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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씁쓸한맥주 Aug 23. 2023

[S호텔] 3. 교양이 넘쳐나는 사모님

연회장 결혼식 편

오늘 결혼식은 유난히 분위기가 이상하다.

제3금융 대표와 어느 기업 따님의 혼사라고 했던가. 

검은 양복이 유난히 새까맣게 느껴지는 남자들이 입구에 즐비하다.


연회장에서 알바한 지 벌써 1년 6개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2년은 나에게도 오지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오지 않았으니까. 대신 그 뒤에는 장기 계약 형태 대신 단기 계약직으로 오곤한다.

일이 손에 익은 알바생은 언제든 필요한 법이니까.


오늘은 다른 호텔에도 결혼식이 많은 날이라 그런지 알바생이 부족해서 

아침부터 나조차도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알바들이 온다고 해놓고 아침에 문자, 전화 한 통 없이 안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라 남아있는 직원, 장기계약 알바생들만 죽어나는 꼴이다.


식이 시작하기 직전, 홀 지배인이 45번 테이블이 갑자기 추가되었으니 빨리 세팅하라고 한다.

초짜 알바 2명을 데리고 하라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내가 직원도 아니고. 에이 십할.

똑같은 돈 받으면서 이렇게 일하면 정말 손해본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앗, 뭐야!"

44번 테이블 여자 손님이 소리쳤다. 

초짜 알바생이 커트러리를 나르다가 쟁반 끝으로 손님을 쳤나보다.

이럴 땐 내가 직원인 것처럼 대신 나서서 사과해야한다. 알바인 티 안나게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혹시 다치신 곳은 없으실까요?"

"어우, 진짜 S호텔 좋다고 해서 왔는데 이게 뭐야 정말 자리도 구리고 짜증나네."

"정말 죄송합니다."


우선 사과는 했고, 빨리 세팅해야하니 다시 뒤돌아 45번 테이블을 세팅하려고 하는데

"야, 사과 제대로 안해? 니 눈엔 내가 뭐 처럼 보이니? 나 기업 사모님이야. 알아?

 끝 테이블에 앉아있으니까 우습게 보여? 쳐도 되는 사람 같아?"

여자는 아주 교양과는 거리가 먼 포즈로 한 손에는 버터 나이프를 쥐고 나를 찌를듯이 공중에 휘두르고 있다.

또 이런 부류다. 나 알아? 부류. 

내가 너를 어떻게 아니, 방금 처음 봤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90도로 최대한 숙여서 5초간 머무른다.

다른 알바생들은 어쩔줄몰라하는 표정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세팅을 해라.


주변 여자들이 눈치를 보다 이제야 말리는 시늉을 한다.

"어우 사모님, 이제 그만 노여움 푸세요. 호호호 저런 푼돈 벌어 하루사는 애들이 실수하면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걸 주님이 원하실거에요."

"맞아요. 사모님, 사과 받아주시는게 더 멋져보일거 같아요. 호호호 

 그나저나 김대표는 왜 우리 사모님 이 끝 테이블에 배정했다나..."  


서둘러 45번 테이블을 마치고 식이 시작되어 식전빵을 서빙했다. 

그녀는 '사모님'이라는 지위에 아주 걸맞게 우걱우걱 나를 찌르려던 버터나이프도 사용하지 않고

버터를 접시 채 들어 바닥까지 핥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주 우아해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녀는 다른 곳에 서빙 가는 나를 불러 "야, 빵 좀 더 가져와. 이거 가지고 되겠어? 리필 좀 해."

라고 명령 투로 말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주방에 하소연해서 빵을 더 가지고 갔는데, 

사모님이라는 작자의 오른쪽 여자가 "저기, 아가씨 내 빵은 왜 없어요?" 

"네?" 나는 당황해서 테이블 세팅을 둘러봤다.

44번, 45번 테이블은 내 담당이었고, 마지막까지 확인을 마쳤다.


범인은 망할 놈의 사모님이었다. 기본 '좌빵우물'도 모르는 여자.

호텔 양식 세팅은 동그란 테이블에 많은 커트러리와 접시가 들어가 헷갈릴 수 있으나,

그녀가 말한 '사모님'이라면, 나와 다른 사람이라면 그건 기본이었다.

좌측 빵, 우측 물잔이 자기꺼.

그녀는 좌측, 우측 빵을 모두 먹고 나에게 또 리필을 요청한 것이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이 마치 이 공간에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온 것만 같았다.

과연 교양이란 단어의 위치가 존재한다면 그녀에게 가까울까 나에게 가까울까?


"켁"

갑자기 빵을 마구 먹던 그녀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어머 사모님!!!! 왜그러세요"

한 순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여자는 빵이 목에 걸린 건지 바닥을 뒹굴며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결혼식 당사자인 신랑, 신부는 44번 테이블의 소란이 걱정이 아닌 달갑지 않은

쳐내고 싶은 사건인 냥 표정이 일그러졌다.


급히 호텔 지배인이 관내 간호사를 불러 하임리히를 했고,

그녀는 아름다운 토요일 500명이 넘는 호텔 결혼식장에서 모두의 이목을 받으며 

좌우빵을 모두 카페트 위에 쏟아냈다. 

급하게 치웠지만 카페트 특성상 토사물을 완벽하게 지워내기란 힘이 들었다.


사모님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뭔가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차라리 메인을 먹고 토하고 가지, 겨우 빵이나 쳐먹고 토하고 가다니.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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