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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해 Mar 26. 2022

그 또한 무한한 관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

- 룰루 밀러,《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처럼 시작되는 도입부, 에세이의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곳곳에 스민 시적인 문장들, 이 문장들이 쌓아 올리는 과학적인 발견과 그 안에 얽힌 사회적 사건들까지. 어느 요소 하나도 놓치지 않아 산만하게 읽힐 수도, (출판사인지 독자인지 모호한 이들이 남기는 수사인)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물론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내 돈 주고 산 독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 채 말이다.


내용의 소개가 곧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언급하지 않고 그저 읽어보라는 식의 추천은 목소리가 강한 사람(이를테면 어떤 유튜버)의 것이 아니고서는 그 힘이 부족하다. 표지의 문구들도 내용을 모두 파악한 뒤엔 적확한 표현으로 느껴지지만, 처음 책을 집어 들어든 사람으로서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간략한 내용 소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은 혼돈 속에 던져진 존재다. 이 책의 저자도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이것을 강조하는 아버지가 등장하는 대목은 상당히 선명한 이미지로 제시된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 중 하나다. 초반부에 등장하니 이 부분에 도착한다면 슬슬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별 통보까지 들이닥치며 좌절의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진 저자의 독백으로 글은 시작된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막 이별을 겪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상상으로.


슬럼프를 빠져나오는 방법 중 효과적인 것이라고 알려진 게 몇 가지 있다. '멘토 찾기'도 그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 멘토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을 삼는다. 그는 자연 속 무수한 물고기를 찾아 종을 분류하는 과학자로, 이 작업을 통해 굉장한 영예를 누린 사람이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분류해둔 모든 샘플들이 파괴되는 등 여러 번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작업을 완수한 그의 행적을 따라 밟으며 저자는 자신의 회복을 꿈꾼다.


이쯤에서 이 책의 내용 소개를 멈추는 것이 마땅하겠다. '뭐야, 저자 자신의 멘탈 회복기야?'라고 김빠진 표정을 짓는 당신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따지고 보면 (무게감 있는) 에세이에 가깝고, 그러니 이 책이 멘탈 회복기라 해서 이 책에 관심 있는 당신이, 혹은 구매까지도 고려했던 당신이, (이 책을 찬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다. 그저 뒤표지에 장식된 몇몇 문구가 단순히 서평식으로 이 책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내용을 책임져주는 문장들이라고 덧붙이고 싶을 뿐이다. 책이 말하는 나머지 이야기는 당신에게 온전히 가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이러한 소개로 갈무리 짓는 것도 이 책 한 권이 너무 다양한 메시지(삶의 태도, 의미, 파괴되지 않는 열정, 기만이 불러오는 힘, 분류가 불러오는 폭력, 과학과 인간의 오류 등)를 여러 개 품고 있어서 무엇부터 언급해야 할지 고르기 어려운 것도 한몫한다고 본다. 이마저도 홍보로 보인다고 반박한다면? 당신이 옳다.


책의 쓸모, 더 좁게는 문학의 쓸모를 함께 발견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SNS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러한 욕심을 품고 소개하는 첫 책으로 흔히 말하는 '순수문학'이 아니라는 점은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느 고전 못지않은 선명한 목소리를 이 책은 품고 있다. 2022년, 유튜브와 넷플릭스(인스타그램 릴스까지)로 대표되는 영상 매체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한 권의 책이, 문학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 (내가 뭐라고) 반갑기까지 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27쪽

이 책의 제목에 어깃장을 놓는 것 또한 과학이 품어야 할 본질이자 문학의 불씨를 되살리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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