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다. 유치원 때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도 면단위로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걸어서 갈 수는 없는 거리였고 버스를 타고 10분은 가야 했다. 시골 버스는 배차간격이 아주 길었고 혹시라도 버스를 놓치면 큰일 나기에 항상 여유 있게 미리 버스정류장에 나가있곤 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보고 있노라면 반짝거리는 자동차가 굉장히 세련된 어른들의 소유물처럼 느껴졌고, 전부 돈도 많고 향수냄새 같은 것이 나는 어른들이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나는 혼자서 버스정류장에 앉아 놓쳐서는 안 되는 버스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버스 정류장 차선으로 천천히 들어오더니 정말 내 앞에서 멈춰 섰다. 자동차가 왜 여기에...? 그리고 창문을 내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어른들의 나이를 가늠할 줄 모르는 아이였던지라 정확하진 않지만 30대 정도 되는 깔끔하고 세련된 인상의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아마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던 것 같고 나는 약간은 겁이 나기도 하고 얼이 빠진 채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결론은 어차피 가는 길이니 학교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거였다.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재촉을 하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얼떨결에 타고 가면서 간간히 얘기를 했고 정말 학교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얼떨떨했다.
시골이라 길이 많지는 않고 큰 도로 하나가 내가 탄 버스정류장부터 학교까지 쭉 이어지는 경로였다. 버스정류장 너머로 나가면 더 큰 도시로 가는 방향이었고 마찬가지로 학교를 지나면 더 큰 도시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마을 버스정류장에서부터 학교 사이가 익숙한 세상의 전부였다. 자동차들은 여길 지나서 양쪽으로 다 사라지니까 잠깐 스쳐 지나가는 도시냄새 같았다.
그리고 처음 보는 아저씨의 자동차에 탄 것은 그 생경함을 덜 낯선 것으로 바꿔주었고 그 새 나는 조금 안심했다. 아저씨는 가는 내내 나에게 간간히 말을 걸고 나머지는 고요하게 운전을 했다. 원통형 통에 담긴 알이 굵은 사탕을 먹으라고 권해주기도했다. 그것 말고는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면서도 고요하던 순간은 인상에 깊이 박혔다. 남자스킨 냄새 같은 어른 남자 냄새가 차 안에 퍼져있었고, 버스와는 달리 고요함이 유난히 잘 느껴지는 배경소음들이 낯설었으며, 너무 긴장하여 내리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아저씨는 정말 가는 내내 나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도 않았으며 다른 곳이 아닌 정말 학교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그건 한 번만으로도 어린아이를 조금 안심하게 했다.
아저씨는 아침마다 태워주겠다고 했고 나는 또 차를 얻어 탔다. 두 번째가 되니 내 일상에 너무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침마다 모르는 아저씨의 승용차에 올라타는 것은 시골 어린이로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심지어 아저씨가 앞으로도 태워주겠다고 했고 매번 이 긴장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을 깨달았다. 차를 탔을 때의 긴장감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걸 느끼고 있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편하게 학교를 갈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래도 어른들에게 말해야 하는 큰 일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그래서 분명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할머니였는지 옆마을 교회 전도사님이었는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기억나지 않는 그 어른은 얻어 타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그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나도 바로 이해했다.
다만 정말 호의일지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이제 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나에게 힘든 과제였다. 다음날 아저씨가 버스정류장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망설이다가 결심한 뒤 말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른)이 타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살짝 화가 난 것처럼 보였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 결국 별 말은 하지 않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로 아저씨를 만난 적은 없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나의 앞을 아저씨의 자동차가 또다시 지나갔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비슷비슷한 자동차의 외관을 구분하지 못했을뿐더러 긴장한 탓에 제대로 차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아저씨의 화난 듯했던 반응이 ‘호의를 베푼 것에 대한 허탈함과 자신을 위험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에 대한 불쾌함’이었을 것이라고 믿지만 또 가끔은 그때 그 아저씬 정말 착한 사람이었을까.. 상상에 빠져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