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불편러 입니다. 아 네, 비주류는 확실히 불편하네요.
The test of courage comes when we are in the minority.
The test of tolerance comes when we are in the majority.
——— Ralph W. Sockman
용기를 시험받는 것은 우리가 소수에 속할 때이다.
관용을 시험받는 것은 우리가 다수에 속할 때이다.
——— 랄프 W. 속먼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는 지리멸렬 이어지는 글로벌 대역병의 시국에 외국땅에서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퇴사를 감행했다.
올 한 해는 커다란 리스크를 떠안고 맞바꾼 자유시간을 살아내며 그 안에서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일을 할 차례이다.
그동안 먼 길을 빙빙 둘러 여기에 다다랐다. 다다른 이 지점에서 돌아보니 내가 삶에서 내렸던 크고 중요한 결정들의 교집합이 보였다.
그저 조금 달랐다.
메인스트림에서 조금조금씩 벗어나 있었다는 것이 다인데, 더러는 날보고 대담하네, 겁도 없네, 비이성적이네 어쩌고 하면서 한마디씩들을 첨언하였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은 패턴을 만들어낸다.
“다름”이라는 패턴.
주류에서 한 뼘 내지 반 뼘씩 벗어나거나 어긋나지는 패턴.
메이저 하지 못하고 마이너 한, 주류가 되지 못하고 비주류인, 나는 마이너리티 - 그 상대적 수적 열세에 처한 소수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이너가 되는 일은 절대 쿨하고 특별하지 않다.
적어도 내 삶에서의 ‘마이너 되기’는 그러했다.
되려 아주 많이 또 자주 자잘하게 불편했고, 불편하며, 하여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불편한 것들 투성이로 점철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불편하다 못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자의식 과잉의 상태가 지속된다. 자주 두렵고 자주 버겁고 자주 우울하다.
마이너 하게 사는 것은 남들 말처럼 그리 겁대가리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확히 그 반대이다. 매일 겁에 질려있다.
이렇게 매일 용기를 시험받는다.
눈치도 자주 본다.
어느 질문부터 먼저 던져야 할까?
a. 나는 대체 왜 이렇게 매번 비주류인가?
b.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한 게 많은가?
c. 나는 뭐가 되려고 이러나?
뭘 해도 늘 비주류라는 음계로 회귀하는 되돌이표 붙은 내 악보가 나는 불편했고, 지금도 불편하고 이 불편이 해소되지 않는 한 내내 불편할 예정이다.
위의 질문들이 때로는 a-b-c의 순서로, 때로는 b-c-a의 순서로 더러는 c-a-b 같은 순서로 뒤죽박죽 섞여서 나를 더욱더 불편하게 만든다.
하여 나는 도저히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 비 주류한 삶이 주는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나는 앞으로 이 글을 써 나갈 작정이다.
작정하고 써 나가기 전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프로 불편러인 내가, 불편해서 죄송한 것들 투성이인 내가 무려 비주류 마이너리티인 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가게 될 이 삶을 긍정한다는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걸 다 마칠 때쯤이면, 바라건대 나는 그토록 원하는 용기의 투구를 쓰고 이글거리는 의지로 완전무장하여 마이너 한 삶의 한가운데로 돌진하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