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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May 24. 2022

구독자와 관심작가 사이

이제 겨우 구독자 100명을 넘겼습니다만

(커버 사진 출처: Pexels)







구독:  정기적으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


그렇다. 구독이라는 말에는 어떤 서비스를 그것도 '정기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 간의 약속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내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되고 나면 마치 맡겨둔 빚을 독촉하는 빚쟁이의 심정으로 응당 타인들이 나를 구독해야 한다는, 구독을 해 줘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생겨난다. 따지고 보면 정말로 이상한 논리이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게 자기 입장이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아전인수가 따로 없다.


브런치를 시작하고서 6개월이 살짝 못 되는 동안 구독자가 112명이 되었다.

사실 113명에서 최근 1명이 줄어들었다. 누굴까? 내가 알만한 사람일까? 괜히 쓸데없이 마음 쓰게 될까 싶어 살펴보지 않았다. 구독이란 것이 참 그렇다. 누군가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보고 이끌려서 내 글들을 정기적으로 보고 싶다는 일종의 결심이다. 그 결심을 누군가 철회하였다면,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어떤 부가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가가치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더욱더 구독을 해달라고 요청하기가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첫째로는 구독을 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또한 그 구독에 대한 대가로 나는 지속적으로 항상성을 가지고 양질의 무언가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구독은 의미 없는 클릭질 한 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고, 나는 서비스 제공자로서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로 나의 구독자들에게 다음의 것들 중 단 하나라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1. 유려한 문체에서 오는 읽는 즐거움
2. 유용한 정보전달
3. 재미
4. 의미






관심작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싶은? 흥미 유발자들


브런치에는 단순히 구독 말고도 관심작가라는 것이 있다.

구독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뭐랄까 한 두 편의 글들이 꽤 흥미로워서 관심작가로 설정해두고 종종 들르듯이 보겠다 싶을 때 사용하는 기능일까? 


나도 브런치를 갓 시작했을 정말 초창기에는 모두들 다 너무 유익한 글들을 써내는 것 같이 우러러보여서 많은 사람들을 관심작가로 지정했었다. 그러다가 구독으로 이어지기도 했었고 아니면 그 관심작가들의 특정한 브런치 북이나 매거진 등을 별도로 구독하면서 그들의 특정 콘텐츠에 대한 알림만을 받아보기도 했다. 항상 내가 관심을 가졌던 브런치 작가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구독자 수에 비해 월등히 더 많았다. 그러던 것이 내 구독자 수가 세 자리를 넘기게 되면서 처음으로 구독자수가 관심작가 수를 앞지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아주 근소한 차이인데 말이다.


단순한 찰나의 흥미에서 출발한 것이 지속적인 구독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첫째도 둘째도 콘텐츠이다.

요즘 최대의 화두가 바로 이것이다. 브런치용 글이 따로 있고 블로그용 글이 따로 있고 비밀 일기장용 글이 따로 있다면 내가 쓰는 글은, 내가 이곳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은 과연 플랫폼에 적합한 글인가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초심자의 행운 정도로 수월하게 시작하나 싶었는데 갈수록 쓰기에 대한 부담과 고뇌가 늘어간다. 이러다가 어느새 내게 다른 어떤 일들보다 즐거워했던 글쓰기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뭐랄까- 관심을 갈구하고 있는 한편 진짜로 관심을 끌만한 것을 양산해내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오는 자괴감 같은 것이다. 나는 과연 몇 명의 다른 브런치 작가들로부터 관심작가로 등록되어 있을까? 나의 글들은 그들에게 과연 어떤 관심을 유발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유의미한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


나만이 간직할 일기와 남에게 관심을 촉발하여 출간까지 이어질 수 있을법한 에세이의 차이는 유의미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가 나에게만 유효하다면 그것은 제아무리 고급지게 썼을지언정, 제아무리 만천하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도록 공개하여 썼을지언정 일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가 확장되어 타인의 삶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유의미한 글이 될 것이다. 상업적인 이로움, 정신적인 이로움 그게 무엇이 되었건 일단 어떤 이득을 주어야 한다. 


여기가 바로 내적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트렌드를 읽어내어 타인들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주는 글을 지속적으로 제작해 낸다면 그 글을 읽는 값어치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른바 '콘텐츠 시장'으로까지 진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요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요에 대한 공급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시장의 논리이다.


문제는, 구독자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내 글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끌어올려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이 듣고 싶고 읽고 싶고 궁금해하는 것들이 내 마음에 안 내킨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로 아무나 줘도 안 갖는 쓰레기일 뿐이었을까 이건 지나치게 감정적인 비약인 것일까? 유의미한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해놓고 또다시 직장을 다니면서 업무 중에 수도 없이 했던 현실과의 타협을 하면서 가슴속에는 불평불만만이 차곡차곡 쌓여가다가 번아웃이 오는 짓을 글쓰기의 영역에서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짜배기를 확보하는 일


아무리 1만 명이 훌쩍 넘는 다수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한들, 그 가운데서 진짜배기를 식별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배기들이 굳건히 지지자 세력으로 남아준다면 제작자로서 어떤 슬럼프를 빠지게 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신뢰를 가지고 그들은 기꺼이 기다려 줄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그들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게 나의 현주소를 설명해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진짜배기를 확보하려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서 진짜배기 콘텐츠를 제작해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진짜를 알아보는 진국들이 자기 발로 찾아들 것이기에.


갈수록 마음의 부담감과 초라한 능력 앞에서 겁만 늘어간다.



세상에 정말로 쉬운 것이 없다. 

브린이 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다. 





끝으로 이 기회를 빌어, 이 브린이의 누추한 글간에 와서 시간을 들여 글을 읽어주고 계시는 112분의 구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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