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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06. 2022

백석의 시가 생각나는 날이면 (詩)

기관지염을 앓던 시절에 쓴 자작시 2



가을이다

기관지염이다

폐렴이 아닌게 어디야

분명 상냥한 여자선생님이

흉부사진 찍을 때는

상의 모두 벗어 주세요

그래서 모두 다 벗고

벌거숭이 맨가슴을 하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데

여자선생님은 어디로 갔는지

남자선생님이 들어와서는

가운도 주지 않고

이리로 와 서 보라고

그리고 팔은 옆에 손잡이에 두르고

그리고 머리 고무줄도 풀어주세요

해서는 머리도 풀어서

숨을 참았다가 다시 내쉬어 보세요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콜록 콜록 그러다가

다시 옷을 주워입고 나왔다

그렇게 가을을 맞이한다

검은 바탕에 가지런한 내 허파가

은색으로 빛난다

사실은 허파보다도

가슴이 아프다

기침을 많이 하여

가슴이 가쁘다

그런데 그냥 마냥 가슴이

더부룩하니

우풍 들 때 같은 성가신 쌀랑함

백석의 시집을 손에 쥐고서

그 시들을

만트라같이 읊고 싶다

하필 그 시들이 보고싶다

목구멍으로 손을 집어 넣어

내 약동하는 심장과

내 예민한 허파와

내 끈끈한 피와

그 안에 사는 나와

그 안에 사는 또 다른 나와

그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를

너까지

모두 쓰다듬고 싶다

헤집어 흐뜨리듯

만지고 싶다




한국처럼 환자의 성별을 고려해서 무슨 배려를 해주고 그런것 따위 없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방사선실에서 벌거벗은 상반신을 어찌하지 못한 채 어버버 하다가 흉부 엑스레이를 찍히는 일이 생긴다. 옷을 챙겨입고서도 나는 그날 내내 어버버 어버버 하다가 조금 서운했다가 또 조금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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