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댓글 따위 없는 곳, 브런치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댓글 문화이다. 일단, 댓글을 여타 블로그나 SNS만큼 많이씩 달고 댓글, 대댓글, 대대댓글 등을 활발히 주고받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물론 브런치 게시글에도 댓글들은 달린다. 다만 라이킷은 했을지언정 구태여 댓글을 남겨야 할 그런 필요성을 다른 곳들에 비해 사람들이 못 느끼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간혹 달리는 댓글들은 비(非) 브런치 사이트들에 물색없이 달리는 댓글들에 비해 조금 더 진지한 기분이 든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는 인터페이스를 추구하는 브런치이기에 일관된 단순함이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라이킷'과 같은 반응도 좋아요 누르거나 안 누르거나 양자택일형이고 댓글 역시 코멘트하거나 아예 안 하거나 양자택일형이다. 사용자들은 옵션이 많은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님을 이미 다양한 플랫폼들에서 저마다 다채롭게 경험했을 터이다.
적은 선택지는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의 기간을 줄여줌과 동시에 선택에 대한 확신도 함께 요구하는 것 같다. 줄이고 또 줄여서 딱 가장 본질적인 '그래서 할 건데 말건대?'만 남은 상황에서 그 중간이 없어진 것이다.
댓글의 기능은 무엇일까?
댓글을 언제 달고 싶어 질까? 댓글을 말 그대로 어떤 이미 존재하는 글에 '대해서', 거기에 '대고' 적는 글이다. 댓글이 댓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미 앞선 콘텐츠가 선재되어야 한다. 그 뒤, 그 콘텐츠를 읽은 혹은 감상한 사람이 콘텐츠의 소비 이후에 보이는 반응으로서 댓글이라는 또 다른 글을, 즉, 활자를 남기는 일이다.
나는 특히나 브런치에서 어떨 때 댓글들을 남겨왔는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너무 감동을 받아서 원작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단순히 라이킷만으로는 부족하여 한 줄 남겨서 내가 받은 공감을 조금 더 심화해서 표하기 위하여
감상을 혼자만 간직하기보다 원작자에게도 (물론 그는 '안물안궁' 이라 해도) 이야기하고 싶어서
뭔가 댓글로 축하나 격려나 위로 등을 남기고 싶어서
주로 이런 의도로 댓글을 남겨왔다. 나열하고 보니 결국 댓글을 남기는 것은 순전히 나의 욕구였다.
나는 위의 의도 혹은 이유로 남겼던 나의 댓글들이 원작자에게는, 혹은 그 댓글을 보게 될 다른 방문자들에게는 반드시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드시 필요치 않을 수도 있고 반드시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고 따라서 굳이 없어도 될 말일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댓글은 그럼에도 원작자를 가장 고무시켜줄 수 있는 동기부여제가 되기도 하지만 괜히 많은 상념에 젖어들게 하기도 한다. 댓글의 이 특성을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브런치 작가들은 댓글을 남기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한 것 같다. 어쩌면 이미 '한 번 걸러져서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일종의 자부심이 있어서일지 서로 '믿고 읽어주는' 그런 맛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함부로 마구 다는 댓글을 지양하는 플랫폼이어서 그럴까? 댓글을 달거나 안달 거나의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비밀 댓글 같은 것은 없다.
나는 화투를 칠 줄은 모르지만 낙장불입이라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다. 놀음판에서의 이 규칙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논리와도 닮아있다. 댓글 쓰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쓰거나 말거나 양자택일뿐인 선택지 가운데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댓글 작성 후 확인 버튼을 눌렀다면 게임 끝이다. 그래도 놀음판처럼 아주 게임 끝은 아닌 것이 정히 그러면 그 댓글을 삭제하는 길 뿐이다. 이거야 원, 이쯤 되고 보니 꽤 깐깐하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이 댓글창을 보고 있노라면 깔끔한데 그래서 엄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엄해서 다행이다.
다른 블로그의 댓글창들에서는 비밀 댓글을 뜻하는 자물쇠 모양 아이콘 같은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면 주인장과 댓글 작성자 사이에만 공유 가능한 프라이빗한 댓글이 생성된다. 그래서 수줍음 많이 타는 사람들이거나 그 작성자에게 그 작성자가 원했든 원치 않든, 청했든 청하지 않든 넌지시 '내가 당신을 배려해서 일부러 비밀 댓글로 이렇게 교양 있는 제가 당신에게 조용히 읍소드립니다. 이런 이런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러이러하게 하세요'라는 말을 하거나 어딘지 좀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댓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고 싶을 때 그 모든 가능성들을 원천 차단해주는 것.
이런 의미가 깃들여 있는 것 같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할 수 있는 말만 해라.
남보기에 그리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떳떳한 말만 하라는 뜻을 들여다보면 더 깊은 속뜻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말을 하기 전에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확실히 알아라.
이렇게 해야 그저 혼잣말로 간직할 수 있었을 말을 굳이 댓글까지 남겼다가 괜한 오해만 사거나 중의적인 표현이나 수동 공격적인 표현으로 인하여 서로 껄끄러움만 남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간 작가이든 비 출간 작가이든, 이미 전문지식을 갖춘 현업 전문가이든 아마추어이든 어쨌든 이 익스클루시브한 플랫폼에 한 자리 얻어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한 자존심들도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의 댓글 시스템을 택한 것은 '의도치 않게' 글로써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내다본 브런치의 해안이 아니었을까? 괜히 그런 선견지명에서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이번 글도 쓰고 보니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브런치 생활이지만 나의 그간의 행실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댓글을 쓰는 일에 조금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물안궁: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할말하않: 할 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
군더더기 옵션 없고 비밀도 없게 만들어 놓은 브런치 댓글을 쓸 때, 나는 위의 세 가지 포인트를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려고 하는 이 댓글이 상대에게 말해서 정말 유익할까? 그래도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의미를 가장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쓸 수 있을까? 할 말은 있어도 이게 지금 내가 그 할 말을 하는 것이 나만의 만족을 위함일까? 만일 할 말이 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끝까지 안 하고 정히 하고 싶다면 하룻밤 정도는 고민을 하고서 해야겠다.
브린이로서 내가 경험한 브런치의 댓글 문화는 정직하거나 단순하거나 이다.
이래서 자기 검열을 너무 많이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불안은 사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제대로 된 '코멘팅'과 '피드백'에 무지했는가를 마주하게 하는 촉매제였다. 어차피 좀 자신 없는 말은 별 생각 안 하고 비밀 댓글 기능 이용해서 적고 보자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왔던 내 그간의 온라인 댓글 인생에 브런치의 이런 접근은 경종을 울려주었다.
지나면 지날수록 브런치에서만큼은 단순 명료하고 간결한 화법으로 누가 읽더라도 떳떳한 피드백을 하는 연습을 해나가고 싶다. 꾸준히 글을 써나가는 연습을 하며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꾸준히 다양한 타인들의 글을 읽으며 영감을 받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에 못지않게 브린이로써 길러야 할 자세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비밀 댓글로 못하게 하는데 그럼 일단 적어놓고 정히 후회되면 그 댓글 삭제해버리지 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삭제만이 유일한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물리적으로 삭제했다 하더라도 그 기억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자기 자신은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차마 밤에 이불 킥을 날릴지언정, 삭제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 번 쓴 댓글은 낙장불입이다.
이게 좀 무섭기도 하지만 그 덕에 왠지 내가 조금 더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기를, 그런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다.
(소곤소곤)
추신: 혹시... 비밀댓글 기능 따로 있는데 나만 여태 모르고 있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