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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07. 2022

들리는, 들리지 않는

그것은 정말 소리였을까?



이른 주말 아침부터 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계약서에 도장까지 다 찍었는데 이제와 출판 해지를 하겠다고?’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선 남자는 주말 아침잠도 고스란히 반납하고 씩씩거리며 해결을 보러 갈 작정이었다. 그렇게 주먹을 꽉 쥔 손을 단단하게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거의 온 종일 출타를 했으나 아무런 소득 없이 부당하게 계약 해지를 일방 통보 받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온 것일 뿐이었다. 정말 재수가 더럽게도 없을 모양이구나. 남자는 망연자실하여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그렇게 돌아와 달리 신경질을 부릴 데가 없었던 불쌍한 남자는 현관문을 있는 힘껏 쾅 닫았다. 그러고도 못내 분이 삭혀지지 않아 콧김까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분명 아주 기분 나쁜 소리였다.

“낄 낄 낄”

“낄 낄 낄 낄”

“낄 낄 낄 낄 낄”

소리는 거듭 될 때마다 한 음절씩 늘어났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도대체 얼마까지 늘어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그 소리가 두려웠다. 그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소리는 망령처럼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맴맴맴 돌며 낄낄낄 거렸다.

이런, 우라질-!!” 하고 남자가 남자의 소리로 새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기분 나쁜 소리는  소리에 대답하기라하듯 더욱 야멸차게, 더욱 커다랗게 울렸다. 그는 욕실 문고리를 딸깍- 돌려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들은 전부 재수가  붙은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탓이라고,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 있는 까닭이라고 그는 나름의 이유를 붙여보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너무 억울할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소리를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거부할수록 소리는 악착같이 추격해오는 크루즈미사일처럼 계속해서 그를 따라 붙이고 있었다.

으윽-

속에서 메스꺼움을 느낀 그는 풀썩 하고 무릎을 굽혀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무릎걸음으로 마치 개처럼 변기까지 기어갔다. 그는 변기통을 붙잡고 한참을 토악질 해댔다.

“우웩- 웩--- 웨에에에엑 --- 윽- 우우욱-

 이제는 위장에 무엇도 남지 않아 식도를 타고 씁쓸한 물만이 올라왔다. 기진해진 그는 문득 자신의 토사물을 내려다보았다. 토사물은 변기 속에 사뭇 얌전히 담겨있었다. 끈끈하다 못해 걸쭉한 질감을 한 탁한 빛깔의 액체가 변기에 고인 물과 한데 어우러져 무슨 반죽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갑자기 코를 가까이 갖다 대어 그 냄새를 맡아보고 싶은 충동을 잠시 느꼈으나 미련 없이 물을 내렸다. “쏴아아--” 강한 수압이 단숨에 그의 위장 속 찌꺼기들을 쓸어내었다.

양손으로 힘겹게 변기를 부여잡듯 그는 일어섰다. 입안에서는 계속 쓴 맛이 났다. 아주 더러운 쓴맛이었다. 그는 칫솔에 박하향이 나는 하양 알갱이들이 박힌 하늘색 치약을 주욱 짰다. 그러고는 그대로 입 안으로 집어넣어서는 구석구석 꼼꼼하게 이를 닦고 또 닦고 점점 더 힘을 주어 칫솔로 입 안을 휘저었다. 혓바닥 뿌리까지 박박 닦아내고는 퉤- 뱉어내었다.




이번에 그는 세면대 중앙에 새초롬히 뿌려진 거품과 타액이 뒤섞인 액체를 내려다보았다. 옅은 붉은 기가 비쳤다. 아마도 어금니 안 쪽 주변의 잇몸에 생채기를 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혀를 놀려 어금니 깨에 갖다 대니 정말로 쓰라림이 감지되었다. 남자는 수도꼭지를 올려 깨끗이 내려 보내고 칫솔을 씻고 가글까지 해가며 거푸 물을 머금었다 뿜어내길 반복하였다. 이 행위들에서 어떤 결벽 증세마저 느껴졌다. 이로써 너절스러운 하루에 쌓였던 모든 더러운 것들을 게워내고 닦아낸 것만 같아 그의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후아- 하고 깊이 한 숨을 들이 내쉰 그는 얼마간의 평정을 얻은 듯하였다. 그래, 살다보면 별 지랄 맞은 날도 다 있게 마련이지. 그는 수건 대신 오른쪽 팔의 소맷부리로 입가를 씩 씩 닦으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낄- 낄 낄낄”

다시 소리가 시작되었다.

분명 누군가의 괴이한 웃음소리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싸울 태세로 자세를 고쳐 잡고서 “누구냐- 어디야-!! 대체 어떤 미친놈이냐- 제발 그마안!! 그만해” 욕실이 울릴 만큼 꽥 고함을 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아침에 일어나 외출을 하고 돌아오기까지 만 하루 동안 중간 중간 그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별, 어디 웃다가 숨넘어간 귀신이 붙었나!” 그러자 소리는 멈추었다. 이미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더는 소리와 짜증과 피곤과 맞설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눈을 한 번 지그시 감고 미간을 꾸욱 누르고 난 뒤 눈을 떠 정면의 거울을 응시했다. 남자의 얼굴이 남자의 눈에 비쳤다. 남자는 하루 새 부쩍 야위어 보였다. 다 이놈의 재수 없는 하루가 나를 망쳐놓은 게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갑자기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내복 상의에 트렁크 팬티 차림의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낄 낄 낄” 어디선가 자꾸 그를 조롱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그의 신경 세포 하나  하나가 모두 그 소리를 느낀다. 이미 그의 팔뚝에는 소름이 다다닥 돋아있었다. 그는 자꾸만 무서워졌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응시했다.

“낄 낄 낄 낄” “낄낄낄 낄낄” “낄 낄 낄---”

거울 속의 남자는 무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핏기를 잃어버린 입술이 간헐적으로 들썩이며 “낄낄낄낄” 하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남자는 단단한 플라스틱 양치 컵을 거울에 그대로 내던졌다.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 여기저기로 거미줄 같은 복잡한 금이 자잘하게 갔을 뿐이다.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 정확히 정면으로 그의 왼쪽 얼굴이 비친 부분은 금이 가지 않아 멀쩡했고 나머지 반의 얼굴이 비치는 부분은 자잘한 금이 가서 그의 얼굴  반쪽은 이리저리 흩어져 보였다. 왼쪽 눈과 왼쪽 뺨과 입술의 왼쪽 절반은 그대로 무표정이었다. 오직 금이 간 오른쪽 얼굴의 근육들만이 미세하게 떨렸으며 오른쪽 절반의 입술만이 파편 튀듯 들썩이며 “낄낄낄낄낄”하고 있었다. 얼굴에 손을 대고 더듬어 입술을 찾아 만진 그는 지금 자신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아니, 계속해서 움직여왔다. 그의 입술은. 입술은 벌어질 때마다 낄낄낄- 소름 돋는 웃음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 거울의 멀쩡한 면에 비친 왼쪽 반의 입술도 함께 움직이며 시종 낄 낄 낄 낄 거렸다.

이 소리. 차라리 킬킬킬 키득키득 했더라면 웃어 넘겼으련만 일정한 중저음으로 낄낄낄거리는 이 광기어린 웃음소리. 그는 그 순간 처음으로 그 소리가 귀에 익었음을 알아챘다. 낯익은 중저음. 그것은 남자 그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는 그렇게 하루 종일 낄낄거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생각이 여기에 이르기 무섭게 욕실 정 중앙에 걸린 거울이 폭삭 주저앉으며 와장창 소음을 만들어냈다. 자잘한 조각들이 삽시간에 사방으로 튀며 낄낄낄 낄낄낄낄 소리를 내었다. 사실 소리들은 셀 수 없는 조각으로 튀고 있는 파편들만큼 더욱 자잘하게 신경을 돋우고 있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깨진 거울 조각들에 반사되어 그에게 조각조각 박혀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팔, 다리, 이마, 볼에까지 튀긴 파편들은 단 한 곳, 바로 그의 입가만은 남겨두고 있었다. 파편들이 낄낄거리며 그의 몸에 박히기를 멈추었을 때에도 멀쩡한 그의 입술만은 끊임없이 들썩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 - - - - !!!!!!”

그는 파편 박힌 피부에서 흐르는 핏줄기를 확인하고는 자지러지듯 소리 질렀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욕실 바닥은 거울 파편들과 한 남자의 몸에서 톡톡 떨어져 내린 핏자국으로 어지러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두 손으로 입을 막아보아도 입술은 움직이길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입가의 근육은 단단하고 완강하게 활동하였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가장 큰 거울 조각이 그를 관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래에서 위로 그를 비춰내고 있었다. 피가 멈춘 상처 부위가 쿡쿡 쑤셔왔다. 그렇게 해괴망측한 몰골의 한 남자가 자기 손바닥 절반 크기의 거울 조각에 고스란히 비쳤다.

순간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조각을 끄집어내어 날이 선 가장자리로 자기 목을 그었다.

쓰으윽---

살점 깊숙이 단검이 훑고 지나가듯 살기어린 소리가 살점을 스쳐지나갔다. 순간 엄청난 양의 피가 순식간에 벌어진 목의 환부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는 잠자리채에 걸려든 곤충마냥 힘없이 쓰러졌다. 등에는 바닥에 떨어진 파편들이 동시에 박혔다. 그리고 그의 달싹이는 입술에서부터 시작된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이제 피를 뿜어내는 목의 벌어진 살갗에서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출혈은 멈추었고 아직 벌겋게 벌어져있는 환부는 떨리듯 계속 간헐적으로 낄낄낄거렸다.





그날 밤, 옆집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제보가 들어온 그의 집 현관문이 열렸고 욕실에 쓰러져 있는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왼손에는 목을 그은 거울 조각이 박힌 듯 꽉 쥐어져있었고 오른 손은 필사적으로 입술을 틀어막고 있는 자세로 사후 경직되어 있었다.

옆집 사람의 진술에 따르면 옆집에서는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 다른 소리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다 그 사람은 잠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왠 사람 비명소리가 들렸지요. 그건 깨지는 소리가 나고... 한... 십여 분쯤 지나서였을 겁니다. 그 후 다른 소리는 없었습니다.” “확실한가요?” “공휴일에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그럼, 바로 옆집 문 열리는 소리 하나 쯤 못 들었겠수?” “여기는 복도식 아파트라 사람 드나드는 소리는 훤히 다 들려요” “사람이 다 죽어나가다니 거 괜히 말 나돌아 집값 떨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원 참-” 과 같은 말들이 하나 둘 들려왔다.

경찰은 이웃들에게 평소 그 남자에 대해 이상 징후는 없었는지 등을 물었고 사람들은 한결  같이 그는 좀체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었고 오늘 하루도 문이 열리는 소리 따위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칩거하듯 사는 302호 남자가 죽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랐으며 오늘 난 소리가 그 집에서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옆집까지 들릴 정도의 큰 소리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웃들은 곧 다시 저마다의 일상 속으로 돌아들 들어갔다.

이튿날 302호 현관에는 수사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었으며 밤사이 시신은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마 화장 되었을 것이라는 둥의 이야기가 들렸다. 남자의 사인은 자살이었다고 일간지에 두어줄 그의 사건이 실린 것이,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진단은 너무 성급했다. 혹은 너무 매정했다. 그 모든 괴이함은 ‘자살’ 이 두 글자로 단정 지어졌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물어지지 않았다. 왜,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 과연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할 수 있었는지. 그러나 죽은 그 자신만은 알았을 것이다. 그는 자살이 아닌 타살이었다고. 분명 어떤 기분 나쁜 소리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고.


유감스럽게도 그 소리는 그만이 알아챌 수 있었으며 그의 입에서 또 목에서 나온 분명한 어떤 ‘소리’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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