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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05. 2022

만두

아내와 일주일 만에 먹는 저녁, 이제 마지막 만두 한조각만 남겨뒀는데..





“말하자면...나는 외로울 시간이 필요해.” 아내가 말했다.


벌써 커피는 리필을 두 번 신청한 뒤였다. 각자 자기 앞에 놓인 머그잔을 감싸 쥔 채 흡사 맞선 자리에 나온 남녀처럼 혹은 아주 오래간 만에 보는 대학 동창들처럼.


나는 나의 아내라고 불리며 나와 결혼을 한, 이제 오는 여름이면 오년 째가 되는, 지금껏 나와 아침을 함께 맞이해 오던 이 여자와 이렇게 마주해 앉아있다. 일주일 만에 만난, 오년을 함께 살은 여자로부터 두 시간여 만에 들은 말이다. 일주일 전 돌연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돌아와서는 돌연 회사 앞 카페로 찾아온 내 아내라는 여자.


나는 장식용 방울들이 땡그랑 거리며 문이 열리는 이 카페의 출입문을 밀고 들어와 내가 결혼 첫 해 맞은 그녀의 생일에 선물한 연노랑 린넨 재킷에 못 보던 스카프를 매고 앉아있는 그녀를 찾았다.


“나 병아리 같지 않아?”

“응, 병아리 같으라고 샀어.”


쇼핑백을 열고 재킷을 입어본 그녀와 내가 나눈 첫 대화였다.


근 오 년을 보아왔던 그 노랑 솜털난 병아리 같았던 재킷이 선명한 코발트색 사선무늬가 들어간 실크 스카프가 둘러지며 완전하게 다른 옷이 되어버렸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내 여자에게서 내가 얼마쯤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되어버린 것 같음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처음 보는 거다?, 스카프” 나는 이렇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그 사이 새로 산거야? 누가 선물했어? 하고 물어보며 일주일의 공백을 메워 볼 심산이었다. 일주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유를 마시지 않고 샌드위치만 연달아 두 조각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을 때의 그 텁텁함과도 같았던 시간. 어쩌면 먼저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 돌아와 다시 먼저 연락을 해 온 아내의 전화는 이제 그 우유를 마시는 차례가 되었다 싶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장시간 자리를 비우게 해 놓고 겨우 꺼낸다는 말이 저는 외로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쎄 그럴 시간이 ‘필요했다’도 아닌 여적 현재형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지난 일곱 날 동안 사색의 결과물로 나온 말인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가 함께 살아 온 오 년 훨씬 이전부터 늘 자기 머리에 있었던 것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어  휴대폰에서는   없이 진동이 울려댄다.  시간만하고 자리를 비웠으나   시간이  시간으로 뛰어버릴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선뜻 일어나지지는 않는다. 이대로  호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그것이  불가능  것을 알게 하는 부장이란 작자가  찾아와 면전에서 명세서 종잇장을 뿌리건  책상 모니터를   쳐서 액정을 날리던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할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 어딜 다녀온 거니?” 입을 뗐다.


정말이지 여기에는 어떠한 비난조도 짜증도 섞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무던히 누르며 물었다.


“내가 시간을 너무 오래 잡고 있었지-” 그제야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 있다 정도는 메시지 한통이면 간단했을 텐데. 많이 바빴나...보구나.”


 “여기 커핀 여전하다. 리필... 눈치도 안주고.”


“이제 웬만큼 정리 된 거니?”


“집에 가 있을게. 그 부장한테는 내가 아파 누웠다고 해주라. 더 그럴듯한 거 있음 그래도 되고.”


“난 너무 갑자기 당신 없어져서 덕분에 당신이 당신 회사에는 병가내고 친구한테도 출장이라고 했고 근데 장모님한테는 말 안하고 없어진 것 까지 알게 되었네. 그래도 나만 바보된 거 아니라 다행이더라.”



“......엄만... 끝까지 몰랐으면 했어.”



여기까지였다.


처음 테이블 찾아 앉아서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다른 말을 했다. 질문과 대답은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도 먼저 대화를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서로의 생각을 읽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체념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말하자면 그렇게도 혼자 있고 싶은가보군.”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니고... 정말 나 그럴 시간이 필요해. 가라앉아야만 할 것 같아. 그렇다고 나 지금 붕 떠있냐면 그런 것도 아냐. 그치만 어쩔 수가 없어. 도저히, 내가 나를 어쩔 수가 없어. 파고들 구석이 필요해. 뚫고 나오는 거 말고 나 뚫고 들어가는 게 필요해. 나 그래야겠어.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 되겠어.”


꼭 여기까지를 그녀는 동일한 템포로 어딘지 쫓기는 듯 다급하게도 단어들을 불안정하게 내뱉었다.  


순간 내 안에서 위태롭게 눌려있던 것이 마개를 뚫고 올라왔다. 신경을 제압할 힘도 그 건조한 어투의 고백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비난하지 않겠다고 한 결심도 함께 무너졌다.


 “혼자 있는 게 외로운 거 아닌가? 그만큼 있고도 더 필요하니? 뭐가 그렇게 괴로운 거지? 나는, 우리는 뭐였지? 멋대로 사라지고 멋대로 나타나서는 멋대로 선언하는 거에 대고 나는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어디서부터 무얼 어디까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거니?”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과격하게 양 손을 들었다 놓으면서 까지 나는 그 순간 자제력을 잃고야 말았다. 안타깝게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음을 조금 전 그 문장을 뱉어냄과 동시에 알았다.


“......미안해.” 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내의 예의 그 건조한 목소리가 산호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조금의 동요도 조금의 여지도 없는 그 한 마디를 내어 놓았다. 커피는 머그잔에 삼분의 일 가량이 남은 상태였다. 아내가 머그잔을 감싼 양 손을 풀었다. 그녀가 마시던 잔 가장자리 한 부분에 립스틱 자국이 옅게 찍혀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다시 고쳐 바를 생각은 하지 않는 듯 했다. 아내는 옆 자리에 놓인 핸드백을 들고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쇠골이 툭 불거져 튀어나온 아내의 목 언저리에 드리워 맨 스카프 한 쪽이 살그머니 흘러내렸다. 파스텔 연노랑의 부드러운 린넨 위로 그 서늘한 코발트블루의 무늬는 병아리를 삼키는 파도와도 같았다. 혹은 원래 내 것이었던 내 여자의 목에 둘러져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하나의 새로운 판별 표식 같기도 했다. 또 그보다도 혹은 지난 일주일의 고역 같은 부재를 깨고 등장한 여자가 하기에는 너무 선명한 그 색깔과 무늬가 내 깊은 곳에 꾸물거리는 무언가를 건들이고 지나가는 화려한 불쾌함의 다른 모습 같았다.


그녀는 흘러내린 그 스카프의 한 쪽 끝을 사뿐히 집어서 반대쪽으로 넘기며 일어선다. 다시 한 번 더 그녀는 집에 가 있겠다고 한다. 굳이 나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그 순간 정확히 어떤 얼굴이었는지 자세히 볼 수 없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녀는 짙은 파랑이 줄 수 있는 그 모든 차가움을 목에 감은 채 그 자체로 매우 엄격하고 절제된 듯 진지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앉았던 의자를 집어넣고 섰을 무렵이었다.


나는 급기야 이렇게 묻고 만다.


“그럼 우리 이제... 헤어지니?”


차라리 여기 이 질문에 그녀가 아무 대답이 없었다거나 망설이듯 조금의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면 무언가 달라질 수 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 그러했듯 이번에도 그 수분을 머금은 입술을 조심조심 움직여 건조한 소리를 만들어내었다.


시선은 비스듬히 내린 채로 짐짓 낭랑하게도.


 “미안해...”   




 


나는 다시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깍듯이 목례하며 최대한 우렁차게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했다. 이로부터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연이어 이메일 보낸 것 확인 부탁한다, 어디 어디에서 전화가 몇 통 왔더라, 누가 방문을 언제 할 거란다 등등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전달 사항을 전해 들으며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사이 부장이 보자고 하더라는 심부름을 온 사원의 소리가 뒷덜미를 쳤다. 내가 아내가 많이 아파서 부득이 그리 되었습니다 하면 그는 또 전화기는 뒀다 뭐하냐 하고 한 두어 번 버럭 거리다가 인신공격에 준하는 언설들을 내뱉고는 그만 나가보라고 할 것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제 그런 종류의 코멘트를 듣는 것에는 완전하게 적응되었기 때문이다. 하등 마음 상할 일도 없는 것이다. 혹시나 그래, 아내가 어느 병원에 뭣 땜에 하고 확인하려 들 것을 대비하여 의사 친구 녀석에게 여차하면 에스오에스를 칠 작정도 하고 있기는 했었다.


다행히 부장은 그렇게까지 치밀하지는 못했다. 이것 역시 내 예상을 빗나가지는 않았다.   







정말이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일주일. 일주일 만에 만나서는 한다는 얘기가 한 쪽은 외로울 시간이 필요하더라는 선언이었고 다른 한 쪽은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하느냐는 퍽도 없어 보이는 질문이었다. 거기에다가 미안해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두 다 아니었다.


내 병아리를 휘감고 무어라 사주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 시퍼런 천 조각은 정말로 아니었다. 그 녀석이 내 아내를 조종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생겨난지도 모르는 그 맨들거리는 표면이 발하는 빛과 시퍼런 색감이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 아내를 완전히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그때 그것을 벗겨내고 싶었다. 모든 것들이 하나 같이 완전하게 미스매치였다. 나는 정말로 그러한 것들을 그러한 식대로 흘러가도록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초인종을 누르면 그녀는 예의 그 건조한 음성으로 '누구세요-' 할 것이다.

나는 그 건조함을 사랑한다. 그 건조한 여자 옆에 있으면 나도 같이 메말라가기는커녕 오히려 그 여자에게 물줄기 뿌려주는 마음씨 좋은 정원사이고 싶었다. 그 여자가 건조했기에 나는 물을 줄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이었으므로, 그녀가 언제고 푸석푸석 윤기를 잃은 채로 있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물주전자를 기울여 졸졸졸 하고 텃밭에 영글기 시작한 방울토마토들에게 수분을 공급하듯이... 나는 정말로 그러한 삶을 살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녀가 먼저 퇴근하여 집에 있을 때 내가 귀가한다면 정말로 인터폰 저쪽 너머에서 '누구세요-' 했다. '누구세요?' 하고 끝을 올리는 법은 없었다. 언제나 일직선으로 '누구세요-' 하고 그 한결같은 톤으로 인터폰 이쪽의 사람에게 물어왔다. 이것은 그녀만의 물음 어투이다. 경쾌하지 않았지만 따라서 경박스럽지 않았다. 나는 그 모노톤에 이미 충분히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의 그 '누구세요-'를 들었다. 초인종을 눌렀고 그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녀는 아까 전의 말대로 집에 와 있었다.


“응, 나 왔어-” 했다.


이것도 언제나 처럼이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은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자그마한 부분이다.

나는 이 일상을 내가 내 병아리 같은 그녀에게서 꼭 같이 느끼듯 사랑한다. 해서 나는 비디오폰으로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얼굴을 확인하면 되는 편리한 기능으로 인하여 그녀는 어쩌면 적어도 얼굴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초인종을 누를 때만은 굳이 '누구세요-'해주지 않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저녁 8시를 바라보는 시각. 오늘은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나는 퇴근을 하고 방향이 같은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이 앞 삼거리쯤에서 내려 걸어 들어왔다. 회사에서 집까지 차로 20분 걸리는데 오늘따라 길이 어찌나 밀리던지. 문을 열어주면서 내 서류가방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는 그녀는 내 아내이다. 그리고 또 건조하게 나지막하게 “재킷-” 한다. 나는 재킷을 벗고 신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현관을 넘는다. 이내 따라와 재킷을 받아서 옷걸이를 끼우고 행거에 걸어두는 내 아내이다. 표정의 특별한 동요도 손끝의 어떠한 낯설음도 감지되지 않은 내 아내의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이런 것 쯤 내가 할 수 있다니깐. 당신은 늘-”


“저녁 안 먹었지?”


“당신은 뭐 좀 먹었니?”


“... 같이 먹을래?”  


이미 찜 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만두가 다 쪄졌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장모님이 종종 빚어다 주시는 손 만두를 좋아한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크기에 직접 밀대 밀어 탄력 있게 빚어진 피에 다진 쇠고기와 파와 표고와 갖은 양념으로 알맞게 간을 맞춘 소를 넣고 야무지게 감싸서 한쪽 끝으로 동여 맨 듯한 그 만두. 음식 솜씨 없기로 유명했던 나의 어머니에게서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그러한 모양과 그러한 맛을 지닌 만두였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부부가 8시를 넘긴 시각에 먹는 늦은 저녁거리로 손 만두는 나쁘지 않다.


사실 아내가 피로해 보이는 기색이 있었으므로 나는 함께 파스타를 삶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볼 계획을 다른 날 저녁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면이 삶기는 시간 사이, 소스를 끓이는 시간 사이, 샐러드용 채소를 버무려내는 그 막간과 파스타를 먹는 날이면 마치 코스처럼 후식으로 항상 티라미수를 준비하곤 하는 아내가 요리가 되는 동안 한쪽 옆에서 거기 넣을 커피를 내리는 시간 사이.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종종 그 시간 사이 주방의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입고 있던 앞치마를 펴고 짧지만 스릴있게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가스렌지에 올려둔 냄비에는 면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고 소스가 만들어내는 맛있는 향기와 턱 높은 테이블 위에 펼쳐둔 순면 앞치마의 촉감이 둔부에 닿을 때의 부드러움과 그 막간을 위해 다소 성급하게 이루어지는 행위로 인한 다소 불편한 자세까지 모두 그 순간을 생생하게 만들었다.






찜기의 뚜껑을 걷어내자 화악- 하고 김이 몰려나왔다. 만두는 촉촉하게 표면에 수분을 머금은 채 알맞게 익어있었다. 기다란 대나무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만두에 흠집 가지 않게 집어 들어 접시로 옮기는 아내의 동작을 흘끗 하고 훔쳐보았다. 나는 가끔 내 아내의 움직임을 훔쳐본다. 간혹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무 일 하지 않고 앉아 쳐다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그녀가 불쾌함을 느끼거나 나를 한심한 인간으로 생각할 소산이 크기에 이렇게 가끔씩 짬이 날 때 훔쳐보는 쪽을 택했다. 또한 이편이 훨씬 더 재미나다.  


우리는 식사를 시작한다. 간장에 실파를 송송 다져넣고 고춧가루도 반 큰술 넣고 설탕도 조금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점 집어 들고 후후 불고 속이 터지지 않게 고도의 집중력과 심력을 동원하여 젓가락을 쥔 손가락 끝에 적당한 힘을 주어야 한다. 한 쪽 귀퉁이를 종지에 살짝 담갔다가 곧 덜어내어 곧바로 입으로 가져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테이블에는 양념장이 뚝뚝 떨어질 테고 이미 손끝의 집중력은 흐트러져서 집어든 만두를 놓치게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주방의 턱 높은 테이블에 맞추어 주문했던 키 큰 의자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만두를 먹는다. 그 사이 들리는 소리라고는 젓가락을 움직이는 소리와 젓가락 끝부분이 종지 가장자리에 와 닿는 가벼운 소리, 물 컵을 들었다 놓는 소리 그리고 먹기에 열중하는 아무 소리 안 나는 것 같은 그런 소리. 졸깃하게 반죽된 피가 알맞게 익어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서 화알짝 하고 온기를 내뿜으며 속이 미어져 나온다. 다진 고기의 맛이 텁텁하지 않게 조금 찍은 양념장의 매콤 달콤함과 어우러져 미각을 충족시켜준다.


손대면 그대로 서걱서걱 철컥철컥 부석부석하다가 이내 바스라져 버릴 것 같은 수분감을 잃은 분위기를 지금 우리는 그와 완전하게 대조되는 만두를 먹으며 희석해보고자 실은 우리는 이다지도 무던하게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느끼는 만큼 그녀 또한 같을 것이다.


각자 앞에 놓인 접시 위에 마지막 한 점의 만두가 남았다. 이 만두를 다 먹고 나면 우리는 침묵의 연장전에 돌입하여 묵묵히 접시를 치우고 테이블을 훔치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식기에 묻은 물기를 마른 행주로 닦고 싱크대 선반에 차곡차곡 놓아둘 것이다. 그러고 우리는 제대로 대화를 시도해보지도 못한 채 각자 따로따로 그러나 같은 방 같은 침대로 기어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오늘 밤 얼굴을 마주하고 잠들까 아니면 등을 마주하고 잠들까. 그리고 해결을 보지 못한 채로 무기력한 내일을 맞이하고 숨 막히는 침묵은 하루치를 더 연장하게 될까.


되도록 마지막 한 개 남은 만두는 천천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삼분의 일 정도를 베어 문다. 아내의 입 모양의 곡선 모양으로 만두가 잘라진다. 나는 또 마주앉아 그것을 새치름하게 구경한다. 접시가 비워지고 있다. 이 따끈하고 촉촉한 것들로 배를 채우고 다시 마주앉던 등지고 앉던 서던 하여 어떻게든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젓가락을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먹기는 끝이 났다. 이 따뜻하고 촉촉하고 고소하고 짭짜름하고 매콤하고 쫄깃하고 말랑하고 찰진 음식을 입 속에 집어넣는 것을 핑계로 우리는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입 밖으로 무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됨을 보장받았다.


우리는 서로 꺼내놓음을 대신하여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채워 넣으며 속의 것을 눌러 담고 있어왔던 것일까. 그  담겨짐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일단은 여기까지 끝.)



아주 오래 전, 대학생 시절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낼 때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바탕으로 적어둔 습작을 옛날에 만들었던 블로그에 올리곤 했엇는데, 이번 기회에 브런치에 오픈해봅니다. 그때는 직장생활도 하기 전이었고 결혼이라는 것도 그저 남의 이야기 쯤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왜 하필 "남자 화자"를 생각해 내게 되었는지 지금에 와서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당시 혼자있고싶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 성향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주 많이 사로잡혀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있고 싶어서 잠적했다가 온 주제에 아직 더 "외로울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타인의 입장은 어떨까가 궁금해졌던 것 같습니다.

업로드를 하기 전 조금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서툴어도 몰라도 그냥 쓸거라며 두문불출 끄적여내려가던 그때의 그 어린 감성을 지금의 제가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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