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타가 여기도 오다니!

by 수쥐



나는 유치원 때부터 시골에 살았다. 그 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서울이나 대전 같은 도시에 살았었다고 한다. 사진첩에는 여기저기서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아무 기억도 없으니 낯설기만 하다.


어쨌든 그래서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시골에서 유치원 다니던 때다. 나는 ㅇㅇ면 ㅁㅁ리 ㅇㅇ골 사는 아이였고 유치원은 면 단위로 딱 하나 있었다. 그래서 ㅇㅇ면에 열개도 넘는 ‘리’에 각각 사는 아이들은 전부 이 유치원에 모였다. 나랑 같은 ㅇㅇ골 사는 아이는 내 동생과 옆옆옆집 사는 여선이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유치원에서만 만날 수 있어서 그래도 제일 친한 건 여선이었다.


사실 유치원 때도 기억은 잘 안 난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유치원 선생님들이 참 다정했다는 것, 그게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다. 웃음을 가득 띄어주시곤 하던 모습이 유치원 단체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성탄절을 맞아 원장님이 산타로 분장을 하고서 집에 찾아오셨던 일이다. 할머니에게도 미리 귀띔이 없았던 걸까. 원장님이 우리 집에 등장하자 할머니가 급하게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물을 묻히고 정돈한 뒤 프로와 같은 애티튜드로 어서 오시라며 원장님을 맞이하셨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놀란 나를 산타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선물을 건네며 나를 안아주었다. 젊은 어른을 대해 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나는 30대쯤 되셨던 원장님에게도 쑥스러움을 타곤 했었는데 이때만큼은 정말 정말 기뻐서 원장님 품에 안겨있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판타지소설 속 어린이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시골집에 나타난 화려한 산타 복장과 반짝거리는 예쁜 포장지에 싸인 선물, 그리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너무나 들뜨고 설레는 순간을 안겨주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갑자기 유재석이 찾아와 방송을 찍는 정도의 스포라이트를 받는 것 같았다. 이 정도의 반짝거리는 행사는 그전에도 그 이후로도 없었다. 원장님이 건네주신 선물은 크레파스였던가 무슨 장난감이었던가.


아니다. 선물은 태어나 처음으로 나만을 위해 찾아온 산타였다. 그러고 나서 산타는 아마 옆옆옆집 사는 친구이자 같은 유치원 다니는 여선이네에도 선물을 주러 썰매를 타고 갔겠지만 그 순간만은 온전한 나만의 쇼타임이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인생의 첫 산타와의 성공적인 만남은 그 이후로도 나의 기억에 아주 오래도록 남아 나를 충만하게 했다.

.

.

.

.

.

.

.

사진이라는 게 있어 참 좋다.
keyword
이전 01화눈떠보니 시골아이