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욕망을 건드리며 농땡이 부리지 말라고 보내주는 리마인더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직관적이면서도 성취감 뿜뿜 올려주려고 라이킷 수의 10 단위 돌파를 기념하는 알람마저 보내주는 브런치씨. 그런 브런치씨에게 한술 더 뜬 친절한 서비스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리마인더 메시지이다.
한동안 뜸을 들이거나, 의욕을 잃거나, 글감이 떨어졌거나, 주눅이 들었거나 다양한 저마다의 이유와 사연으로 브런치에 글을 자주 못 올리게 되면 그들은 브런치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다.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얼핏 보면 짐짓 다정하기까지 한 이 메시지가 실은 집요한 독촉장 같은 역할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감정적 비약인 것일까? 게다가 '꾸준함'과 '재능'에 따옴표까지 붙여서 강조를 해 놓았다. 재능은 찰나의 영감으로 술술 일필휘지 써 내려가는 천재적 능력보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꾸준히 하나를 끝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지구력 같은 능력인가 보다. 브런치는 꾸준함이라는 구체적인 단어로 이유야 어쨌건 쓰기를 안/못하고 있는 작가들의 가장 깊숙한 심연을 콕콕 찌른다. 마치 네가 오늘까지 그 모양인 것은 네게 꾸준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뼈 때려주기 위하여 고르고 고른 문장 같았다.
아이야, 현실을 직시하렴. 너 같은 애들은 재능 운운하기 전에 꾸준하게 쓰는 습관부터 길을 잘 들여놔야지. 어디서 작가병 겉멋만 들어서 '요즘은 글이 안 풀려요', '글 태기예요', '슬럼프가 왔어요' 하고 있니? 자, 아이야 이제 일어나 자세 고쳐 앉고 쓸 채비를 갖추렴.
이상하게도 나는 브런치씨의 리마인더 메시지가 이렇게 해석되었다. 이렇게 해석된다는 것은 내 안에 건드려진 자격지심의 민낯이 자기 입으로 스스로 이실직고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존에 이미 나와있는 타 글쓰기 플랫폼에 비해 브런치는 자기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여 브런치 북으로 엮어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해준다. 그게 아니라면 매거진 기능을 활용하여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한 주제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글들을 연재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런 글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그것을 활용하여 진짜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잘만 하면 말이다. 이 '잘'하기가 어려워 그렇지,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그럴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에서 아주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가능성이 주는 희망, 동기부여가 분명 있다. 그런 점에서 브런치씨의 리마인더에 나온 두 번째 문장은 그 희망까지도 건드려준다.
브런치에서 사용자들에게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글쓰기에 열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듣고 싶은 타이틀이 '작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작가들에게 그들이 무늬만 작가, 직함만 작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짜 책을 출간할 수 있는, 발탁될 수 있는 여지와 희망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꾸준하게 노력을 기울이면 그것이 재능으로 이어지며, 그 재능은 나중에는 책 출간의 기회로 이어진다는 논리이다. 이 논리는 브런치 사용자들의 욕망을 너무 담백하게 한두 문장으로 요약해서 리마인더 형식으로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작가의 욕망은 자기가 쓴 글을 독자들에게 읽히게 하는 것, 더 나아가서 활자를 통해 타인에게 감동을 전하는 것일 테다. 브런치는 이를 위해 플랫폼이라는 멍석을 깔아주었다. 멍석을 깔았으니 사당패는 와서 신명 나게 한 바탕 놀아줘야 하는데 아니 웬걸, 그 재인들과 광대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고?
브런치는 경단과 과일을 그득그득 쌓아 올린 회갑상을 받아놓고 두툼한 방석을 몇 개씩 괴어 앉아 사당패의 공연을 기다리는 천석꾼 부자 노인 같다는 느낌도 든다. 나는 잃을 것이 하나 없지만 그래도 내 잔칫상까지 차려놓고 판을 벌여놨는데 와서 성의는 보일 것을 촉구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직접 사용해보지는 않았다만 이탈리아어로 토마토를 뜻하는 뽀모도로 타이머 (Pomodoro Timer)가 꽤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25분 단위로 일을 끊어서 하면서 타이머가 돌아가는 그 시간 내에 반드시 그 일을 몰입해서 해 내고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새로운 25분 주기로 일을 시작하는 것. 그렇게 하면 효율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해달라고 신청해서 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면 일단 놀이판은 확보해 둔 상태이다. 그러니 이제 그 판에 계속 나가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인지, 그 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뽀모도로 타이머라도 하나 마련해서 꾸준히 글쓰기 한우물을 팔 수 있는 모종의 장치라도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농땡이는 예술가의 적이다.
분명 브런치는 이 간결한 리마인더 메시지에 친절해 보이는 말투를 포장지로 덮고서 농땡이 부리지 말고 어서 글을 쓰라는 확실한 의사전달을 해주고 있다. 이 기능 역시 다른 블로그 등의 플랫폼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일종의 '관리'라면 관리인 셈이다. 브런치는 그러고 보면 약간 작가 에이전시 같기도 하다. 우리 소속사에 등록된 아티스트들은 힘닿는 데까지 관리해 드리겠다는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다만 아티스트들이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다 주는 구조가 아니라 그런지 그 관리는 조금 느슨한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올해의 시작과 함께 브런치 생활도 시작했고 이미 한 번 이 리마인더 메시지를 받아 보았다. 그래도 기왕 쓰기로 했으면 손가락에 문제가 생기거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 한, 이 메시지를 자주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만은 든다. 괜히 토마토 모양 타이머 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브런치가 이런 메시지 보내줄 때를 대비해서 자기 관리는 스스로 한다는 생각으로. 내 나름의 꾸준함을 한 번 밀고 나가 볼 참이다.
내겐 다른 브런치 작가들보다, 혹은 기성작가 누구누구들보다 글 쓰는 재주가 없는가 보다 따위의 푸념을 늘어놓기 전에 먼저 꾸준함, 그 재능을 위한 기초 골격부터 세워놓아야겠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이게 꽤 유지하기 힘든 일일 것이라는 것만큼은 안 봐도 비디오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