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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26. 2022

씨트론 마멀레이드

[엽편소설] 나는 그때 이미 눈을 감아버린 것 같다.


겨우 입을 연 상대에게서 나온 말은 절대로 그렇게만은 시작해 주지 말았으면 했던 바로 그 말이었다.


왜 그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니?
얼마에 한 번이라도 아주 가끔이라도 궁금해질 수도 있는 거잖아?


원망 섞인 목소리로 그가 물어왔다.

나는 거기에 뭐라고 대답했어야 했을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부러 분홍 공단 소재로 주름잡아 만든 커튼을 돌돌 말아 끈으로 묶어내며 시간을 어떻든 연장하고 싶었다. 명료한 대답을 요구하는 그의 눈빛을 등 뒤로 받아내며 그가 그 시선을 거두어 줄 때까지의 시간 말이다.


커튼은 양쪽 모두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말렸다.

이제는 열어놓은 창문을 다시 닫아야 할지, 말아 놓은 커튼을 도로 풀어놓아야 할지 또 무슨 구실을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해내야 한다.


아 그래! 맞다 참. 머핀을 구워놨었지ㅡ
이제쯤이면 먹기 좋게 식어있을 거야.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부러 실내 슬리퍼 소리를 크게 내면서 걸어 들어갔다.


주방으로 올래? 머핀 먹자. 너 플레인 머핀 좋아하잖아.
아직도 좋아하는 거 맞지?


부러 더 부산을 떨어보았다. 평소보다 과장되게 달그락 거리는 소리로 포크를 챙기고 접시를 꺼내고 옹기종기하게 부풀어 구워져 나온 머핀들이 박힌 머핀 틀을 꺼내 들고 식탁 깨 까지 갔다.


나는 아주 명랑하게 말해야 했다.


얘두 참, 와서 좀 거들어주라.


그는 계속 그렇게 세 발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부산스럽게 식기를 늘어놓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집요한 눈빛은 아직 채 거두어지기 전이었다. 그렇게, 그렇게나 나는 시간을 끌고 있었는데 그는 조금도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끄러미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조차도 낯선 얼굴을 만들어 목소리를 한 톤 높여서 뭐라고 뭐라고 되는대로 생각나는 말들을 만들어 내며 이야기를 엮어가던 나는 잘못해서 틀에서 머핀 하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그는 성큼성큼 빠르게 다가와서는 머핀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기 전에 한 손으로 그 둥그스레한 물체를 구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재빠르게 내 손목을 낚아채었다.


아니다. 차라리 내 손목을 붙들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손에 쥔 머핀을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이야- 너는 정말 여전하구나. 그 순발력 하고는!
정말 정말 정말 너는 여전히 너무-도 너구나.


어색한 것은 정말 싫다. 그 공기 자체가 싫다. 빽- 하고 소리 지르고 선 그 자리에 그대로 씽크홀을 하나 파서 그 길로 떨어져 죽어버려도 좋다. 사라지고 싶다. 손목에 점점 압력이 느껴졌다. 나는 붙잡힌 손목을 비틀어 풀어내고는 거기를 살짝 문지르는 척하면서 벌써 내 콧잔등 깨에 와 머무르는 그의 시선을 또 걷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나인데,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야. 나는 난데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주욱 나였는데.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주욱 머핀도 좋아하는데. 아침으로도 먹고 간식으로도 먹고,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고 좋아해.

 네가 만드는 머핀을 좋아했어. 지금도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네 머핀들이어서 나는 그 머핀들을 좋아해. 변하지 않고 나는 계속 그랬는데, 네 생각을 지겹도록 해도 하나도 지겨워지지 않았는데. 머핀을 만드는 너를 좋아해. 좋아한다고!!

왜 나는 너한테서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을까? 아무런 소식도 뭣도 없이. 이렇게 널 보러 다시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게.

 그런데 대체 왜 한참 만에 만난 오늘까지도 하필 넌 머핀을 구워주고 있는거냐구!


그는 나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가 끝으로 갈수록 말이 계속해서 빨라지더니 탄식 섞인 격앙된 어조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깨에 다다랐을 때 그의 음성은 약간 갈라졌다. 그의 툭 불거져 나온 울대가 예민하게 떨렸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 사실은 침을 꿀꺽 넘겨가며 꾸역꾸역 꿋꿋하게 머핀을 잘라 거기에 갑자기 마멀레이드를 바르고 있었다. 발라야 했다. 그거라도 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먹어봐.
그럼 하나도 안시고 너무 달지도 않고 정말 맛있어.


하면서도 도저히  얼굴을,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발라놓은 마멀레이드   스푼  덜어낸 마멀레이드를 얹고   위에  스푼을  얹고 있었다.


내 손에 쥔 나이프가 식탁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내 두 손을 붙들어 쥐었고 금방이라도 눈물방울들이 쏟아질 듯이 나를 바라보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더운 숨이 내 목덜미에 와닿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쉽게 계산도 나오지 않을 만큼 정말로 오랜만에 그의 팔에 둘러져 안겼다. 꼭 내 목덜미쯤에 와닿던 그의 숨은 변함없이 더웠다. 덥고 그리고 그의 냄새가 묻어났다.


나는 이제 결박당한 채로 그가 종용하는 사실을 고해야만 했다. 막다른 길에 와버리고 말았다.



나는...


입을 떼기까지 적어도 오분은 넘는 침묵이 감돌았을 것이다.


내가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던 건,... 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 바보야.
보고 싶었으면서 그럼 왜 나한테 안 왔어? 왜 그랬어? 대체 왜에?


그는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갈라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의 목 한가운데의 울대가 꿀럭꿀럭 거리며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그게 그의 목이 닿은 내 이마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팔을 둘러 그의 등을 안았다.

흐느끼기 시작한 그의 넓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의 몸통에서 울림이 퍼져 나왔다.


응. 내가 바보라서. 그래서 그랬어. 보고 싶어서 보고 나면 더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미안해ㅡ  미안.. 또 미안...


내게 안겨있던 그가 나를 테이블 쪽으로 조금 더 밀었다. 짧게 흔들- 하더니 가장자리에 놓여있던 마멀레이드 바른 머핀이 담긴 접시가 떨어졌다. 찐득한 마멀레이드 발라진 면은 그대로 바닥에 가 붙었다. 손을 뻗어 바닥 쪽으로 몸을 기울이려고 하던 찰나에 나는 공중으로 잠깐 들리듯이 테이블 위에 앉혀졌다. 그의 얼굴이 더운 숨을 뿜으며 내 얼굴 위를 덮었다.



나는 그때 이미 눈을 감아버린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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