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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04. 2022

뻔뻔한 이웃

무려 2013년도에 써두고 묻어둔 초경량 단편 습작




언제까지고 열리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그 집 대문이 열렸다.


굳게 잠긴 대문과 무성한 담쟁이 덩쿨이 그 집 담벼락서부터 빙 둘러 바깥세상과의 철저한 단절을 낳은 듯 했다.

그러던 그 집에 주황색 칠을 한 오래된 나무 대문이 열리고 왠 커다란 트럭이 한 대 들어가 있었다. '기회는 이 때 뿐이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 때가 아니면 도저히 그 안을 들여다 볼 기회가 또 없을 것 같아서 빼꼼히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방궁 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아름드리 나무들과 자그마한 연못도 있고, 게다가 비단 잉어도 몇 마리 뛰노는 정원이 있기를 예상했으나. 그 모든 것도 어쩌면 나만의 클리셰 같은 것이었는지도.


정말로 그냥 무턱대고 너무나 무성했다. 잡풀로 무성하고 손 쓰지 않은 나뭇입들이 보기 싫게 삐져나온 모양새가 난잡스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대신 매끈하게 잘 빠진 검정색 개 한마리가 트럭 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집의 사람들도 저 맨들맨들 윤기나는 검은 개처럼 어떤 매끈한 빛깔이 돌고 있을까?'

좀처럼 그 안에 사람이 사는 지가 궁금했던 나는 보다 더 고개를 안 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 모양새를 지나가는 사람이 봤다면 꽤나 웃었을 것이다.


내가 이 동네에서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대체 그런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있을까?

처음에는 '과연 거기에 사람이 살까' 에서 출발한 의문은 이제 이렇게 옮겨갔었더랬다.




몇주 전의 일이다.

이상한 이웃이 사는 동네에 나는 왜 오게 되었을까?


그 집의 오른쪽 담장의 작은 문이 열리며 한 젊은 남자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항시 그토록 굳게 잡겨있는 그 집에서 살아있는 한 명의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본 첫 순간이었다. 젊다 못해 앳된 남자였다. 이 동네에서는 보기 드물게 말쑥한 청년이었다. 한 스무살... 스물 둘은 되었을까.. 많이 되어봤자-

그는 깔끔한 셔츠와 바지를 입고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로 외출을 나가는 듯 해 보였다. 그 젊은이에게서 부유한 이미지를 느꼈다. 혹은 꽤 프로페셔널하게 연출할 줄 아는 '세련됨' 같은  느낌도 신선했다.


설마 저 크고 음습한 집체에서 그 남자 혼자 사는 것일까?

그 집과 그 집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궁금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결코 누르지 못한채 나는 그 청년을 뒤따라가 보기로 하였다.


청년의 걸음걸이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차림새가 반듯 반듯하였다는 것.

깔끔했다는 것. 귀 밑으로 돌아 뒷목으로 이어지는 선이 아직 그가 어린 사내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날카롭지도 무르익지도 않은 싱싱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뒤를 밟으며 그의 뒤태를 감상했다. 계속해서 걷고 있었으므로 그의 둔부와 하체는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하얀색 바지를 입고 갈색 벨트를 두른 그의 골반 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힙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잰걸음으로 그를 거의 따라 붙였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그에게서는 향수 냄새가 났다. 센슈얼한 향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흔하게 맡을 수 있는 그런 대중적인 남자향수 냄새도 아니었다. 마치 꼭 그만을 위해 주문제작되었을 것 같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향.

청량감이 있으면서도 차가운 기는 없고 무겁거나 달콤하지도 않으면서 나무가 많은 수목원을 걷는 것 같은 향. 나는 그 향기를 기억해야한다는 일종의 강박 같은 것 마저 느끼며 계속해서 그의 뒤를 밟아나갔다.


모퉁이에 이르자 길은 두 갈래로 갈려 있었다. 직진이거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

그는 어디로 선택할까. 내가 지금껏 자기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확률은 반 반이다. 나는 직진하는 쪽을 택하여 먼저 그쪽으로 그를 처음으로 앞질러 걸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일직선으로 걷다가 문득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렇담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 골목으로 갔을까.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뒤일까.






고개를 돌리려다가 몸까지 반 쯤 돌리게 되었는데 그의 얼굴이 그 뒤에 바짝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고 그저 첨벙거리듯 다리의 힘을 잃었고 그는 나의 양 팔을 자기 팔로 지탱하며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하얀색 얼굴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리는, 얼마쯤은 재촉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고 그가 더는 나를 잡아주지 않아도 되었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할까.

무수한 단어들이 마구 생각나는데 딱 마땅한 것이 없어 어버버 거리는 사이에 하얀색 얼굴의 사내가 갸름한 턱 조금 위에 달린 연분홍 입술을 움직여 말을 건냈다.

목소리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그저 그렇게 평범한 그 또래 남자애들의 목소리였나보다. 사실 그 당시 무엇을 제대로 관찰한다는 것이 곤란할 만큼...

그 순간은 내게있어 너무나도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왜 여기로 가요?"


그가 물었다.

글쎄.. 내가 왜 여기로 왔을까, 그것은 사실은 너무 뒤를 밟아 온 것도 그렇고 내가 뒤를 쫓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그는 내가 생각한 쪽으로 갈 것인가, 그냥 관계없이 제 갈길을 갈 것인가를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었다.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리로... 갈 일이 있으니까요. 그러는 댁이야 말로 갑자기 사람 뒤에 그렇게 딱 붙어 서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얼마나 놀랐는데."


이제서야 옳게 뭐라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전 그가 철옹성 같은 그 저택에서 사립문을 열고 나올 때 부터 쫓아 갈 때 까지 느꼈던 관심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그렇게 나를 놀래킨 그가 원망스러웠다. 이런 것이 바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기분이라는 것일까? 사실 내가 먼저 따라가 놓고 이제와 상대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는... 그런 심리였을까?


그 사내는 정말 아무런 표정의 동요 없이 그렇다고 해서 내 동의를 구하거나 나를 배려하거나 하는 것도 없이 다시 한 번 그의 왼 손으로 내 팔뚝을 부여잡는 것이었다.







"아까까지 계속 따라왔으면서 갈림길에서 앞서가길래, 나도 한 번 따라와 봤어요. 누구를 따라가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그렇다면 이 자는 내가 의도적으로 저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고개 한 번 돌아보지 않고도 감지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뾰족구두를 신어 신발 소리가 났던 것도 아니고 뒤로 오는 사람 그림자가 질만한 시간대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이제는 오리발부터 내밀고 보자는 심사였다.

"누가 따라갔다고 그래요? 어쩌다.. 뭐.. 우연히.. 방향이 같으면 같은 길로 가다가 자기 갈 길 나오면 또 그리로 계속 가는거지"

지금 생각해도 나는 그때 그런 뻔뻔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따라오니까 살금 살금. 그러다가 한 번 흘깃거리고 앞서 갔잖아요."

"그래요, 그래 뭐 그랬다 칩시다. 그래서요 뭐요"

"나를 따라오던 사람이 다른데로 가길래 나도 반대로 한 번 따라가보고 싶어지잖아요."

"아니 글쎄, 누가 따라오던 사람이 딴데로 갔기로서니 본인은 왜 또 궂이 그걸 따라해 보고 싶냐고요. 차려입고 어디 갈 데도 있는 것 같은 양반이-"


거기서 왠 '양반이-'라는 말을 나는 왜 했을까. 그렇게 어린 남자에게 양반이라니.

이 남자는 자의식 과잉인건지 어딘지 좀 억지쓰는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거봐요. 따라온 거 맞잖아요. 내가 차려입었는지 아닌지 다 보고있었잖아요. 갈림길에서도 나 한 번 쳐다보고 간 거 맞죠?"

"이봐요, 뭐라구요? 아니 정말 이 사람 왜이러실까?"

"나도 따라와봤는데 왜 그쪽은 눈치도 못채고, 내가 계속 일부로 쿵. 쿵. 하면서 걸어와도 기척도 안하고. 그래서 신기해서. 잘 못듣는 불쌍한 사람인가 싶기도 해서요."

"뭐 잘 못듣는 불쌍한 사람? 이보세요.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대낮부터 이게 뭐하는 거에요?"


남자는 그제서야 내 팔뚝을 꽉 쥐고있던 자기 왼 손을 스르륵 풀었다. 그리고 반대 손을 쑥 내미는 것이었다.


"나는 이준수. 나무대문 집 살아요. 그쪽은 저 골목 끝 2층 집 사는 거 맞죠?"


그 집에서 누가 나오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내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어떻게 알아요?"

"맨날 우리집 앞 지나면서 흘긋 흘긋 까치발 세워서 담장 넘어도 쳐다보고 그랬잖아요."


그랬다. 그건 모두 맞는 말이었다.

"아 네..."

"그래서 나도 그쪽 귀가할 때 자전거 타고 따라가봤는데 거기 살더군요. 아무튼 나는 이준수인데 계속 악수 안받아줘요?"


퇴근길의 후드모자를 뒤집어 쓰고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이 자 였을지도.. 이 자 였나보다.

얼결에 손을  잡았다. 그는 갑자기 그 손을 꽉 그러잡더니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는 뒤에서 따라오지 말고 나 보면 이름 부르고, 인사하고, 옆에서 걸어요. 나도 그럴테니까."


여전히 그 말을 하면서도 남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가 하얀색 바지 위에 입고 있는 얇은 회색 체크무니의 담청색 반팔 셔츠가 그의 얼굴을 더 하얗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그길로 갔다. 그러다 뒤가 영 궁금하여 돌아보았다.


그는 그대로 있었다. 무표정으로. 한 손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눈이 부시는지 반대쪽 손으로는

이마를 가리고서.


"나는 최...최미영!"







거기까지 말하고 그 다음부터는 모른다. 어찌 되었는지.

나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만큼 맹렬한 기세로 달려 그 길가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정말 이상한 남자야-


숨을 고르면서 다시 걸음 속도를 늦추고 편의점에 들러 주스 같은 것을 한 병 사서 계산을 하고는 스탠딩 테이블로 갔다. 한 병 따서 마시니 긴장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편의점 문을 다시 열고 나와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러 가야지 했다.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뒤통수에 내리 꽂히는 것이었다.


"최미영씨, 쥬스 다 마셨으면 이제 어디가요?"


돌아보니 그 남자가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으며 나에게 묻는다.

무슨...홍길동인가봐-


그는 모든 이에게서 어떻든 대답을 받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시... 시내에 좀 볼 일이 있어가지고.."


그러자 그는 성큼 성큼 다가오더니 다 마신 요구르트 병을 편의점 앞 쓰레기통에 골인 시키고 내 팔목을 잡아 끌었다.


"나도 시내가는데. 그럼 최미영씨, 나는 이웃사는 이준수니까 옆에 나란히 서서 갑시다. "


벙 찐 얼굴로 그렇게 무심히 말하는 연분홍 입술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처럼 보지 말지 그럽니까. 나는 최미영씨를 오랫동안 봐왔다구요. 그쪽도 우리집 기웃기웃 여러 번 해 놓고 피차에 그러지 맙시다. 쨌든 관심 있었던 거잖아요. 최미영씨는 멋대가리 없이 크기만 한 우리집에, 나는 7시 반에 정확히 우리집 앞 지나가는 최미영씨 한테."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걸 타야해. 이 손을 뿌리치고 저 버스를 무조건 잡아 타야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계속 내 이름 세 자를 그 연분홍 입술을 벌리면서 연발한다.

나는 그 입술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모르겠고 그가 하는 어이 없는 말들에 그저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에게 잡힌 팔목이 살 아려오려던 참이었다. 그는 벙쪄서 잘도 나불거리는 그 입술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갑자기 입을 다물고 쳐다본다.

눈싸움이라도 할 기세인가.







갑자기 그는 그 연분홍색 입술을 내 입술에 붙였다.


                    1초,

                       2초,

                        3초...!


3초의 당혹감은 3주가 지난 지금에 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 3초가 막 3초 반을 지나 4초로 가려고 할 찰나에 나는 그를 떼어내듯 밀어냈다.

질끈 눈을 감고 "뭐야!" 하고 질러 볼 뿐.


이런 별 무슨 이런 날이 다 있을까, 그리고 뭐 이런 뻔뻔한 자가 다 있는지 나는 가방으로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칠 걸, 아니면 정강이라도 차고 올 걸. 온갖 생각을 했을 뿐 어딘지 모르게 분이 삭혀지지 않던 내게 당시 실제로 그럴만한 기력도 여력도 없이 그저 빨리 벗어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오늘은 날이 아니야.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점점 더 정류장으로 가까이 들어온 버스에 황급히 타고 교통카드를 찍으려는데 가방에 지갑이 어디 숨었는지 안보였다. 뒤이어 탄 사람이 "두 명이요" 하고 카드를 찍었다.


그리고는 처음 보았다. 그가 웃는 얼굴을. 씨익- 아무 계산 없이 웃더니 "이웃이니까-".


덜커덩 거리는 손잡이 중 하나를 낚아채듯 잡고 서서 더 이상 어떤 말도 걸지 못하게 음악이라도 들을까 하고 가방을 뒤지고 있던 차에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좀전에는... 실례됐다면 미안해요.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원하는가 싶어서-"


그리고 그 얼굴이 하얀 이준수씨는 눈빛으로 머쓱함을 전하면서 다시 눈을 감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버스는 이제 막 둘 째 정거장을 지나 시내로 진입해갔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그는 계속해서 흥얼흥얼 허밍으로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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