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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씁쓸한맥주 Aug 30. 2023

[S호텔]5화. 고장난 객실등

스위트객실 투숙객편

"자 여러분, 손님 객실 방문 시 어떻게 하라고 했죠?"

똑똑똑

3,2,1 쉬고

"하우스키핑, 메이 아이 컴 인?"


오늘은 남자친구와 3주년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간만에 방문한 5성급 호텔에 맞춰 새로산 원피스도 갖춰입고 샴페인도 미리 샀다. 

"오빠 나만 믿어, 내가 카페에서 미리 정보도  확인하고 왔지."


나는 평소에도 카페를 통해 파격 딜이나 새로운 신용카드 혜택 등의 정보를 많이 수집한다.

이번에도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 오기 위해 호텔을 검색하다 우연히 찾게된 글이 있었다.

'무료로 호텔에서 식사하기', '무료로 호텔에서 업그레이드 받기'

더 나아가서는 '호텔 숙박권 무료로 받아내기' 등이 있었다. 

이전에 내가 수집한 정보들이 얼리버드나 체리피커의 형태였다면 

이 글들이 말해주는 방법은 말 그대로 블랙컨슈머가 되어 받아내는 방법이었다.


특히 받아내기 쉽다고 하는 S호텔로 정한 것도 이 글에서 시키는대로 따르고자 함이었다.


우선 일반실에 체크인을 하고 미리 준비해간 나와는 다른 핑크색의 긴 머리카락을 여러개 

욕조 배수구와 수건에 놔두고 쓰레기통에도 먹다 남은 음식물을 하나 버린 후 

바로 '0'번으로 전화를 걸어서 청소상태가 엉망이라고 방을 바꿔달라고 다짜고짜 화를 냈다. 

양심상 내키지 않았지만 이 많은 객실 중 한 객실 쯤이야, 그리고 하루 쯤이야 하는 마음이었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받은 방에서는 유리잔에 입술 자국을 찍고 핸드 타올에 빨간 양념을 묻혔다.

다시 한 번 '0'번을 눌러 화를 내는 일을 반복했다.

"이렇게까지 해야할까?"라고 어눌하게 말하는 남자친구에겐

"으휴, 오빤 그래서 물러터진거야. 그냥 나만 믿어." 라는 말만 반복했다.


"손님, 여러번 불편을 드려죄송합니다. 업그레이드 해드렸으며, 주니어 스위트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화난 상태로 최대한 품위있는 척, 기쁜게 티나지 않게 행동하느라 혼났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뛰어들어 소리쳤다.

"얏호, 드디어 성공했다."

"오! 진짜 이 정도 객실이면 그렇게까지 할 만하다."

"그치?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수영장도 다녀오고 밤에 룸서비스를 시켜 가져온 샴페인과 함께 야경을 즐겼다.

그런데 자꾸만 어디서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빠 옷장에 뭐 걸어뒀어? 뭐가 반짝 거리는거 같기도 하고, 불이 고장난거 같기도 하고"

오빠가 가서 옷장문을 활짝 여니 센서등이 켜지면서 우리의 옷가지 2벌과 빈 옷걸이가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봐봐. 너 취했네. 자자 이제."

"그런가... 알겠어."

나는 애써 찝찝한 마음을 숨기며, 옷장에서 먼쪽에 누워 잠을 청했다. 


새벽 3시, 눈이 떠졌다. 

무언가 자꾸 깜빡 거린 탓이다. 

빛은 옷장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옷장 안 센서등이 기분 나쁘게 깜빡 거리고 있었다. 

"오빠, 옷장 센서등 고장 난 거 맞잖아. 저것봐봐."

오빠는 자다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옷장을 열었다. 

여전히 센서등은 제멋대로 깜빡 거리고 있었다.

"그냥 자면 안될까? 눈 감으면 안보이잖아. 그리고 이제 컴플레인 하는 것도 그만해야될 것 같아..."

"난 자꾸 신경쓰여. 호텔에 전화해서 고치러 오라고 하자"

"이 밤에?"

"밤이 중요해? 우린 고객인데?"


결국 '0'번을 눌러 센서등이 나갔으니 지금 당장 와달라고 했다.

호텔에서는 직원이 지금 올라가겠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띵동

"객실등이 고장났다고 해서 왔습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둘둘 말고 얼굴만 내민 채로 오빠가 문을 열어줬다.

까만 옷을 입은 남자 2명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와서 들여다보았다.

원래 저런 차림새인가? 

"지금 당장 고치기는 힘들 것 같고, 차라리 센서등을 빼서가면 주무시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라고 물어 우리는 그냥 등을 빼달라고 했다.


직원들이 나가고 새벽 4시 다시 잠에 들어 꿀 잠을 잤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 내 이름이 뭐더라...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호텔 로비 천정이 보인다. 


뭐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아...나는 분명 스위트에서 자고 있었는데.


삐용삐용

나는 영문도 모른채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다. 

 

로비 한 쪽에서는 신입사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자 여러분, 손님 객실 방문 시 어떻게 하라고 했죠?"

똑똑똑

3,2,1 쉬고

"하우스키핑, 메이 아이 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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