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지염을 앓던 시절에 쓴 자작시 2
가을이다
기관지염이다
폐렴이 아닌게 어디야
분명 상냥한 여자선생님이
흉부사진 찍을 때는
상의 모두 벗어 주세요
그래서 모두 다 벗고
벌거숭이 맨가슴을 하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데
여자선생님은 어디로 갔는지
남자선생님이 들어와서는
가운도 주지 않고
이리로 와 서 보라고
그리고 팔은 옆에 손잡이에 두르고
그리고 머리 고무줄도 풀어주세요
해서는 머리도 풀어서
숨을 참았다가 다시 내쉬어 보세요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콜록 콜록 그러다가
다시 옷을 주워입고 나왔다
그렇게 가을을 맞이한다
검은 바탕에 가지런한 내 허파가
은색으로 빛난다
사실은 허파보다도
가슴이 아프다
기침을 많이 하여
가슴이 가쁘다
그런데 그냥 마냥 가슴이
더부룩하니
우풍 들 때 같은 성가신 쌀랑함
백석의 시집을 손에 쥐고서
그 시들을
만트라같이 읊고 싶다
하필 그 시들이 보고싶다
목구멍으로 손을 집어 넣어
내 약동하는 심장과
내 예민한 허파와
내 끈끈한 피와
그 안에 사는 나와
그 안에 사는 또 다른 나와
또
그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를
너
너까지
모두 쓰다듬고 싶다
헤집어 흐뜨리듯
만지고 싶다
한국처럼 환자의 성별을 고려해서 무슨 배려를 해주고 그런것 따위 없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방사선실에서 벌거벗은 상반신을 어찌하지 못한 채 어버버 하다가 흉부 엑스레이를 찍히는 일이 생긴다. 옷을 챙겨입고서도 나는 그날 내내 어버버 어버버 하다가 조금 서운했다가 또 조금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