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는 쓰겠는 일기성 토막글을 왜 브런치에는 못쓰겠는 걸까?
나는 왜 브런치와 블로그에 쓸 글들을 은연중에 나누게 된 것일까?
사실 오늘같이 피로가 극에 달한 날에는 짤막한 토막글을 일기 조로 올리고 랩톱을 끄고 싶은데도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강박이 아닐까 싶다. 나는 블로그를 브런치에 비해 조금 더 대중적이고 상업화도 가능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브런치는 뭔가 조금이라도 더 완성도 있는 글을 써야 하는 곳으로 인지하는 것 같다.
블로거들 중에서도 양질의 포스팅을 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짧은 글, 단 한 줄을 올리더라도 블로그라면 거부감이 들지 않았는데 브런치에는 대부분들 상대적으로 정제된 글들을 올린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정제된 글, 심지어 전문 작가들도 있고 브런치를 통해서 채택되면 출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니까 괜히 더 올리기 전에 심사숙고하게 되는 그런 기분이 든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진짜 속마음은 따로 비밀노트에 자유롭게 기록하고, 담임선생님이 확인하는 제출용 일기장에는 별도장 5개를 받아낼 용도의 일기를 쓰던 내 소녀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현타가 세게 왔다.
나는 이 짓을 30이 넘어서까지 하고 있구나...!
뭐든 아무나 안 끼워주고 못 들어오게 하는 곳은 왠지 좀 프리미엄을 장착하고 있는 "있어보이즘"을 주는 맛이 있다. 내게 브런치가 일종의 그런 "있어보이즘" 을 느끼게 하는 창구였다. 애초부터 '아, 그냥 브런치 뭐 그냥 어쩌다 보니 하게 된 건데 뭐 많이들 하던데'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더라면 블로그 따로 브런치 따로 무슨 따로국밥도 아니고 이런 식의 과도한 생각은 안 해도 되었을 것을. 역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가 보다.
어쩌면 아직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다 보니 더욱더 뭔가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런 첫 합격 당시의 멘트의 달콤함의 단물이 덜 빠진 상태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도 내심은 나는 나름 한 번 걸러진 선택받은 사용자라는 옹졸한 자존심을 세워보고 싶은 알량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실 그래서 더 이 어딘지 모르게 껄쩍지근 하게 '거시기한' 기분에서, 그 기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라는 플랫폼에 들어가면 파워블로거가 되고 싶은 욕망과 블로그로 패시브 인컴도 만들어 보고 싶은 상업적인 욕망이 꿈틀거린다. 여전히 내 블로그는 파리만 날리고 상업화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 하여, 브런치라는 곳에서는 조금 더 '순문학' 하듯이 뭔가 좀 더 완성도 있는 글을 쓰면서 고고함을 유지하고 싶은 그런 상반되는 욕망을 품는다. 결론은 둘 다 꽝이다. 결론은 아무튼 잘 쓰고 싶다는 것이다.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능력자들은 너무 많고 마음은 조급하다.
이것이 브린이로서 겪는 성장통이라면 이 시기를 슬기롭게 지내고 나면 한 뼘 더 성장해 있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자라나는 어린이가 편식하면 몸에 좋지 않듯이,
플랫폼들 구별하며 까탈 부리지 않고 열심히 써 나가자.
결국 이 한 줄을 쓰고 싶었던 것을 기어이 이렇게 엿가락 늘이듯이 늘였다.
브런치에도 너무 심적 부담 갖지 않고 더러는 짧은 한 두 문장만으로 된 글들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단 브런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나부터가 스스로 브런치에 오는 것이 편해질 수 있도록 관점을 조금 더 유연하게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