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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06. 2022

해 넘김 (詩)

자작시



해가 넘어갔다

해를 넘기는 일은

신년도 달력을 넘기는 일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환기를 시키려고 열어 둔

창 틈으로 들어와

줄곧 집세도 내지 않고

더부살이 중인

무당벌레가 한 마리 있다


어느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켜 놓은 램프 불을 보고

그 위를 후드득 날으는

새끼 손톱 절반 만한 동거자

혹은

동숙자


새벽이 기지개를 펴는 시간

무당벌레는 날개를 펴고

나는 책장을 펴는 시간

그 한 겨울의 밤의 시간

해를 넘긴 시간


이제 더는

서먹 할 것도

서운 할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아플 것도 없다


해도 넘어갔는데

달력도 한 장 스윽 뜯었는데

뭔 들 못 넘길까

버리지 못 할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그래 무당벌레 조차도

살겠다고 저렇게 날개짓을 하는데

못 살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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