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중2병은 아닙니다만 | 쓰는 일이 이토록 아플 줄이야
(커버 사진 출처: Pexels)
쓰는 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일도 마음먹고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고 하다 보니 자꾸만 꼬여간다. 애써 외면해보아도 그럴수록 더욱더 스크루바처럼 꼬여만가는 나의 글쓰기에 병이 들었다는 것만이 확실해졌다. 무엇이 제일 아프냐면, 바로 "쓰는 일만큼은 무조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동안은 지리멸렬한 직장생활만 벗어나면 다 잘 될 거라고, 나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영혼은 비로소 깨어나 저 높이 하늘로 훠이훠이 승천할 것이라고. 그렇게 현실의 괴로움을 대응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 같은 것으로 나는 내게 글쓰기에 만큼은, 밥벌이와는 상관없지만 내가 아직 숨겨놓고 있는 비밀스러운 재능이 있다는 식으로 존재하지 않은 허상을 붙드는 용도로 살아온 것에 지나지 않았나 싶다. 그 점이 그 무엇보다도 가장 괴로운 통증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이 병은, '현실 직시'라는 병인 걸까?
현실 직시를 한 것 자체는 좋다 이거다.
문제는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다시 말해 무엇을 기대했기에 이러한 현실 직시에 이르게 되었던 것일까? 내가 갈망했던 것은 '그럴듯한 무엇인가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였다. 검증되지 않는 능력에의 맹신. 아니 맹목적으로 매달려서라도 나의 무능을 가리고 싶은 몸부림을 쳐야만 손상된 자존심을 은폐할 수 있을 줄로 알았던 것이다.
지금 나와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말이 위로가 될는지 모르겠다.
아픈가? 나도 아프다.
열심히 하려는 나머지 힘을 내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다.
힘내려고 하기보다 힘을 빼버리자.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자.
힘내려고 하면 힘이 빠져버리기 쉽고, 잘하려고 하다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사람의 의욕을 한없이 꺾어버린다. 그리고 자괴감과 자책의 수렁에 빠져버리게 된다.
지금 내가 콘텐츠를 기획하는 구성 능력도 없고, 그걸 적극적으로 찾아서 발전시키고 싶지도 않은 초유의 사태를 직면하고 있는데 이 상황만으로도 벅차다. 처음에는 남들 하는 만큼만 쓰면서 작게 작게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이거야 원, 남들 하는 만큼보다도 안되고 있단 말이다. 게다가 남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또다시 거쳐야 하는 타협들이 직장 다니던 시절의 그것과도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싫음이 마그마처럼 용솟음친다. 도대체 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글을 쓰면서 뭘 기대를 했었던 것인지 글로 소득은 언감생심이고 글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유의미한 무엇인가를 생산해내는 크리에이터의 기본 자질마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너무나도 잘 인지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것들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간에 차이가 너무 크다. 게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과연 이야깃거리나 되었나 싶고, 이제와서는 그 이야기가 있기는 했었나 싶고 도대체 이토록이나 콘텐츠가 빈곤한 내가 무얼 쓰겠네 어쩌네 했던 것이 과연 올바르고 타당한 일인가 라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번뇌가 들끓는다.
<퇴사가 쏘아 올린 글쓰기> 에피소드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할까 말까 하면 가급적 하자 주의에 입각해서 쓰고는 있다. 아무리 글쓰기가 고단해지기 시작했고 진전이 없고 나만의 아집에 딴딴하게 사로잡혀 꿈쩍도 안 하려는 나를 내가 잘 얼르고 달래서 계속 쓰게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다.
힘 빼고, 그냥 하기.
솔직히 정말 성에 안차는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자면 건덕지가 있어야 하는데 쥐뿔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그냥은 쓰기 싫고 잘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까 심술이 단단히 나 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면 또 모를까, 이제 조금씩 브런치 활동기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준거집단이 점점 커져감을 느낀다. 이래서 일을 '머리 커지기 전에', 즉 멋모를 때 추진해야 잡생각이 들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중2병처럼 과대해진 자기애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암만해도 내가 글쓰기라는 것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 최초의 갈망을 다분히 허영끼 있는 마음 위에 싹 틔워 이만큼 키워온 것이었나 그 생각만은 부인하려야 할 수가 없다.
그래도 확실히 그렇고 그런 중2병은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성장통이라고, 지나가고 말 슬럼프라고 믿고 싶다.
얼른 털고 일어나고 싶은데 그러자니 방법도 딱 한 가지뿐인 것만 같다.
그냥 계속 쓰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별로 눈에 드러나지 않겠지만 계속 그냥 덮어놓고 닥치고 써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이유는,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 이유는 내가 그것을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가장 좋아하기에 가장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기는 고통이라고 그렇게 밖에는 해석을 못하겠다.
아아- 너무너무 쓰리고 아프다.
이런 시기에 발목 잡혀서 쓰러지고 싶지 않다.
아니 아니 아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조금만 아파하고 다시 의연하게 일어나서 너무 많은 가치판단을 주입하지 말고 계속해서 밀고 나가보자. 꼭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어떤 완제품을 꼭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적 조건을 붙이지 말고 써보자. 노오오력도 접어두고 잘하는 욕망도 내려놓고 그냥 하자.
어떤 일에 대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도리어 사소한 일상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그 가운데 소홀함 없이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