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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06. 2022

여자

달리는 지하철 안, 그여자는 누구였을까?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여자라는 성별을 부여받아 지금까지 살고 있다.

태어난 이래로 지금껏 어떻든 살아졌으며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살아내야만 한다. 언제까지일지  마감 기한을   없이 덜컥 여인으로서의 생이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아마도 산부인과 의사가 나를 아기집에서 꺼내어 탯줄을 자르면서 모체와의 일체성을 끊어버리고 다만  하복부에 동그랗게 그랬던 흔적만을 남겼을 , 처음 바깥 공기가 코에 들어가서 울음을 터뜨릴 , 나는 이미 감지하고 있었을까. 나는 여자사람으로 분류되어 여자라는 타이틀을 일평생 가지고 살아갈 것에 대하여.  여자되기 라는 생물학적, 사회적 역할을 생과 함께 얻은  죽고   까지 그녀는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다가 여자로서 죽었으며 여기에 잠들어있다 라고 끝까지 정의될 것에 대하여.

 

 의사는  탯줄을 잘라가면서  다리 사이의 갈라진 부분을 보며 '역시,  아이는 내가 진찰했던 것과 틀림 없이 여자아이가 맞았다.' 하고. 빨갛게 핏물이 가시지 않은 나를 적당히 안아들어올려 보여주며  엄마라는 여인에게   명의 여인이 태어남을 알렸겠지. '축하합니다. 공주님이네요-'  같은 말로.  여자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머리카락이 뺨에 가닥 가닥 들러붙은 형편없이 초췌한 젖은 얼굴로 나를 받아 안았을 것이다. '안녕, 내가  엄마야. 너도 이다음에 엄마가 되려면 이렇게 아파서 아기를 낳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많이 멀었으니까. 환영해 아가야.'

 당시  여자가 정말로 저렇게 말했을지,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언젠가 내가 겪을지도 모를 산고를 염려해 주었을지, 그렇게 여자의 생을 부여받아 세상에 나온   명의 작은 여자를 보며  여자는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내가 그렇게 "빼도 박도 못하게" 여자이기 때문일까?

종의 분류상 여성에 속하는 육체를 가지고, 상대적으로 가늘고 부드러운 여성(女聲)을 내고, 스타킹을 신고 브래지어를 입고, 머리는 기르는 것이 짧게 자르는 것 보다 더 자연스럽고, 반드시 남자라는 반대편 성(性)을 가진 이를 만나서 또 그 태에 한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이 나오면 다시 여성이든 남성이든을 어떻든 부지런히 부여하여 일평생 하나의 선택된 성에 맞게 살도록 양육하는 그런 자. 여자라는 자.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아마도 그때문일 확률이 꽤 높은 것으로 추정되기에, 나는 여자가 좋다. 여자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여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제 막 강보에 쌓여 엄마 품에서 배냇짓을 하는 아기이든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유아이든 젖가슴 몽울이 지기 시작한 소녀이든 아래로 내리깐 눈매에 달린 속눈썹으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아가씨이든 옆구리 살이 접히기 시작한 중년의 부인이든 비쩍 쪼글아붙은 주름진 살갗을 한 노인이든 그 연령과 모습과 지위에 관계없이 시선이 머문다. 그렇게 여자를 한 명 한 명 바라보면서 이 여자는, 저 여자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무얼 좋아할까 어디를 가는 걸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참으로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런 내가, 바로 이 나라는 여자가 '그 여자'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이른 봄 지하철 안에서 처음 보고 난 뒤 부터 였다. 처음에는 그저 내 맞은 편에 앉아서 자연히 눈이 갔고 미미하게 덜커덩거리는 차체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앞뒤로 약동하는 그 여자의 어깨가 자못 앙증스러워 눈이 한 번 더 갔고 급기야 다음 역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에 섞인 한 나이든 여자가 내 앞에 서기에 자리를 양보하고서 그 여자 앞에 가 서버리고 난 뒤 한 번 더 눈이 갔다. 그때에는 아주 오랫동안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관찰을 빙자하여 나는 그 여자를 훔쳐보았다. 위에서 내려본 여자의 이마는 정 가운데 부분은 판판했으나 전체적으로 둥근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 떨어지는 선과 시선을 내리깔고 무릎위에 올려놓은 책을 읽는 모습에서 얌전하게 자리하고 있는 가지런한 속눈썹 숲을 구경하였다. 속눈썹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있었다. 이를테면 속눈썹 영양제라거나 마스카라라거나 혹은 인조속눈썹 같이 여자들이 자기 속눈썹일 길어보이거나 아이라인 그리는 것을 생략한 날 종종 눈속임을 위해 바르는 하나의 장치같은 그러한 덧붙임이 전혀 없었다. 그 부드러운 숲을 손가락 끝으로 가만 건드려보면 내 얼굴까지 어떤 향기가 피어올라 올 것 같았다. 그러한 관찰의 행위는 그녀가 자기 정수리 위로 계속 내려오고 있던 내 시선을 의식하고 내 쪽을 올려다 볼 때 까지 계속되었다. 그녀가 턱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시선을 채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 그냥 바로 눈 앞의 창문을 응시했다. 창문에 반사된 그 여자의 앉은 뒷모습, 그 동그란 뒤통수는 차체의 흔들림에 따라 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창문에 선명하게 찍힌 내 모습을 바라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 까지 앞의 여자를 내려다 본 눈. 그 눈으로 이제는 내 자신이라는 여자를 바라다보는 것이다. 두 여자는 너무나 달랐다고 내 눈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 창문을 응시하였다. 그러면서 사실은 창문에 비친 나를 꿰뚫듯 보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다시 시선을 내려 아래를 봤을 때, 어깨가 작은 그 여자는 벌써 내리고 없었다. 바로 앞의 여자가 일어나 내리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나는 심취하여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가 내리고 없는  자리에는 이내  다른 여자로 대체되었다. 그러다가  ,   하고 지하철 문이 열리며 대체된  여자도 내려 없어지고 어떤 남자가 앉았다. 남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기이하면서도 매우 확고한 기분을 느꼈다. 남자에게서는 조금 전까지  시선을 붙잡아두고 있던 여자들에게와는 다르게 긍정적인 관심을 유발하는  어떤 종류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 남자의 이마는  전의 여자의 그것과는 달리 둥글지 못하고 각이  있었다. 남자의 모공이 넓은 피부와 굵은 눈썹과 짧은 속눈썹, 그리고  다문 입술에서 나는 무엇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남자가 아름답지 않은걸까? 나는 순간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생전 처음보는 남자를 앞에 놓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손에  서류가방을 열어 손바닥 크기의 문고판 소설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였다.

  분을  달린  나는 잊고 있었던  가지 일을 기억해내었다.



 


나는 그러고보니 어떤 남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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