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씁쓸한맥주 Aug 28. 2023

[S호텔] 4. 로비에서 슬픈 춤을 추는 여자

장기 출장자 편

고객의 개인정보는 무조건 보호할 것.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수칙이다.


그래서 알고도 모른척 해야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

명망높은 직장을 갖고, 해외에 누구나 꿈 꾸는 가정을 꾸렸지만 

한국 출장에는 항상 10~20살 이상 차이나는 젊은 여자친구를 대동하는 출장자들.

그리고 그들의 실제 가족들과 여자친구가 같은 날 투숙해도 당황하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야 하는 우리들.


K도 우리 호텔의 20년 가까운 단골 출장자 중 한명이다.

그 동안 여려명의 여자 친구가 있었고, 여름 방학 기간에는

수영장에 본인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다른 객실에는 여자친구가 투숙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 여자친구는 좀 달랐다.


"발렛, 무료. 나 알지?"

대학생 즈음 되어 보이는 얼굴에 늘씬한 몸매, 그가 사준 람보르기니를 끌고 우리를 하대하는 태도.

호텔의 여왕벌이 된 것처럼 구는 그녀의 태도는 K의 나이스한 태도와는 매우 상반되었다.

우리는 모두 K가 투숙할 때마다 함께 올 그녀가 연상되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K 앞에서 만은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세상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더 없는 대학생스러움의 순수함을 보여주었다.


그날도 K가 체크인하기 1시간 전 그녀가 로비에 나타났다.

우리는 긴장하며 숨을 고르던 찰나였다.

"어머, P아니니?" 명품으로 치장한 한 무리의 여자들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람 잘못보셨어요." 처음 보는 여자의 당황한 모습이었다.

"P맞네. 니가 호텔엔 어쩐 일이야? " 여자들은 수상쩍은 눈길을 보냈다.

"어머, 너 이거 혹시 짝퉁이야? 아니 이거 진짜 같은데? 너 뭐야?" 

여자들은 그녀의 가방과 옷가지를 흐트러뜨리면서 괴롭히듯 질문을 쏟아부었다.

"명문대생들 몸 판다고 나오던데, 너도 그런거야? 그런다고 달라지는건 없다니까?"

여자는 황급히 몸을 돌려 로비 입구에 서있는 자신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녀가 타고간 차를 보면서 여자들 무리는 놀리는데 만족한 것 마냥 깔깔 웃으며 로비 바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 날은 K의 정년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그는 스위트룸을 빌려 간단히 지인들과 스탠딩 파티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는 스위트룸에 간단히 샴페인과 스탠딩 테이블을 세팅하고 안주거리들을 준비하였다.

거기에는 K가 초대한 업무관련 지인들, 가족들 그리고 그녀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그런 분위기를 어색해하면서도 파티에 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었다.


곧 이어 K의 토스팅이 이어졌다.

"여기 계신 여러분 제 은퇴식 파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룬 이 모든 것들을 위해 저는 제 청춘을 바쳤고,

 항상 꿈꿔왔던 것 처럼 사랑하는 제 와이프, 그리고 두 아들을 책임질 수 있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저희의 앞 날을 축복해 주십시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미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다른 이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연거푸 술을 여러잔 마시더니 본인의 객실로 향했다.


밤 11시,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로비로 내려가 각자의 집으로 향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잔뜩 취해 로비로 내려와 K를 붙잡았다.

"내가 말했잖아요. 나는 가진게 없다고. 내 가난이 지긋지긋하다고. 

 당신이 내 성공의 전부가 되어달라고. 그리고 나한테 약속해줬잖아요. 

 나와 미래를 함께하겠다고. 우리의 미래는 어딨어요?" 

그 때 K의 아내가 전혀 당황한 태도 없이 다가와 그녀를 한 손으로 제지하며 우아하게 말했다.

"수고했어요."

그녀는 K와 아이들을 데리고 유유히 로비를 빠져나갔다.


로비의 샹들리에 아래 불빛 아래는 그녀의 맨 몸 만이 처량히 드러났다.

여자는 미친듯이 웃었다.

나는 황급히 내 자켓을 벗어 여자 몸을 덮었지만 긴 여자의 몸매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항상 이런식이지. 노력해봤자 가진게 없는 나는 결국 맨몸 뿐이야. 

 미친듯 발악을하고 기어올라 발끝을 붙잡으려치면 발로 차버리는게 저런 인간들인걸 또 잊었지."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던지고는 자켓을 벗어던지고 현대무용 비슷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로비의 조명아래,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 그녀가 만들어 내는 선

슬프지만 아름다웠다.

그녀는 울면서 웃고있었다.


우리가 지켜야하는 고객정보


그녀는 명문대생

그녀의 카드는 지속된 승인거절 상태

그녀의 차는 람보르기니


매거진의 이전글 [S호텔] 3. 교양이 넘쳐나는 사모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