔다. 그 서투른 남자는 어느 날 그렇게 서툴게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버린 뒤, 몇 달을 방치해 둔 제멋대로 자란 머리칼을 정리하려 이발소에 들어왔다. 이발소를 하는 동네의 마음 좋은 할아버지는 짐작했다. 무엇이 저 젊은 청년의 얼굴에 짙은 패배자의 기운을 발라 놓은 것일까. 그렇게 펴 발라 놓은 사람은 정작 아침에 먹는 주먹만 한 빵의 배를 갈라 그 사이에 오렌지 잼을 바르듯이 스윽 스윽 이 젊은 남자에게 이별 후의 모든 뒤처리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어쩌면 능숙하게 혹은 꽤 무책임하게 발라놓고 간 것인지.


이발사 할아버지는


일단 앉으시게나.


 하고 하얀 가운을 그 젊은 남자의 목둘레에 두르고 기름져 마음대로 저들끼리 뭉쳐버린 남자의 머리칼을 내려다본다.


이런- 우선 머리부터 감아야겠는 걸


하고 넉살 좋게 웃으며 청년의 머리를 미지근한 물로 조심조심 감긴다. 사제가 영아 세례를 받는 아기를 조심스레 안아 들고 작고 여리고 둥근 머리에 성반에 담긴 성수를 묻히는 것 같이 그렇게 말이다. 청년은 오랜만에 따뜻하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자못 성스럽다는 기분을 세면대에 붙어 있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느낀다.


이발을 하기 좋을 만큼 머리를 충분히 말리는 동안에도 둘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이발사는 청년에게 묻는다. 얼마만큼을 남겨두고 얼마만큼을 잘라야 하겠느냐고. 청년은 말하기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혀를 살짝 내밀어 아랫입술을 약간 적신 뒤 울대가 한 번 꿀꺽하고 움직이도록 침을 삼키고 나서 입을 떼어 말한다.


청년은 참 모든 것이 서툰 남자이다. 남겨야 할 것은 없노라고. 이발사는 혼돈의 상태로 자란 머리칼을 능숙한 솜씨로 잘라낸다. 그리고 이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스타일의 커트라며 말쑥하게 이발을 해 놓는다. 청년은 말끔해진 자기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늙은 이발사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래에 잘려나간, 자신이 남길 것 없다고 해서 잘린 그 흩어진 머리칼들을 한 번 내려다본다.


이발사는


왜, 아까워서? 그럼 내 따로 싸줄까?


하고 넉살을 부린다.






윗도리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이발 값을 치르고 이발사는 조용히 받아 들고 거스름돈을 내어 주었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가 제공하고 제공받은 일에 대한 지전과 동전들이 오가는 사이에 그 둘의 손가락이 닿았다. 청년의 것은 가느다랗고 차가웠으며 이발사의 것은 주름이 제법 앉았지만 보기 흉하지 않았고 따뜻했다. 순간 이발사는 자기도 모르게 거스름돈을 건네어 받는 청년의 손을 자기 양손으로 꽉 그러잡아버린다. 청년은 거기에 가만히 말없이 서서 그 따뜻함을 손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도록 두었다.


이보게, 그러지 말고 이리 와 앉아보라고-


늙은 이발사는 한 동네에서 몇십 년을 살아왔는지 어쩌면 그 동네의 역사가 이 이발사와 함께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청년은 사양 않고 카운터 옆 소파에 앉는다.


그래, 그렇지. 좀 앉아 쉬다 가라고. 차를 내어다 주련?


하면서 아직 청년의 대답도 듣지 않고 물주전자를 가스 불 위에 올렸다. 물이 다 끓었고 차를 담은 잔을 들고 이발사는 청년의 옆에 와 앉는다.


들어보게. 이래 봬도 내 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우려내지.


청년은 호 불어 한 모금을 마시고 또 다음 모금을 마시고 또 다음 모금을 마시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청년의 눈가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액체가 잔에 떨어졌다.


그러면 차에서 짠맛 날 텐데.


하면서도 또 이발사는 청년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청년은 찻잔을 내려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사람이 우는 모습은, 젊디 젊은 남자가 웬 이발소에서 늙어가는 남자 앞에서 우는 모습은, 결국은 아버지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이발사의 손은 마법사의 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두툼한 손으로, 수 없이 머리카락과 가위와 빗과 면도칼을 쥐었을 기술자의 손이 천천히 청년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청년은 신기하게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을 떼었다.


자기 사랑의 이야기를. 한 순간으로 끝이 나야만 했던 이야기.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을 괴롭게 한 그 일에 관한 이야기. 누구로부터 버림받아진 이야기. 그 이야기를 두어 마디 운을 떼다가 어디서 그런 탄력이 붙었는지 청년은 이야기를 죄다 쏟아내었다.


그리고 촉촉이 젖어버린 눈가로 물끄러미 늙은 이발사를 응시했고 그 늙은이는 평생을 맑은 영혼으로 살아왔을, 또한 그 세월만큼의 관록이 서린 눈으로 청년의 눈빛에 응수한다. 그리고 청년은 생각한다. 이 괴로움이 저토록 찬찬히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염려의 뜻을 담은 선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 늙은 얼굴로 인하여 이미 이렇게 쏟아내 버린 마당에 이제는 다시 주워 담아 고집스레 싸안고 있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 괴로움은 오롯이 자기의 몫이라는 것도 청년은 잘 안다. 하지만 이발사는 청년에게 그 어떤 순간의 달콤한 위로의 말을 행여 인사치레로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예의 그 선한 눈으로 자기가 미지근한 비누거품 탄 물로 세례를 주어 고난과 뒤따르는 죄책감 같은 모든 앙금을 고해한 어린 사내의 어깨를 토닥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그 모든 생의 과정을 단지 이 청년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전부 거쳐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괴로움이 잊어지듯 걷히고 나면 또 어떠한 종류의 새로운 괴로움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그때는 다만 이 어린양이 조금 덜 상처를 받고 우스와 고독의 참된 의미를 스스로 깨우치고 능수능란하게 그것을 다룰 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그 청년을 축복하여 주었다.


어느새 탁자에 놓인 두 잔의 찻잔에 담긴 마시다 남은 차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청년은 자기 것을 들어 단 숨에 입에 털어놓았다. 쌉싸래한 찻물이 차갑게 식도를 타고 속에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이거, 제.. 가.. 시간을.. 너무 오래.. 잡아먹은 것.. 같습니다.


청년이 또 더듬더듬 그러나 정확하게 말했다. 진심이었으므로.


아니, 아니야- 그렇지 않다네. 오늘 같이 날이 좋을 때는 다들 나들이를 가지, 이발을 하러 오지 않는 법이라오. 날씨가 궂은날에 손님들이 와서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새로 머리를 단장한다네. 그러고 이 문턱을 나서면 가벼워진 머리를 하고 다시 자기들의 삶 속으로 가뿐히 걸어 들어간다오.
손님이 없는 오늘 같은 날에 나는 레코드에 카잘스의 첼로 독주나 마이스키가 켜는 마스네의 엘레지가 있는 판을 걸어서 현이 만들어내는 짙은 고독을 얼마쯤 즐긴다네.
엘레지! 엘레지란 말이지-사실은 마리앤 앤더슨의 노래로 들어야 제 맛인데 허허. 그래도 아직 젊은 자네 같은 친구가 엘레지를 듣기에는 위험하다고.


늙은 이발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엘레지의 멜로디를 콧노래로 불렀다.


그동안 이 이발소를 꽤 들려왔다고 청년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이 이발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또 없었다는 생각도 했다. 어딘지 신기한 하루라고, 사실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 로맨티시스트를 자처하는 할아버지는 오래된 축음기 옆에 가지런히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모아 꽂아 둔 판들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무엇을 찾는 듯했다.


차라리 비올라를 으라고. 자네는 마스네 대신에 바흐로 가보는  어떻겠나? 바흐 말이야.  위대한 요한 세바스티-- 바흐를 말이야.


하고 과장되게 그 바로크 천재의 이름을 발음하더니 노인은 눈을 감고 팔로 비올라를 켜는 동작을 취하며 상체를 좌우로 리듬을 타듯 움직였다. 그러고는 목젖이 보이게 크게 한 번 웃으며 판을 찾아내었다.


여기서 들어보겠나?


금방이라도 이발사는 축음기에 판을 걸 기세였다.


아닙니다. 집에서- 저.. 집에서 듣겠습니다.


서툰 남자가 또 서툴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어느새 이미 그 판은 청년의 품에 안겨 있었다.


수일 내로 돌려드리러 오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청년은 이발소의 문턱을 넘어섰다. 청년이 나갈 즈음 이발사는 벌써 축음기에 마리앤 앤더슨이 절절하게 부르는 마스네의 엘레지가 담긴 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고개를 돌려 이미 등을 돌아서 문턱을 벗어나려는 청년을 보고 눈짓으로 인사하며 말했다.



오래오래 들어도 되네.
비극은 애써 멀리한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붙잡고 살자면 그저 가슴을 갉아먹는 그런 녀석이라네.
내버려 두게. 오래된 동무 대하듯이.
사실은 가장 기쁜 순간들보다 더 오래 더 많이 우리 곁에 머물 것이네.




청년은 멈칫해 서서 그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그리고는 그도 똑같이 고개를 돌려,


머리가 다시 자랄 때, 그때 오면... 드릴게요.
그때까지.


하고 힘주어 말한 뒤 청년도 똑같이 다른 많은 손님들이 그러했을 것처럼 이발소 문턱을 넘어 청년의 삶 속으로 돌아갔다.







청년은 거실에 있는 축음기에 판을 걸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올리스트였다. 단 한 곡 만이 녹음되어 있었다. 아마 누군가 별로 유명해지기 전에 데모판처럼 녹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활시위는 당겨지며 주춤주춤 애수에 취해 걸어와서는 세 음계를 짚어가며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슬픔을 마주하더니 고독에 몸부림치듯 울음을 터뜨렸다가 다시 감정을 추스르고 현을 활로 내리누르듯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게 그 레퍼토리였다. 음계는 상승했다가 다시 하강했다. 어깨를 들썩들썩하면서 우는 사람처럼. 바로 얼마 전 이발소에서 이발사 영감 앞에서 어깨를 흔들어야 했을 만큼 울었던 자기 자신처럼. 무거운 음색이었다. 첼로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년의 가슴을 그어버린 것은 이 곡은 절대로 폭발적이지 않게 담담하게 슬픔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름 모를 비올리스트 역시 자신의 괴로움 혹은 애수 그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한껏 실어 활을 움직였을 테지만 과하지 않고 그래, 그럼 그럼 삶이란 게 다 그런 게 아니겠냐고 끄덕이며 아까 그 이발사가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선한 웃음을 지어줄 수 있게 그렇게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마지막 소절에 다다랐다. 다시 조용히 처음의 그 수줍고 묵묵하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삭이며 이야기하듯이 슬픈 음계들이 어두운 소리와 함께 여러 현을 동시에 긁으며 겹치는 소리들로 마무리되었다. 화려한 기교도 없었다. 정말로 그 이발사는 마법사였을 것이라고 청년은 아예 결론을 내리기로 하였다. D단조의 현이 빚어내는 우수에 찬 음악이 청년의 마음을 더 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짧은 인생 속에서 겪어왔던 크고 작은 모든 종류의 고통과 슬픔을 하나씩 하나씩 찬찬히 음계를 짚어가듯 끌어내어 만지며 다져주었다는 것이다.


청년은 가슴에 손을 대었다.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기분 나쁜 아픔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곡은 끝맺을 때 까지도 우수 어린 여운을 떨치지 않고 마쳤다. 그다음 시리즈를 기다리는 주간지 연재물의 애독자처럼 그다음 편의 애수를 기대하게 되었다. 살아가는 동안 많은 행복과 달콤하고 황홀한 순간이 있게 되듯이 그 사이사이에 또 새로운 슬픔과 고통과 고뇌와 고독함 그리고 상실과 이별 남겨짐과 떠남이라는 것들이 끼어들어 올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헤아려본다. 이 삶이, 청년의 그 젊음이 아직 채 끝나지 않았으므로 괴로움 역시 이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앞에 남은 날들에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므로, 새로운 행복을 점쳐보듯 또 다른 괴로움을 청년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판을 다시 걸며 비올라가 전해주는 극한의 센티멘털리즘 속에서 가만가만히 예견해 보았다.


청년은 늙은 이발사가 익살을 섞어서 취해 보이던 비올라 켜는 동작을 잠시 생각했다. 그 사이 청년의 집 거실은 무대가 되어 있었다. 청년은 처음에는 서투르게 참으로 그 청년답게 팔을 펴고 이쯤 팔을 뻗었다 구부리며 바이올린보다는 클 테니 하면서 자신의 팔에 꼭 맞는 투명 비올라를 하나 금세 만들어 내었다. 다른 팔로는 활을 쥐었다.


모든 것은 투명했다. 오로지 청년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청년은 눈을 감고 그 우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동시에 발산하였다. 청년의 팔은 안정적으로 활을 놀리고 있었다. 그리고 청년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에도 서려보지 못했던 잔잔한 미소가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이 걸리듯 얹혀있었다.


 감은 두 눈 틈새로 흘러나오는 눈물과 함께 천장의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는 것을 그 자신은 알지 못한 듯, 그는 이미 흠뻑 연주에 심취해 있었다.




-끝-







비올라로 듣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첼로 모음곡 2번 D단조 프렐류드>



마리앤 앤더슨의 음성으로 듣는 '쥘 마스네'의 <엘레지> (긴 전주 뒤에 그녀의 음성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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