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을 앞둔 상주들

소설 <창문 없는 방>

by Dichterin 여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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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왜 연락이 안 되었던 거야. 그러고서 겨우 걸려온 전화가 네 번호로 누구 씨 아시는 분 맞나요 하는 왠 낯선 사람 목소리- “


“전화를 그동안 자주 꺼두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다신 안 볼 작정이었어?”


“계속 보면서 살 수도 없는 걸.”


“혹시… 집에서 연락이 갔었니?”


“그건 무슨…?”


“아.. 아내가 얼마 전에 휴대폰을 빌려 갔었어. 깜빡했어…. 지우는 걸.”



차라리 이 말만은 그날 남자는 하지 않았음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여자의 눈에 물기가 금방 서려버렸다.

“지우는 걸 잊었다니. 넌 언제나 아마추어구나. 좀 색다르게 말해 줄 순 없었어?”


남자는 헝클어진 머리칼 속으로 양손을 비벼 넣고 고개를 숙였다.



“걱정했어. 적어도 이 말은 네가 믿어줄까?”


“걱정 마. 믿을게.”


“누구한테 들키고 혼나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니야. 누구 때문도 아니야. 그냥… 있지, 사실 그날 본 당신 아기가 너무너무 예뻐서.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자려고 누웠을 때에도 자꾸만 자꾸만 생각날 만큼 예뻐서.”






거기까지 얘기하고서 수 십 분은 더 흐른 것 같은 시간의 체감을 두 사람은 느꼈다.

남자는 손을 여자의 머리 위에 놓더니 땀에 젖은 여자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 느낌을 절대로 절대로 좋아해서는 안 돼- 여자는 마음을 자르고 봉합했다.

그래도 이제는 마지막이니까.


“부드럽고 축축해. 가느다랗고 풍성해.” 남자가 중얼거렸다.


거기에 더는 넘어가서는 '안 돼- 안 돼- 안 돼-' 여자는 남자의 손을 걷어내며 말했다.

'잘못했으니까 우리는 지금 벌을 받아야 하는 시기이고 그에 맞는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절대로 우리는 우리라고 불릴 수 없고 우리가 될 수 없었어.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어겼으니까. 약속을 어기는 것은 나쁜 일이니까. 우린 잠깐 나쁜 일을 같이 한 거야- 그랬던 거야. 그러니 우리 평생 서로를 미워하며 살자-' 하고 언젠가 여자가 먼저 제안했었다.


아무리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려도 변하지 않으므로, 되돌릴 수도 없는 엎질러진 일이었으므로. 분명히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은 머리를 짓누르고 기어이 저질러 버린 사건이었기에 단순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해서 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없었던 것처럼 간단하게 되어버리는 일도 아니었다.


“아기는-“


“그 아기는… 자기가 잘 못 찾아온 것 알아차리고는 먼저 돌아갔나 봐. 그렇게 생각해.”


“꼭 그렇게 말해야겠니-“


“그 아기는 당신 아기처럼 예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아기였어.”


“우리 아기? 우리?”


“그래, 어쨌든 너랑 나의 아기였다고.”


“방금 우리라고 그랬어? 우리의 사이에서도 아기가 생길 수 있는 거였어? 정말로 그래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랬던 거야? 그렇게 간단히 ‘우리 아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거였어?”


둘 사이에 다시 말이 없어졌다.





“이미 아빠로 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엄마 사이에서 만든 아기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 그랬을 것 같아. 적어도 널 더 닮았으면.” 남자의 눈물이 콧방울에 걸려 잠시 머물다가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두 사람이 예쁘지 못해서 아기도 예쁘지 않았을 거야. 당신 아기는 참 예쁜데 그 아기는 그렇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쁜데…”


“미안해-“


“왜 미안하지?”


“내가 애매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부터 모두 다.”


“전혀…”


“내가 몹쓸 사람이야.”


“있지-“

여자는 머뭇거리는 남자의 말을 단호하게 가로챘다.


“미안해할 것 없어. 왜냐면 내가, 내가 더 나쁘니까.”


남자가 베드 곁으로 한 발 더 다가왔다.

“손 잠시만 잡고 있어도 돼?”


“이제 그만 돌아가. 네 예쁜 아기가 널 기다려. 가서 많이 안아줘. 아기의 엄마도 같이 안아줘.”


“널 닮았으면 예뻤을 거야.”


“날 닮았으면… 미웠을 거야. 얼굴 보고 만나지 않고, 보지 않은 채 서로 헤어져 차라리 다행이야.”


“나는 그런데 자꾸만 보고 싶어 진다. 아예 처음부터 몰랐다면 또 모를까 너도 모르고 있었던 일인데. 그래도 이렇게나마 알았잖아. 아 나는 정말로 왜 이렇게 형편없이......”





여자는 그때 누워서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더는 울지 않았는데 남자는 스러져가고 있었다. 커다란 어깨가 들썩들썩거리다가 이제는 흐느끼는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남자는 울음소리도 삼켜버릴 만큼 얼굴이 벌겋게 들떠서는 아이처럼 자지러지고 있었다. 여자는 손을 뻗어 간신히 남자의 정수리에 대었다. 뜨거웠다. 그 모든 순간의 촉각들을, 소리들을, 여자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어쩔 줄 몰라서 남자는 그냥 그렇게 울었다. 소리 없이 숨도 못 쉬고 울었다. 우는 남자의 더운 머리를 여자는 만졌다. 조심조심. 가만가만히 만졌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마련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장례식이었다는 것을.



남자는 여자의 배에 손을 얹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오 분만… 삼 분만.”


그러더니 그는 얼굴을 여자의 아랫배에 묻고 울었다. 멈추지 못한 채 계속해서 커다란 어깨를 들썩이며 꺽꺽하면서 울었다. 여자는 그의 땀으로 뒤엉킨 머리칼을 마저 쓰다듬었다. 여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남자의 뒷덜미에 가 닿았다. 남자도 이 날, 평생 그 서늘함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이미 그들이 잃어버린 생명은 함께 흘러내린 핏물로 이 둘의 만남을 염습할 염장이로 다녀갔었나. 여자는 흐느끼는 남자를 쓰다듬으면서, 남자는 빈 아기집 위에 얼굴을 묻고서, 둘은 발인을 앞둔 상주들처럼 결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