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소설 <창문 없는 방>

by Dichterin 여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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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생각보다 수월하였다. 창문이 없는 집을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것 같은 방 안의 환풍기는 성능이 좋았다. 적어도 화장실과 미닫이문으로 여닫는 부엌 안쪽 싱크대 주변에는 작게나마 통기용 창문이 각각 나 있었다. 시계만 있다면, 그 작은 창문들을 통해서라도 낮인지 밤인지 비가 내리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참 신기한 장소이기도 했다. 구조도 구조이거니와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여자를 안심하게 하였다.


여자는 곧잘 산책을 다니기도 했다.

산책은 가장 수수하게 영위할 수 있는 취미다.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으면 어느새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런 것은 별 재미랄 것도 없을 그런 만큼의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시간을 때운다던가, 꼭 운동을 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작정하고 마음을 놓고 걷고 또 걷다가 거기를 지나쳐 가지 않았더라면 여자는 조금 더 오래 산책을 즐길 수 있었을까?


그 사이 시간도 생활만큼이나 수월하게 흘러갔다. 여러 달이 소리 없이 지나갔고 계절들도 함께 다녀갔다. 그러다가 해가 넘어가고 말았다. 다시 또 나날들이 흐르고 나날들이 모여 여러 주들이 지나고 주들이 모여 달이 찼다.




여자는 또 치과에도 갔다. 오래도록 앓아오던 사랑니를 뽑기 위해서였다. 여자는 이미 과거에 두 개의 다른 사랑니를 뽑은 적이 있었다. 이 번까지 하면 모두 세 개를 뽑는 셈이고 이제 마지막 하나, 아직 잇몸에 3분의 1 가량이 파묻어 나오고 있는 것을 남기면 사랑니에 관한 한 죽을 때까지 신경 쓰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치과도 있고 성형외과도 있고 피부과도 있고 여러 가지 진료과목들을 보는 각기 다른 클리닉들이 모여있는 빌딩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 병원이 한 개 이상의 층을 사용할 때 연속해서 사용하지 않고 격 층으로 사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층과 3층을 사용하는 피부과와 2층만 사용하는 치과와 다시 4층과 6, 7층을 사용하는 성형외과는 5층을 건너뛰고 있었는데 5층에는 심전도 검사도 해 주고 간단한 방사선 사진도 찍는 내과병원이 있었다. 이 병원 건물은 여자가 살고 있는 창문 없는 집만큼이나 특이한 구조였다.


대기인원이 많은 붐비는 시간을 골라 갔던 여자는 딴생각에 잠겨있었다. 간호사가 자신의 차례임을 말하며 여자의 이름을 이제 세 번째쯤 불렀을 때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챙길 수 있었다. “네에, 여기요-“ 여자는 인상이 강한 간호사가 뾰루통해진 얼굴로 던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대답했다. 여자는 종종 자신의 이름을 잊곤 하였다.


조만간 뽑히고 나면 잇몸에 살이 차오르고, 어느 한때 그렇게 있었던 흔적조차 잊힐 사랑니처럼.

자기 이름을 잠시 잊고 살아가거나 혹은 그렇게 살아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여자는 느낀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알고 보면 스스로를 몹시도 잊고 싶어 하거나, 그보다 더, 아주 깡그리 잊어버려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온다는 것도 여자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