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해가 넘어갔다
해를 넘기는 일은
신년도 달력을 넘기는 일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환기를 시키려고 열어 둔
창 틈으로 들어와
줄곧 집세도 내지 않고
더부살이 중인
무당벌레가 한 마리 있다
어느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켜 놓은 램프 불을 보고
그 위를 후드득 날으는
새끼 손톱 절반 만한 동거자
혹은
동숙자
새벽이 기지개를 펴는 시간
무당벌레는 날개를 펴고
나는 책장을 펴는 시간
그 한 겨울의 밤의 시간
해를 넘긴 시간
이제 더는
서먹 할 것도
서운 할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아플 것도 없다
해도 넘어갔는데
달력도 한 장 스윽 뜯었는데
뭔 들 못 넘길까
버리지 못 할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그래 무당벌레 조차도
살겠다고 저렇게 날개짓을 하는데
못 살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